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전자 회로가 귀로 진입하는 듯 난해한 재즈가 있는가 하면,


러스틱한 티포트의 내음처럼 노스탤지어의 재즈가 있는가 하면,

봄날 아침 여인의 향기처럼 관능적인 재즈가 있는가 하면.......


만일 당신이 낡은 레코드 속 옛 여가수가 바스르르 떨며 부르는 노래를 듣기 소망한다면, 본인을 죽은 싱어의 사회의 이탈자로 자각하길 나는 바란다. 만일 당신이 어느 날 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그 바스르르 떨리는 곡조와 애절한 노랫말에 몸을 한껏 맡기기를 원한다면, 죽은 싱어의 사회 이탈자로서 본인을 대견하게 생각하길 나는 바란다. 옛가수의 음성처럼 슬픈 진동과 슬픔의 노래들은 청승맞고 진부한 것으로 격하된 세상. 유행과 첨단기술과 피상적 기교를 앞세운 싱어들이 주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아직도 낡은 레코드판 앞에서 숙연해지는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 역시 그 슬픈 떨림의 노래들을 듣기 위해 낡은 레코드를 꺼내곤 한다. 바디 앤 소울(Body and Soul)은 언제나 나를 유혹하는 곡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명연주를 남겼지만, 나는 리비 홀맨의 ‘바디 앤 소울’을 특별히 생각한다. 그녀는 1930년 미국에서 처음 ‘바디 앤 소울’을 부른 가수다.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가사는 무대 위 리비 홀맨의 실크 나이트 가운 속으로 파고들듯 애절하기만 하다. ‘바디’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당시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금지되기도 했던,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동시에 원한다는 갈망의 노래이다. 


1920대~30년대에 그렇게 바스르르 떨며 울듯 노래하며 사랑을 갈망하고 실연의 슬픔을 불렀던 가수, 즉, 리비 홀맨, 루쓰 에팅, 헬렌 모간과 같은 가수를 ‘토치 싱어(torch singer)’라고 한다. 그들은 블루스의 감성을 빌렸지만, 대부분 백인 여인들이었고 유대인이었다. 그녀들은 갱들이 운영하는 뉴욕의 나이트클럽이나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인기를 누렸다. 몸에 붙어 흐르는 얇은 드레스를 입고 넋 빠진 듯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그녀들의 낡은 사진은 지금도 나를 사로잡는다. 그녀들은 배우이자 가수이자 댄서이기도 했고 아름다운 몸과 목소리를 가진 여인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재즈 스탠다드들이 그런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토치송들이다. "Can't Help Lovin' Dat Man" (1927), "Lili Marlene" (1938), "One for My Baby" (1943), "Cry Me a River" (1953), The Man That Got Away (1954), "Here's That Rainy Day" (1959), Don’t Explain(1946), Glad to be Unhappy(1936), Just A Friend(1931), The Man I Love(1924), Stormy Weather(1933), Night And Day(1932), Skylark (1941), Angel Eyes(1946)……


사랑에 대한 슬픔은 사랑에 대한 찬미와 다른 말이 아니다. 토치송은 사랑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음악이다. 그 중심에는 치명적인 로맨티시즘이 있다. 보답이 없어도 좋으니 떠나지만 말아 달라는 그 구차함, 사랑 앞에서 무방비가 될 수밖에 없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의 간절함을 그 백인 여인들이 아니었으면 자본과 물질의 단맛 쓴맛을 톡톡히 맛보고 있던 그 시대에 누가 주류 미국인들의 애간장을 단숨에 녹일 수 있었을 것인가? 이후의 애니타 오데이, 페기 리, 줄리 런던이 국민 가수로서 로맨티시즘의 한 자락을 꿰어잡을 수 있었던 것도 초기의 토치 싱어들의 공로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토치 싱어계의 숨은 여왕은 따로 있다. 백인이 아니었다. 어둡고 탁한 세계에서 엄청난 감성으로 토치송을 업그레이드시킨 그 여인. 토치송을 재즈 스탠다드로 만드는데 기여한 여인. 그녀가 없었더라면…….빌리 홀리데이,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은 떠올리기 싫다. 토치송은 그녀의 부름으로 인해 더욱 깊고 고결해졌다. 그녀가 부른 Mean To Me는 성숙하고 깊어서 그녀가 스물 둘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게 한다. 루쓰 에팅이 1928년 처음 불렀던 Love me or Leave me가 그저 가련한 여인의 이미지라면 홀리데이는 이별을 통보받기 직전 이제야 속내를 꺼내 보이는 냥 비장하기만 하다.


(1930년, '바디 앤 소울'을 처음 노래한 리비 홀맨)


비련의 노래들은 결백을 주장한다.


비련의 노래들은 결백을 주장한다. 노래의 이면에는 내가 희생자임을 주장한다. 삶의 고통 한복판에 놓여왔던 홀리데이가 평생을 두고 하고 싶었던 말이 그것인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떨림 하나하나는 영혼을 울린다. 그녀의 노래는 문장처럼 음으로 발언하고 회화처럼 풍경을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유산은 로맨티시즘의 패러다임을 배우라는 것이다. 비애는 창법으로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삶을 다해 통째로 그 비애를 받아들이고 맞서야 한다. 빌리 홀리데이는 상처로 점철되었으나 전사적인 기질을 동시에 가진 강한 토치 싱어이다. 그녀가 Cry Me A River를 부를때의 비장함을 보라. 내가 당신보다 더 흐느껴 울지 않았느냐, 왜 이제 와서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냐, 나보다 더 울어봐라……. 홀리데이의 비통이 절절히 느껴진다. 유년기의 창녀 생활, 결혼의 실패, 마약……. 불우한 그녀의 삶이 노래 곳곳에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사랑에 목말라했으나 사랑을 획득하지 못했던 홀리데이는 분명 결백한 희생자이다. 


'바디 앤 소울'을 처음 불렀던 리비 홀맨 역시 격정의 삶을 살았다. 부유한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녀 스스로 선택한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세 번의 결혼, 그중에 한번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고초를 겪기도 했고,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그녀들은 결핍된 어떤 것들을 비련의 노래로 표현했다. 그녀들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숙제를 줬다. 토치송을 제대로 부를 수 없다면 그대는 과연 훌륭한 싱어인가? 토치송을 한 곡이라도 마음에 품고 있지 않다면 그대는 과연 인간미가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윤리의 잣대로 빌리 홀리데이와 리비 홀맨의 삶의 여정을 평가절하시킬 수 있을지언정 그들이 낸 숙제에 관한 우리의 답이 과연 윤리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봐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미가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비애를 아는 사람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아프게 한적이 없는가? 우리는 피상적인 쾌락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정 낭만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진정 사랑을 추구하는가?


초기의 토치 싱어들은 1938년을 기점으로 인기를 잃어갔다. 전국에 스윙의 열풍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비련의 노래들보다 빠른 템포의 춤곡들이 인기를 얻었다. 토치송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많이 연주되고 작곡되었다. 재즈클럽에서는 비밥 연주자들에 의해 본연의 템포인 발라드로 혹은 아주 빠르게 연주되었다. 비밥 연주자들은 고난도의 빠른곡들을 창조해냈지만 토치송들도 절절하게 연주하곤 했다. 찰리 파커가 연주한 ‘안아주고 싶은 당신(Embraceable You)’, ‘당신을 잃는다면(If I should lose you)’을 떠올려보라.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인(Glad to be unhappy)’ 같은 곡은 몇몇 탁월한 연주자들에 의해 더욱 완성도 높은 곡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에릭 돌피의 플루트로 연주된 Glad To Be Unhappy는 바스르르 떨리는 초기 토치 싱어들의 버전처럼 심금을 울린다.



키쓰 자렛의 '토치' 사용법.


요즘 나는 키스 자렛으로부터 옛 토치 싱어의 그 비애로움을 느끼곤 한다. 키스 자렛과 찰리 헤이든의 듀오 앨범 <Jasmine>(2010, ECM)은 키쓰 자렛이 작정하고 비련의 미학을 쏟아낸 작품이다. 이 앨범의 ‘바디 앤 소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외에도 굿바이, 날 떠나지 말아요(Don’t Ever Leave me), 당신없이 내가 어딜 가겠어요(Where Can I Go Without You) 등 주옥같은 토치송들이 관능미까지 내뿜는다.  키스 자렛은 복잡한 화성이나 리듬 대신 70여년 전 토치 싱어들이 노래했던 그 방식대로 곡 본연의 애잔함과 슬픔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키스 자렛의 향수 어린 토치송 연주 컨셉은 페기 기의 노래로 히트했던 대표적인 토치 송 “열정(Fever)”을 연주했을 때 그 내막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연주를 2013년 12월 11일, 카네기 홀에서 들었다. 코드 시퀀스가 없는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이 곡을 자렛은 거의 변형하지 않고 화려한 기교없이 반복을 거듭하며 스케일을 연습하는 학생처럼 마이너 팬터토닉 안에서 충실하게 연주했다. 그는 벗어나지 않았고 넘어서지도 않았다. 청승맞음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는 그 촌스러움을 그대로 살렸다. 청중들은 자렛이 엉덩이를 비틀며 열정을 연주할 때 음악적 조크로 받아들이는 듯 어딘가에서 폭소도 흘렸으나 그것은 분명 실례였다. 자렛은 정말이지 진지했다. “열정”은 이런 대중 음악을 색다르게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기 위한 레파토리가 아니었다. 키스 자렛은 그가 “열정”을 연주한다는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를 원하는 듯 했다. 그는 후렴구를 거듭 반복하며 주문을 외우듯 변형없이 곡을 오랫동안 연주했다. 나는 이 곡의 가사를 상기하며 무릎을 쳤다. 


"열정"의 노랫말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와 개척시대의 캡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블루스처럼 후렴구에 아는 사랑의 이야기를 붙이면 이 노래는 끝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 베르테르가 들어갈 수도 있고 춘향이가 들어갈 수도 있다. 그의 손가락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캡틴 스미스와 포카 혼타스, 클레오 파트라와 안토니오,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베르테르와 롯테……자렛은 세상의 많은 치명적인 러브 스토리들을 그 안에서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날 키스 자렛으로부터 “열정”노래 사용법을 배웠다. 언어로 노래되지 않은 연주 음악에서 내 안의 언어를 끊임없이 담아낼 수 있었다. 듣는 이가 그걸 하기를, 그렇게 반복하기를 키쓰 자렛은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키스 자렛은 반주했고 나는 노래를 했다. 그 많은 사랑의 이야기를 담아서. 순수한 사랑, 절절한 사랑이 사라져가는 시대에서 그는 청중 모두가 그러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분명한 건 나는 이날부터 죽은 싱어 사회의 이탈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열정(Fever) 


           - 키스 자렛 연주 (2013년 12월 11일, 카네기홀 연주에서 

/ 음반으로는 나와있지 않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 거에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모를 거에요

당신이 나를 감싸줬을 때

나는 참기 힘든 열정을 느꼈어요




당신은 나를 달아오르게 만들어요

당신이 내게 키스를 했을 때


열정! 나를 꽉 껴안았을 때

열정! 아침에도, 열정! 밤새도록

해가 낮을 환하게 하고


달빛이 밤을 밝게 해요.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설래요

그리고 내가 당신을 위한다는 걸 알지


(……)


모든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당신도 아는 사실일 거에요.

열정은 새로운 것이 아니에요.

열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거에요.




로미오는 줄리엣을 사랑했어요.

줄리엣 그녀도 똑같이 느꼈고

그녀를 안았을 때 로미오는 이렇게 말했죠.

줄리엣 베이비, 당신은 내 불꽃이에요




캡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는 아주 열정적인 사랑을 했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그를 죽이려고할때

그녀는 말했어요

아버지, 안돼요! 죽이기만 해봐요!

그는 내게 열정을 줘요


그의 키스로 열정을 느껴요 그가 나를 가득 안았을때

열을 느껴요, 나는 그의 연인이에요, 그러니까

아버지, 그에게 잘 대해주세요




이제 당신은 내 이야기를 모두 들었어요

이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이거에요.

여자들은 당신에게 열정을 주기 위해 태어났어요

화씨로나 섭씨로나.




그들은 당신에게 열정을 줘요.

당신이 그들에게 키스 했을때

열정! 당신이 살아서 배우면

열정! 당신이 지글지글 타오를 때까지

얼마나 사랑스럽게 타오르나요…




             


<양수연이 추천하는 Tory Song들>




Mean To Me (작곡: 프레드 E. 아라트 / 작사: 로이 터크 / 1929년)


Billie Holiday, 1937년 5월 11일 녹음 (Columbia 35926)


앨범: Lady Day- The Complete Billie Holiday on Columbia 1933–1944


실연의 슬픔을 담은 Mean to Me는 아네트 한쇼가 1929년 처음 녹음했지만 빌리 홀리데이의 버전을 추천한다.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성적 성숙함, 스물 두살 빌리 홀리데이의 처연한 음성이 매력적이다.





Love me or Leave me (작곡: 월터 도날드슨 / 작사: 거스 칸 / 1928년)

Nina Simone


앨범: Little Girl Blue, 1957년 12월 녹음 (Bethlehem, 1958)


토치 싱어 루쓰 에팅이 1929년에 처음 녹음한 Love me or Leave me는 이별 통보를 앞둔 여인의 슬픔을 그린 아름다운 발라드곡이다. 니나 사이몬이 20대 중반에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 Little Girl Blue앨범에서는 빠른 스윙과 소울을 한껏 느낄 수 있다.




Body and Soul (작곡: 자니 그린 / 작사: 에드워드 헤이만, 로버트 사워, 프랭크 입튼 / 1930년)


Libby Holeman


앨범: Moanin’ Low - Early Recordings 1927-1934 (Take Two Records – TT415CD, 1995)


바디 앤 소울은 1930년 작곡된 후 영국에서 발표되었으나 미국에서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리비 홀맨이 처음 선보였다. 대표적인 토치 싱어로서 그녀는 이 노래의 히트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청초하고 우수에 가득한 음색, 리비 호울맨의 영원한 클래식으로 남을 연주.





Stormy Weather(작사 작곡: 해롤드 아렌, 데드 콜러 /1933년)

Lena Horne


앨범: Stormy Weather (56~57년 녹음/ RCA Victor – LPM-1375, 1957년)


빌리 홀리데이, 듀크 엘링턴, 엘라 핏제럴드를 비롯해 여러 연주자들이 Stormy Weather를 훌륭하게 연주했지만 1943년 영화 <Stormy Weather>의 사운드 트랙 버전도 유명하다. 레나 혼 그녀 자신이 출연했고 노래했다.





Glad to be Unhappy (작곡:리차드 로저스 /작사: 로렌즈 하트 / 1936년)


Eric Dolphy


앨범: Outward Bound (1960년 4월 1일 녹음/ New Jazz-NJLP 8236, 1960년)


에릭 돌피의 첫 리더작으로 프레디 허버드, 재키 브리드, 조지 터커, 로이 헤인스가 참여한 걸작. 수록곡 중 Glad To Be Unhappy에서 섬세하고 처연한 돌피의 플루트 연주가 일품이다. 가장 좋아하는 Glad to be Unhappy 버전.

                                                       (월간 재즈피플 2016년 9월호)











posted by jazzl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