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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Talk

써드 스트림의 고독한 거장, 랜 블레이크 (Ran Blake)


"사람들이 내 연주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쩌면...

진정으로 나는 고독을 즐기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과 음악과 영화와 책을 내 벗으로 삼고 지내왔다.

나는 다른 뮤지션들처럼 빨리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나는 계속 음을 투입하지 않는다.

혹자는 내가 위대한 뮤지션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봐줄 만한 뮤지션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항상 훌륭한 뮤지션은 아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해달라고 요청받은 적도 없다.

나는 혼자, 혹은 두 명 정도만 같이 연주 하는 것에 족한다. 

많은 싱어들이 나를 인스파이어 하는 이유는 내가 공간과 침묵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랜 블레이크, Ran Blake (1935.4.20~ )


랜 블레이크는 군터 쉴러, 존 루이스 등과 함께 이른바 음악의 제 3의 물결 (써드 스트림, Third Stream)을 일구어온 개척자입니다.

써드 스트림이란 용어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인 건서 슐러가 창안했고, 이는 클래식(제 1물결), 재즈(제 2물결)에 이어 클래식과 재즈가 구조적으로 혼합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일컫습니다. 

랜 블레이크가 평생 그의 멘토이자 친구가 될 건서 슐러를 만나게 된 것은 1959년 1월, 뉴욕의 아틀란틱 레코드 스튜디오였습니다. 바드 칼리지에서 음악을 전공하던 블레이크는 아틀란틱에서 파트타임 어시스턴트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뮤지션들의 커피 심부름을 하거나 바닥을 닦는 허드렛일이 많았지만 그곳에서 당대의 내노라하는 뮤지션들, 리 코니츠, 레니 트리스타노, 밀트 잭슨, 모던 재즈 쿼텟 등 스튜디오를 찾은 많은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서 슐러와의 인연도 이 아틀란틱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죠. 

슐러는 블레이크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았고 슐러가 가르치고 있던 '레녹스 스쿨 어브 재즈'의 써머 워크샵에서 공부하라고 조언합니다. 

당시 건서 슐러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한 '써드 스트림'이라는 개념을 창안하여 57년부터 보스턴의 브렌다이즈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슐러의 조언에 따라 블레이크는 59년과 60년 여름을 매사추세츠주 레녹스에서 보냅니다. 그 학교에서 군터 쉴러를 비롯해 빌 루소, 오스카 피터슨, 그리고 군터 쉴러와 함께 써드 스트림을 이끌었던 존 루이스에게 배우며 자신만의 창의적인 스타일을 정립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블레이크의 초기 음악 스타일은 바드 칼리지의 음악 친구였던 보컬리스트 지니 리(Jeanne Lee)와의 듀오로 녹음한 첫 앨범 Newest Sound Around (RCA,1962)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이 작품은 재즈 스탠다드곡을 피아노, 보컬 듀오가 어떤 방식으로 유니크하게 해석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독창적인 작품으로 발표 후 뉴욕 재즈신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블레이크는 사라 본, 엘라 핏제랄드, 마할리아 잭슨 등 보컬 음악을 좋아했고, 보컬과의 듀오에 열정을 보여왔는데 그 중심에는 그의 대학 친구 지니 리가 큰 위치에 있습니다. 블레이크가 "지니 리를 처음 만난 것은 1956년 9월 26일 오후 3시 45분이었다"고 첫 만남을 술회할 만큼 그들의 프렌드십은 너무나 돈독한 것이었습니다.

Newest Sound Around의 성공으로 블레이크와 지니는 그 해 몽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에도 초대 받았고 벨기에, 그리스 등 두 사람은 유럽 여러 곳에서 3년을 머물며 열정적으로 활동합니다.


반향을 일으켰던 랜 블레이크와 지니 리의 듀엣 앨범 Newest Sound Around (RCA,1962)


<Free Standards : Stockholam 1966> 녹음 중인 랜 블레이크


1966년 발표된 <Free Standards : Stockholam 1966> 역시 스탠다드 곡들에 대한 독창적인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25곡으로 이루어진 이 앨범에서 10곡은 지니 리와의 듀엣, 나머지는 블레이크의 솔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랜 블레이크는 그 전 해인 65년 솔로 앨범인 <Ran Blake Plays Solo Piano>(ESP-Disk)을 발표했고 그 후 지금까지 상당수를 솔로 연주 녹음에 매진해왔습니다. 

1969년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앨범 Blue Potato & Other Outrages (Milestone Records)을 비롯해 폴 플레이가 설립한  Improvising Artists 레이블에서 녹음된  Breakthru (1977), 듀크 엘링턴의 곡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를 헌정하는 곡들이 수록된 Duke Dreams (1981, Soulnote)를 비롯해 Vertigo (1984, Owl)Painted Rhythms: The Compleat Ran Blake 1,2 (1985, GM Recordings)는 초기 솔로 녹음을 들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앨범입니다. 

그의 솔로 녹음은 최근에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Epistrophy(1001, SoulNote), All That Is Tied (2006, Tompkins Square), Wende (2007, Owl), Driftwoods (2009, Tompkins Square), Grey December: Live in Rome (2011, Tompkins Square)등이 괄목할만합니다.

제게 있어 소규모 그룹으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들을 꼽으라면 색소포니스트 제임스 메란다(James Merenda)와 데이비스 "나이프" 패브리스(David “Knife” Fabris)가 참여한 Horace is Blue: A Silver Noir (2000, Hatology), 드러머 지티아노 토노미(Tiziano Tononi)가 참여한  Unmarked Van: Tribute to Sarah Vaughan (1997, Soul Note - Italy), 그리고  건서 슐러의 아들인 베이시스트 에드 슐러와 드러머 조지 슐러가 참여한 Sonic Temples (2001, GM Recordings)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컬과의 협연을 좋아했던 랜 블레이크가 크리스틴 코레아(Christine Correa), 사라 세파(Sara Serpa)와 녹음한 앨범(Aurora, 2012, Cleanfeed)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인도 출신의 크리스튼 코레아는 지니 리와는 또 다른 섬세한 매력의 보컬 테크닉을 선보이는데 랜 블레이크와 Round About (1994, Music& Arts), Out of The Shadows (2010, Red Piano), Down Here Below: A Tribute to Abbey Liccoln, Vol. 1 (2012, Red Piano Records) 등 최근까지 그와 꾸준히 협연해오고 있습니다. 


랜 블레이크의 교육자로서의 업적은 그의 연주활동 못지 않게 재즈사에서 중요합니다.

1967년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컨소바토리(NEC)의 총장이 된 건서 슐러가 써드 스트림 동지들을 학교 교수로 초빙하였고 랜 블레이크는 조지 러셀과 함께 NEC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1973년에 랜 블레이크는 써드 스트림 전공의 석좌 교수가 되어 2005년까지 32년간 재직합니다.(지금은 써드 스트림과이라는 전공명이 '컨템포러리 임프로비제이션'으로 바뀌었습니다.)

블레이크의 이어 트레이닝과 음악에 관한 저서 Primacy of The Ear (2010년)를 보면, 그는 롱 텀(Long-term)메모리에 의한 이어 트레이닝 훈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블레이크는 스탠다드 곡을 연주할 때 악보에 의지하는 태도를 버려야한다고 말합니다. 음악을 악보로 시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듯 머리 속에서 시각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아티스트는 음악을 위한 기억법을 개발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귀로 듣고 귀로 외우고 그것을 내면화하여 창의적인 임프로바이징을 하기 위해서는 이 점이 필수라는 얘기이지요. 기회가 될 때 마다 그의 이어 트레이닝 기법에 대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랜 블레이크는 저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행적 속에 등장하는 장소나 사람들이 친근하여 그와 더 가깝게 느껴지곤 합니다. 80이 가까운 나이지만 왕성하게 창작과 연주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그가 진정 존경스럽습니다. 



랜 블레이크의 2010년 저서 Primacy of The Ear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 Laura : 앨범 Newest Sound Around (RCA,1962)

Night and Day / Ticket To Ride : 앨범 Free Standards : Stockholam 1966 중에서



랜 블레이크에 관한 다큐 Above the Sadness의 트레일러. 

동유럽 리투아니아에서 랜 블레이크는 예술 애호가들의 가이드를 받으며 유목민처럼 뿌리 없이 떠다니는 재즈의 이야기들을 풀어봅니다.

랜 블레이크의 고독과 슬픔은 나치즘에 희생된 동유럽의 슬픈 역사와 대칭을 이루며 음악으로 승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