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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모던 재즈의 ‘틈’으로서의 에릭 돌피, 앨범 <뮤지컬 프로펫>

에릭 돌피의 1963년 7월의 모든 레코딩을 담은 미공개 앨범, <뮤지컬 프로펫> 표지.

 

에릭 돌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허망하게 죽었다. 미국을 등지고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인정받을 기회를 찾아 떠났던 유럽에 온 지 두 달 만에, 그것도 베를린 공연 가운데. 본인도 몰랐다고 한다. 의사가 피검사만 했어도 당뇨인 것을 알았을 텐데. 마약과는 거리가 먼 에릭 돌피를 흑인이라는 이유로 지레짐작 마약 성분을 떨어뜨리는 엉뚱한 약을 줬다는 얘기가 있다. 뉴욕에 있을 때처럼 성실하게 돌피는 하루하루 음악적 목표를 이룩해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돌피는 유럽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짐을 슈트케이스에 담아 친구에게 보관을 부탁했다. 친구 헤일 스미스 부부는 돌피가 사망한 후 슈트케이스를 열었다. 그 슈트케이스에는 에릭 돌피의 레코딩과 악보들이 들어있었다. 헤일 스미스 부부는 그가 남긴 슈트케이스 유품을 에릭 돌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플루트 주자이자 프로듀서 제임스 뉴튼에게 양도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유품 속 레코딩, 그러니까 돌피가 사망하기 11개월 전인 1963년 7월 1일과 3일, 뉴욕의 뮤직 마커스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던 음악에 관한 것이다. 그 음악이 이번에 세상에 공개됐다. <ERIC DOLPHY: Musical Prophet: The Expanded 1963 New York Studio Sessions>이란 이름으로. 물론, 63년 7월 1일과 3일의 녹음 중 일부는 이미 앨범으로 나와 있었다. <Conversation>(Douglas, 1963)과 Iron Man(Douglas International, 1968)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던 거다. ‘얼터네이트 테이크’로 공개하지 않은 음악이 더 있었다. 이번에 나온 <Musical Prophet>은 미공개 음악만 따로 모은 것이 아니라 이틀간의 녹음분 모두, 그러니까 Conversation 앨범과 Iron Man 앨범으로 흩어졌던 레코딩까지 모조리 담아 실었다. 그래서 ‘Expanded’라는 소제목이 달렸다. 총 18곡의 음악이 모두 실렸으니 이제야 비로소 1963년 7월의 레코딩 완성체를 우리는 들을 수 있게 됐다.

Musical Prophet 앨범은 느닷없이 기획됐다. 피아니스트 제이슨 모란이 프로듀서 제브 펠드만에게 “에릭 돌피의 레코딩에 관심이 있습니까?”라고 묻기 전까지 그 유품 중 미공개 음원들이 남아 있다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했다.

제이슨 모란은 제브 펠드만에게 유품을 보유했던 제임스 뉴튼의 연락처를 줬고 제임스 뉴튼과 제브 펠드만이 의기투합하고 미 의회 도서관의 승인을 거친 뒤 이렇게 음악적 선지자, 즉 Musical Prophet이라는 이름의 앨범이 탄생한 것이다. 

앨범 수록곡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Musical Prophet 앨범은 3장의 CD로 구성하며 CD 1은 Conversations 앨범의 수록곡 4곡과 ‘Muses For Richard Davis’ 제목의 미발매 음원 2곡, CD2는 Iron Man 앨범에 수록한 5곡과 보너스 트랙 A personal Statement (앨범 Other Aspect에 Jim Crow로 명시), CD 3은 미공개 음원 Conversation, Iron Man의 얼터네이트 테이크인 미공개 음원들로 꾸려졌다. 

에릭 돌피와 함께한 연주자들은 다음과 같다. 윌리엄 “프린스” 라샤 (플루트), 휴웨이 “소니” 시먼스 (알토 색소폰), 클리포드 조던 (소프라노 색소폰), 우디 쇼 (트럼펫)-당시 열여덟이었다. 가빈 부쉘 (바순), 리처드 데이비스 & 에디 칸 & 로이 브룩스 (베이스), J.C. 모세스 & 찰스 모페트 (드럼), 밥 제임스 (피아노), 로버트 푸자 (퍼커션), 데이비드 스와츠 (보컬), 바비 허쳐슨 (비브라폰)이다. 특히 바비 허쳐슨의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다. 7개월 뒤 녹음한 <Out To Lunch>세션(에릭 돌피 사후 출시)에 바비 허쳐슨과 베이스 주자 리처드 데이비스가 참여했으니 말이다. 63년 7월의 녹음에서 Out To Lunch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바비 허쳐슨은 <Musical Prophet>에서 Jitterbug Waltz, Iron Man, Mandrake, Burning Spear 곡에 등장한다. 

콘트라베이스의 활과 베이스 클라리넷이 만날 때는 어떤가? 베이스 주자, 리처드 데이비스와 에릭 돌피의 듀엣은 진정 압권이다. 탄성을 부르는 듀엣곡 Alone Together, Music for Richard Davis, Come Sunday를 들어보라. 지금도 보기 어려운 베이스 클라리넷과 어쿠스틱 베이스의 듀엣 편성. 1963년, 그날은 확실히 사건이었던 거다. 육적(肉的)인 생생함으로 가득한.

 

돌피라는 완성체를 꿈꾸는 앨범 <뮤지컬 프로펫>

Musical Prophet 앨범은 제품이 주는 물질성에도 감탄하게 한다. 두텁고 촘촘한 라이너 노트는 감동이다. 이 앨범의 탄생 배경을 알리는 제브 필드만의 글, 에릭 돌피의 자필 악보, 에릭 돌피의 유품을 소장했고 Musical Prophet 앨범을 제작한 프로듀서 제임스 뉴튼의 글을 비롯해 존 콜트레인, 맥코이 타이너, 오네트 콜맨, 찰스 밍거스 등이 에릭 돌피에 대해서 코멘트한 자료를 모아 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니 롤린스의 에릭 돌피에 대한 회상의 글과 “에릭 돌피에 대한 대화”라는 제목으로 프로듀서 제임스 뉴튼과 베이스 주자 리처드 데이비스, 프로듀서 제브 프레드만과 색소폰 주자 소니 심슨의 대화가 정성스럽게 실려있는 등 에릭 돌피의 총체적 바이오그라피를 아름답게 구성해냈다. 에릭 돌피에 대해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지고 있는 기획자, 제작자, 콜렉터, 친구, 연주자들 모두가 에릭 돌피에 대해 보내는 존경과 설레임이 Musical Prophet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일찍이 이렇게 아름다운 에릭 돌피에 대한 트리뷰트가 있었던가? 하지만 이걸로는 안된다. 에릭 돌피의 트리뷰트가 완벽해지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리스너와 대화’이다. 제작자도 지인도 연주자도 아닌 현재의 우리, 1964년 세상을 떠난 에릭 돌피를 오직 앨범을 통해서만 경험했던, 혹은 이제 막 경험하고 있는 리스너들의 이야기를 포함해야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고, 그것을 Musical Prophet 앨범에 더하고 싶다. 그래야만 진정 아름답고 완전한 트리뷰트가 될 것이다. 그 리스너의 이야기는 내 사적인 영역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어메리칸 아프 폼의 이물질, 돌피라는 틈”

 

에릭 돌피는 나에게 큰 위력이 있다. 쾌락을 위해 지금도 유효하게 음미한다. 나에게 돌피는 재즈의 미학이 시작하는 최초의 단서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던 아이처럼 그에게 홀렸던 소녀 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나는 그로부터 재즈의 문맥을 읽는 법을 배웠다. 유치한 소녀에게 순수함과 무고함이 얼마나 아프고 뼈저린 것인지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다. 아마도 ‘새’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릭 돌피의 플루트는 새를 모델로 했다. 그는 새 소리를 녹음했고 느리게 재생하면서 새가 음계의 음들 사이에 다른 음을 가지고 있음을 주목했다. 이를테면 F와 이어지는 F#사이에 음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돌피가 F와 F#사이를, 음과 음 사이를 탐색할 때 나는 새와 돌피, 돌피가 내뿜는 음과 음 사이를 통과하면서 깊은 관능을 느꼈다. 그 음 사이에는 또 하나의 우주가 있었다. 음과 음 사이에 재즈의 핵이, 재즈의 비밀이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더 벌려보고 싶었다. 틈을 크게 만들어내고 싶었다. 확장한 그 안에 열 다섯 소녀의 상실감을 가득 채워놓고 싶었다. 우울한 사춘기의 현실은 그 틈으로 들어가 초월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실재가 되었다. 

인도 음악이 쿼터 톤을 가지고 있듯, 새도 특이한 스케일을 양산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처절하게 플루트를 부는 재즈 연주자가 있었던가? 새는 돌피에게 인간적인 것을 연장하는 도구였고 새에게 돌피는 자연적인 것을 연장하는 도구일 것만 같았다.

에릭 돌피의 플루트가 관능적이라면 그의 베이스 클라리넷 역시 플루트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다. 에릭 돌피는 재즈에 베이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를 혁신적으로 사용한 거의 최초의 연주자였다. 짙고 낮은 베이스 클라리넷의 음조. 새로운 음악의 기본 정조는 혹시 어두움이 아닐까? 암흑이거나 회색이 아닐까? 그래서 그것이 다름 아닌 존재의 색채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굴절하고 도약하는 독창적인 돌피의 사운드. 그것은 무언가를 부정하고자 치열하게 도출됐다. 안전한 질서의 부정. 그러나 그의 부정은 긍정의 기능이었다. 그는 부정을 꿈꾸게 한 자였다. 그는 완전히 파괴하지 않았다. 이것이 돌피의 매력이다. 그는 하모니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걸었다. 그가 더 살았다면 다른 걸 보여줬을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이만큼의 영역에서, 이만큼의 기법과 감성으로 듣는이를 꿈꾸게 하고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으로도 할 일을 충분히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평론가들에게 ‘안티 재즈’로 찍혀서 미국을 버리고 떠날 결심을 했다. 증오의 화살은 돌피가 맞았다. 상처받은 그 옆에는 존 콜트레인이 있었고 찰스 밍거스가 있었지만 돌피는 떠나야했다. 왜냐하면, 그의 본질은 새였으니까. 그는 날아야 했으니까.

돌피의 베이스 클라리넷을 들으면 죽음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 같다. 좋은 음악은 죽음을 암시한다. 진보한 음악은 무의 형상들이다. 에릭 돌피는 이후 본격적으로 도래할 프리 재즈에 대한 유보 조건이 됐다. 새로운 재즈의 모습을 그리는 하나의 형국이 됐다. 

베이스 클라리넷으로 연주한 첫 앨범 <Outward Bound>에서의 ‘On Green Dolphin Street’은 차라리 명랑한 편에 속한다. 이번 <Musical Prophet>에서 리처드 데이비스와의 연주한 곡들을 보라. 1961년에 녹음했던 ‘God Bless the Child’ 곡에서 베이스 클라리넷 소리를 보라. 이미 그때 에릭 돌피는 베이스 클라리넷의 한계 너머를 연주하고 있었다. 목구멍 저 깊은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울퉁불퉁하게 끄억거리는 공명. 클래식 오케스트라였다면 당장 퇴출할, 결코 1963년 이전에 재즈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마르고 격정적인 독립적 사운드. 

에릭 돌피는 알토 색소폰, 플루트, 베이스 클라리넷 모두 절정의 기교를 보여줬다. 넓은 간격의 음의 도약을 통해 악기 전체 범위를 사용했고 그가 원하는 곳 어디에서나 자신의 독창적인 프레이즈를 자유롭게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특히 알토 색소폰 연주에서는 하이퍼 드라이브의 찰리 파커를 연상하게 했다. 

재즈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던 1960년대, 에릭 돌피는 그 가운데의 ‘틈’으로서 존재했다. 그는 프리 재즈의 틈이었고, 리디언 크로매틱 컨셉과 쇤베르크의 음렬 주의의 틈이었고, 하모니와 멜로디를 해방시키려던 모달의 틈으로 존재했다. 모달이라는 이름으로 수직적으로 나갔던 음들을 수평적으로 재배치할 때 수직과 수평사이 교차점 가운데 틈으로 그렇게 자리했다. 우리는 혁명을 말할 때 에릭 돌피를 전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가 틈으로 존재하는 한 돌피는 언제나 혁명적이다. 그는 블루스 구문을 쓰지 않았지만 그의 음악은 블루스성이 존재했고, 파격의 굉음을 냈지만, 서정적이었으며 기괴했지만, 새처럼 신비스러웠다. 비밥의 후예였지만, 소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으므로, 그래서 혁명이었으나 납득과 열광이 가능했던 비밥, 그 비밥의 후예라기보다 미래의 음악을 제시하는 예언자가 돼야 했다. 소음으로 평가했던 돌피의 음악에서 특유의 색조와 균형 잡힌 음색의 조화를 헤아리는 자는 많지 않았다. 비밥의 등장으로 재즈는 개별 주체를 드러냈다. 주체의 재즈를 유연하게 하고 공격성과 파괴성을 순화시키는 방식으로 발톱을 드러낼 때 평론가들은 재즈라는 ‘어메리칸 아트 폼’에 이물질이 들어왔음을 알아챘다. 콜트레인 옆에서, 찰스 밍거스 옆에서 순한 양처럼 앉아있던 에릭 돌피는 영문도 모른 채 1963년 7월의 음악을 담은 슈트케이스를 내버리고 유럽으로 떠난 것이다.  이제 막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려 얼굴을 내민 순한 양. ‘안티 재즈’의 희생물. 

에릭 돌피는 시대에 저항하지만 동시에 다음 시대에 저항을 양보했고 자율성의 흔적을 남겼다. 리스너로서 나는 에릭 돌피라는 틈으로 재즈의 문을 열게 됐다. 그 틈 속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증류(蒸溜)된 사운드를 들이마실 수 있었다. 돌피가 추방하고자 했던 것은 도착증적 반복이었다. 헤드-솔로-헤드로 이어지는 재즈의 구조와 마디의 폐쇄성을 인지했고 그것에 새로운 칼러를 입혀서 가능성의 형국을 만들었다. 재즈 모더니즘의 한 가운데에서 틈으로 헌신했던 에릭 돌피. 재즈는 많은 걸 혁신해왔지만, 현재의 재즈는 너머의 경계 어딘가에서 정체한 듯 머물고 있다. 도대체 이 시대 그 어떤 연주자가 돌피의 음악을, 돌피의 정신을 성공적으로 발췌하고 있는 것일까? 틈을 더 벌려야 한다. 

(END) - 재즈피플 4월호, 글: 양수연

<뮤지컬 프로펫>앨범 라이너 노트는 앨범의 탄생 배경과 프로듀서, 존 콜트레인, 소니 롤린스 등을 포함한 여러 연주자들의 대화와 리뷰, 인터뷰로 촘촘히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