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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평생 사랑에 빠진 남자, 폴 블레이를 찬미하며


월간 재즈피플 -2016년 2월호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이다. 나는 그 작은 마을의 구석구석을 제법 잘 알고 있다. 아스라한 노을이 펼쳐진 해변에 누워 서핑하는 사람들을 하릴없이 바라보기도 했고, 오순도순 모인 빅토리아풍 집 정경이 펼쳐진 카페에서 우유 맛 나는 북태평양 굴의 비릿함에 취하기도 했다. 폴 블레이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소살리토가 떠올랐다. 몇해 전 나는 그곳에서 폴 블레이의 음악에 취해있었다. 소살리토에선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포근하고 나른한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아마 그때 들었던 음악에 54년 블레이 데뷔 앨범 [Introducing Paul Bley]도 있었을 것이다. 찰스 밍거스와 아트 블레이키, 특히 폴의 피아노가 무척 아름다웠던 ‘사랑에 빠진 것처럼(Like Someone In Love)’이라는 곡도.


폴 블레이는 그즈음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소살리토에서 칼라 블레이와 그림 같은 결혼식을 올렸다. 숲 속에서 은둔하며 피아노를 가르치던 칼라의 아버지도 왔고 향연을 즐기며 행복한 순간을 소살리토에서 누렸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왠지 칼라 블레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여인들이 있다. 자유롭고 고집스럽고 재능있는 여자들. 아티스트거나 히피의 후예이거나 어떤 무엇인 여인들. 나는 어린 칼라가 헐벗게 자랐을지언정 행복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샌프란스시코의 자연은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 같다." 폴 블레이는 그 점에 반했을 것이다.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사랑했고 그 자연의 돌봄을 받은 칼라를 사랑했다. 칼라는 해변에서 수영복이 없으면 두르고 있던 스카프로 브래지어를 만들어 척하니 걸치고 있는 여인이었다. 너무나 멋있어서 폴도 그녀와 진짜 사귀기로 마음 먹었다. ‘썸타는 사이’가 된지 하루가 안 된 시점이었다. 둘은 맨해튼의 ‘버드랜드’ 재즈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이들이 만난 정경은 폴이 자서전에 묘사해 놨다.


1956년 여름, 버드랜드에서 연주할 때였다. 뒷문 옆 평소 내가 주로 서 있는 자리에 키 크고 마른 여자가 짧은 스커트를 입고 서 있었다. 담배 파는 여자였다.  담배를 담은 쟁반을 목에 걸고 서 있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걸었다.

“당신 문제는 뭐요?”

그녀의 고민은 길었다. 이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클럽 사장이 치근덕대고 피곤하다……어쩌고저쩌고.

그때 그녀는 칼라가 아니라 캐런이라고 불렸다. 폴은 조언했다. 

“해법은 간단하죠. 지금 당장 담배통을 내려놓고 문밖으로 걸어나가세요, 그리고 당신 자신의 삶을 살아요.”

그러자 그녀는 담배통 쟁반을 내려놓았고 나랑 같이 문밖으로 나갔다.


폴 블레이의 앨범 [Annette] 수록곡 ‘Cartoon’처럼 만화의 한 장면 같다. 카툰의 다음 장면은 이것이겠다. 


LA에 머물고 있는데 칼라가 나랑 살고 싶다고 뉴욕에서 왔다. 그녀는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 결혼은 내 인생 우선순위에서 최하위에 있는 사안이었다. 뮤지션은 대부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라에게 말했다. “시간을 줘요, 우리 잠시 떨어져 있어요. 고민해 볼게요.” 칼라는 뜻밖의 내 대답에 실망한 눈치였다. 그 길로 그녀는 샌프란시스코로 가버렸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칼라가 있는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다. 그녀와 결혼할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흥분되어서 비행기 안에서 모든 사람과 수다를 떨었다.

현관문을 두드리니 한 남자가 나왔다. 어떤 아티스트가 칼라랑 살고 있었다. 칼라는 그 남자 옆에 서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당신 누구지? 이름이 뭐지? 이런 눈빛으로 날 쏘아보고 있었다. 내가 그 남자를 밖으로 불러냈다. 난 칼라랑 결혼하려고 이곳에 왔소. 당신은 혹시 칼라랑 결혼할 생각이 있나요? 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칼라에게 이제 결혼할 준비 됐다고 말했더니 그녀는 비꼬듯 대답했다 “오, 리얼리?”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결혼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나에게 쏘아붙였다. 나는 칼라에게 맘이 바뀌면 전화하라고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몇 주 후, 칼라의 전화를 받았다. 폴, 당신에게 가겠다고…..

 칼라 블레이와 폴 블레이, 1957년 결혼 초기 무렵


폴 블레이는 저도 모르게 열정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곤 했다. 여인들은 적극적으로 폴에게 다가와 그의 지순한 사랑을 얻어냈다. 두 번째 아내, 아네트 피콕도 그러했다. 그녀도 다재다능한 뮤지션이었고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의 아내로서 이미 교류가 있던 여인이었다. 1966년 게리 피콕과 별거 중인 아네트가 몇 년 만에 폴에게 느닷없이 전화했다. 그녀는 심리적으로 불안했다. 친구 집 지붕 위에 올라가 위험한 상황에서 폴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떨어진다구요. 제가 갈께요!” 

세번째 부인, 비디오 작가 캐롤 고스는 폴의 하우스 파티에서 만났다. 이번엔 폴도 첫눈에 그녀에게 반했다. 캐롤은 재능이 있고 지적이며 배려심도 많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폴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43년을 함께 했다.  


 아네트 피콕. 그녀는 칼라 블레이와 더불어 폴 블레이에게 음악적인 교감과 영향을 주고 받은 여인이었다.



폴에게 여자란 어떤 존재였을까. 폴은 그녀들이 원하는 자리에 있으려 노력했다. 어려서도 강하고 자기중심적인 여인에게 익숙했으니, 폴의 어머니 베티 얘기이다.

폴은 다섯 살 때 본인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 인생을 두고 큰 영향을 끼쳤다. 폴이 받은 두 번째 충격은 어머니 베티가 어느 날 첫사랑과 우연히 재회한 뒤 집을 떠난 일이었다. 부모가 부부동반으로 극장에 갔는데 그곳에서 어머니는 우연히 첫사랑과 마주친 뒤 아버지에게 이혼을 통보한 것이었다. 이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어머니는 폴을 데리고 첫사랑과 재혼을 했다. 사춘기 폴은 갑자기 새 아버지가 생긴 상황이 낯설고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음악에 더욱 정진했다. 어머니는 폴이 음악 공부를 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거금 500불을 쥐여주며 뉴욕으로 가라고 말했던 화끈한 여인이었다.


세 번째 충격은 시간이 흘러 1992년, 폴의 나이 60세에 일어났다. 클럽에서 한세트 연주하고 쉬고 있는데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그의 이름은 조나단 블레이. 폴에게 친척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신은 입양되었지만, 당신 아버지가 생부 맞아요, 생모는 당신의 유모, 루시였어요.” 

폴은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가장 행복하다고 여겨졌던 유년 시절의 기억에 유모 루시가 있었다는 점이 상기됐다. 그러나 폴은 청년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2년 후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에 갔다가 라디오 호스트 랜 도빈의 소개로 폴은 93세 되는 노인을 만나게 됐다. 그 노인은 폴의 입양문제를 처리한 당시 변호사였다. 폴은 아버지의 친구이기도 했던 그 노인과 점심을 먹으며 자세한 내막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 베티가 아이를 못 낳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자기 공장에서 일하던 루시라는 여인과 바람이 났고 폴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여인에게 그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했고, 베티가 그 아이를 선택하게끔 하였던 것이다. 베티는 원래 여자아이를 입양하려고 했으나 베티에게 다가와 ‘마마’라고 부르는 폴을 베티는 거부할 수 없었다. 절대 바닥에 다시 내려놓아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서 집으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생모 루시는 유모로 들어와 5년여 간 폴을 성심성의껏 돌보았다. 60세 폴은 성경에서 모세와 모세의 유모로 들어간 생모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아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폴 블레이.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허둥지둥 마음이 급해졌다. 뭔가 빨리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예전에는 어린 아이의 속도로 느리게 살고 있었는데 충격을 받은 후 시간은 총알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내가 역사가 없고 백그라운드가 부족하다는 허탈감. 음악만이 그 공허를 메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총알같이 달렸다.


그 총알 같이 달려온 시간 중 아름다운 몇 장면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958년 어느 날 폴은 매사추세츠주의 그 유명한 ‘레녹스 스쿨 어브 재즈 나잇’에 참가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LA의 힐크리스 클럽에서 찰리 헤이든과 빌리 히긴스와 고정적으로 연주했고 오네트 콜맨, 돈 체리도 불러 함께 하던 시절이었다. 레녹스에 가는 건 이스트 코스트 재즈신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경험할 좋은 기회였다. 이미 그곳엔 ‘써드 스트림’의 중심인물들, 존 루이스, 랜 블레이크, 조지 러셀을 비롯해 찰스 밍거스, 지미 쥐프리 등이 있었다. 폴은 칼라를 데리고 반대편 동부인 레녹스까지 삼일 밤낮을 운전했다. 그들이 가까스로 레녹스에 도착했을 때는 어느덧 밤 11시. ‘스쿨 어브 재즈 나잇’의 마지막 날의 마지막 곡이 소개되던 참이었다. 마지막 곡을 연주하려던 랜 블레이크에 다가갔다. “같이 연주해도 되요?”

폴의 향후 4년간의 연주 생활은 그날 연주한 마지막 한 곡에서 비롯됐다. 폴은 그 마지막 곡이 진정 인생 마지막 곡인 것처럼 온 에너지와 열정을 집중해서 연주했다고 술회했다. 그 공연 이후 찰스 밍거스, 조지 러셀, 지미 쥐프리, 랜 블레이크를 비롯해 많은 연주자가 폴과 함께 연주하고 싶어서 요청을 해왔으니 말이다. LA에서 레녹스까지 운전하면서 만일 단 한 곳에서라도 신호등이 초록색이 아니라 빨간색이었다면 아마 그날 무대에 서지 못했겠지? 폴은 이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날 만난 랜 블레이크와는 인연이 깊어갔다. 스티브 스왈로우를 폴에게 소개해준 것도 랜 블레이크였다. 랜은 폴에게 그가 몸담고 있던 바드 칼리지에서의 공연을 주선하면서 폴의 양해 하에 베이시스트 스티브 스왈로우를 데려왔다. 스티브는 당시 명문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수재였다. 폴은 스티브의 연주에 반해서 같이 연주하러 다니자 종용하기에 이르렀다. 스티브는 결국 예일대를 중퇴한 뒤 폴이 마련해준 거처로 옮겼다. 스티브의 집안은 발칵 뒤집혀 졌다. 스티브가 학업을 포기하자 부모의 충격이 몹시 컸다고 한다. 폴은 뉴욕의 자기 집 옆 6애버뉴의 빈 다락방에 방을 마련한 뒤 전등을 끌어와 스티브가 머물 수 있게 해주었다. 차후 스티브 스왈로우와 평생 연인이 될 폴의 아내 칼라도 이때 처음 스티브를 만나게 된다. 폴과 스티브는 그 뒤 2년간 듀오로 소호의 블리커 스트릿에 있는 작은 커피샵에서 연주했다. 폴은 그 당시 지미 쥐프리에게 스티브를 소개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을 끌었다. 폴은 지미에게 조금씩 스티브의 실력에 대해 풀어내며 함께 연주하게 되면 절대 음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할 따름이었다. 폴은 한달 가까이 이렇게 신신당부만하며 지미의 애간장을 태워놓았고 지미가 정말 베이스 주자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까지 더 기다렸다. 지미가 결국 스티브 좀 보자고 사정사정하는 시점이 되자 폴은 아끼는 친구 스티브를 데려왔다.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로 이루어진 전설적인 지미 쥐프리 트리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89년, 프랑스 재즈 매거진에서 지미 쥐프리 트리오의 재결성을 제안했고 지미, 폴, 스티브는 1990년에 다시 모여 <The Life of a Trio Saturday & Sunday>를 녹음했다. 지미 쥐프리 트리오의 세 장의 앨범 Fusion, Thesis,Free Fall이 나온 지 30여 년 만의 일이었다.  


폴 블레이는 평생 사랑에 빠져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랑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었다. 사랑했던 여인들과 음악적으로 함께 성장해 갔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평생 존경을 잃지 않았다. 칼라, 아네트 그리고 마지막 사랑이었던 아내 캐롤, 지미 쥐프리, 스티브 스왈로우, 게리 피콕과 그밖의 많은 뮤지션 친구들, 어머니 베티, 아버지 조, 유모 루시까지도. 그들을 향해 평생 사랑이 넘쳤던 폴 블레이, 진심으로 그의 명복을 빈다. 



(*본 칼럼에 등장하는 인용문은 1999년에 발간된 폴 블레이 자서전 <Stopping Time: Paul Bley and the Transformation of Jazz>를 참고한 것임을 밝힌다.)



<양수연이 뽑은 폴 블레이 앨범 10>




1.[Barrage] (ESP DISK, 1965)

칼라 블레이의 곡으로 이루어진 프리재즈 앨범으로 오네트 콜멘의 [Free Jazz] 앨범과 비견되는 수작. 선 라 밴드의 색소포니스트 마샬 알랜과 이듬해 존 콜트레인의 프리 재즈 걸작 [Ascension]에 참여한 트럼펫터 드위 존슨의 참여가 눈에 띈다. 

Paul Bley(p), Dewey Johnson(tp), Marshall Allen(as), Eddie Gómez(b), Milford Graves(perc)


2. [Closer] (ESP-Disk, 1966)

트리오로 녹음된 ESP에서의 두 번째 앨범. 수록곡 각각이 2-3분 내외로 짧으나 개성이 강하고 깔끔한 연주가 일품이다. 프리 재즈적 접근, 라틴 음악의 감각, 전통적 색채의 서정적 발라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짧은 곡들에 핵심적인 요소를 담았다. 칼라 블레이의 클래식 Ida Lupino을 비롯해 총 7곡의 칼라의 작품과 아네트 피콕, 오네트 콜맨의 곡도 한 곡씩 연주되었다. 

Paul Bley(p), Steve Swallow(b), Barry Altschul(perc)




3. The Paul Bley Synthesizer Show (Milestone, 1971)

폴 블레이는 일렉트릭 신디사이저 사용에 있어서도 선두주자였다. 아내 아네트 피콕의 작품들을 담은 퓨전 앨범으로 아네트 특유의 미니멀리즘적 요소를 담은 실험성이 돋보인다. 

Paul Bley(p, syn, ep-p),Glen Moore/Frank Tusa/Dick Youngstein (b), Steve Hass/Bobby Moses (d)




4. [Open, To Love] (ECM, 1972)

폴 플레이의 솔로 앨범으로 칼라 블레이 작품 세 곡(Closer, Seven, Ida Lupino), 아네트 피콕의 작품 두 곡(Open, to Love, Nothing Ever Was, Anyway)과 폴 블레이 작품 두 곡(Started, Harlem)이 하나의 큰 스토리를 들려주듯 아름답게 배치되고 연주되었다. 블루지한 슬픔과 서정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Ida Lupino’를 비롯해 모든 곡들이 빼어나다.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최고의 솔로 앨범 중 하나.

Paul Bley(p)




5. [Life of a Trio: Saturday & Sunday]

폴 블레이, 지미 쥐프리, 스티브 스왈로우가 ‘지미 쥐프리 트리오’ 이름 하에 30년 만에 만나 녹음한 앨범. 1989년 12월 16일 토요일과 17일 일요일 양일간에 걸쳐 두 장의 앨범으로 나뉘어 발매되었다. 각 연주자의 개성이 절제와 내적 융합으로 오묘하고 깊은 사운드를 만들어낸 수작이다.

Paul Bley(p), Steve Swallow(b), Jimmy Giuffre(ss, cl)



6. Plays Carla Bley (Steeplechase, 1991)

전 아내 칼라 블레이에 대한 경외를 담은 또 다른 컨셉의 앨범. Seven, Ida Lupino 등 폴이 즐겨 연주하는 칼라 블레이 주요 레파토리 외에도 Vashja, Floater, Around Again 등 칼라의 대표작 12곡이 스윙, 아방가드, 밥의 이디엄으로 연주되었다. 

Paul Bley(p), Marc Johnson(b), Jeff Williams(d)




7. [Annette] (hat ART, 1993)

아네트 피콕. 그녀를 주제로 한 이 앨범을 위해 전 남편들 게리 피콕과 폴 블레이가 함께 했다. 아네트의 대표곡Touching과 Blood는 take 1, 2로 나뉘어 연주되었고 애니타에게 바치는 Annette, Mister Joy 등 총 12곡의 수록곡은 생략적, 그야말로 프리 임프로비제이션의 미니멀리즘 미학이라 불릴만하다.

Paul Bley(p), Gary Peacock(b), Franz Koglmann(tp, flgn)




8. [Chaos] (1998, Soul Note)

피아노 솔로곡 -베이스 솔로곡 - 드럼 솔로곡- 트리오의 순서로 곡을 배치하였으며 독특한 감각과 아이디어로 색다른 칼러를 내뿜는 프리 임프로비제이션의 걸작이다. 

Paul Bley(p), Furio Di Castri(b), Tony Oxley(d)



9. [Sankt Gerold] (ECM, 2000)

폴 블레이, 애반 파커, 배리 필립스가 199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났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중턱의 장크트 게롤트 수도원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12곡의 프리 임프로비제이션으로 풀어낸 수작. 

Paul Bley(p), Evan Parker (ts, ss), Barre Phillips (b)



10. [Play Blue Oslo Concert](ECM,2014)

2008년 ECM의 에릭 콩쇽과 만프레드 아이어가 기획한 노르웨이의 ‘오슬로 재즈 페스티벌’에서의 솔로 라이브 실황으로 폴 블레이의 유작으로 남게 됐다. 폴 블레이의 작품 4곡(Far North, Way Down South Suite, Flame, Longer)과 소니 롤린스의 ‘Pent-up House’가 연주되었다. 노장 폴 블레이의 연륜이 집약된 더없이 열정적이면서도 시적이고 아름다운 솔로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