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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1943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듀크 엘링턴의 “Black, Brown and Beige”가 초연되던 날.

1943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듀크 엘링턴의 “Black, Brown and Beige”가 초연되던 날.


어느덧 밤 열두 시. 사람들이 일제히 문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1월의 야심한 토요일, 거리로 쏟아진 일련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수군거렸다. “도대체 지금까지 뭘 듣고 나온 거지?” 좀 전까지 카네기 홀의 청중이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세 시간을 넘긴 참으로 긴 공연이었다. 귀에 익은 멜로디도 있었지만 몇몇 곡은 몹시 길고 내용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월요일 아침, ‘뉴욕 헤럴드 트리뷴’은 신년을 맞아 카네기 홀이 야심 차게 준비한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 공연이 총체적인 실패였음을 알리고 있었다. 허세로 가득 찬 음악, 조잡하고 산만한 음악, 지루하고 요점 없는 음악……평론가 상당수가 이런저런 매체에 혹평했다. 백인의 세계에서 오롯이 빛났던 검은 천재, 당대 최고의 재즈 스타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더없이 혹독한 비판이었다. 듀크 엘링턴이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45분짜리 대작 “Black, Brown and Beige”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이 날, 댄스 홀을 벗어나 인생 처음으로 카네기 홀 무대에 섰던 이 날, 듀크 엘링턴에게 1943년 1월 23일 이날은 최악의 매서운 날로 기록되려 하고 있었다.

Black, Brown and Beige는 아메리칸 흑인의 애환을 담은 긴 오케스트라 작품을 만들겠다는 듀크의 염원으로부터 출발한다. 듀크는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로 들어오면서 시작된 아메리칸 흑인의 역사를 Black / Brown / Beige 라 명명된 세 개의 악장에 나누어 담았다. 1930년대 스윙 시대를 이끌어온 주역이었지만 듀크는 일개 밴드 리더나 송 라이터가 아닌, 바르톡이나 스트라빈스키에 비견될 만한 작곡가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파퓰러 작곡가로 출발해 큰 무대에서 뜻을 펼치고 평단의 인정을 받은 조지 거슈인처럼 듀크는 흑인 작곡가로서 흑인의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점치는 음악적 예지자가 되기를 소망했다. 이를 위한 듀크의 첫 도전은 이미 1931년 Creole Rhapsody로 시작되었다. 단편 영화로도 나온 Symphony in Black (1934년), 어머니의 사망 후 예술적인 자각에 힘입어 완성된 Reminiscing in Tempo(1935년)도 그 일환이었다. 특히 네 개 파트로 이루어진 Reminiscing in Tempo은 78rpm 두 장에 나누어 담길 만큼 긴 작품이었다. 그러나 듀크의 예술적 시도는 번번이 평단의 외면을 받았다. 댄스 홀에서는 거물로 인정받았지만 평론가들에게 듀크는 진부하고 틀에 박힌 작곡가에 불과했다. 듀크를 코튼 클럽에 연결해주고 재즈의 스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매니저 어빙 밀러도 Reminiscing in Tempo가 발매된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듀크와 멀어졌다. 어빙 밀러는 듀크와 재정적으로 반반의 수익을 나누어 갖기로 계약된 관계였고 악보 출판업자로서 듀크의 작품에 공동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밀러가 보기에 Reminiscing in Tempo와 같이 복잡한 긴 오케스트라 작품 따위가 수익을 안겨줄 리 만무했다. 결국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두번 째 유럽 투어 길에 오른 1939년 듀크와 어빙은 완전히 결별한다. 

1942년, 듀크 엘링턴의 새 에이전시인 윌리엄 모리스가 카네기 홀 무대에 올릴 긴 작품을 만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듀크는 전율했다. 클럽 청중의 입맛에 맞춘 댄스곡이 아닌 진정한 예술 작품을 작곡할 명분이 주어진 것이었다. 1943년 1월 23일 토요일, 카네기 홀은 전쟁 중인 러시아 주민을 위한 성금 모금을 위해 특별한 신년 콘서트를 발표한다. 흑인 재즈 작곡가를 위한 최초의 무대. 아카데믹하고 섬세한 청중이 기다리는 카네기홀 입성을 위해 듀크는 고도의 몰입으로 작품에 매진한다.

1943년 1월 역사적인 듀크 엘링턴의 카네기 홀 데뷔 공연은 1977년에 이르러서야 음반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The Duke Ellington Carnegie Hall Concerts: January 1943, Prestige – P-34004) 3장의 LP로 차곡차곡 담긴 그 날의 무대를 반세기 이상 흐른 지금에 와서 듣노라면 그저 감개무량하고 감사할 뿐이다. 듀크 엘링턴의 멘트는 침착을 가장하지만 다소 격양되어 있다. 그가 이날을 위해 작곡한 A Tone Parallel to the History of Negro in America라는 부제가 달린 흑인의 서사시 <Black, Brown, Beige>는 매 악장이 연주될 때마다 그 의미에 대해도 설명되었다. 흑인의 고난을 다룬 22분짜리 1악장 “Black”. 강한 베이스 라인은 흑인의 비극을 암시한다. 12분 50초 부분에서 등장하는 조니 호지스의 처연한 색소폰 솔로는 다름 아닌 Come Sunday이다. 비통에 찬 이 극도로 아름다운 멜로디는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간판 멤버 조니 호지스를 위해 작곡한 곡이었다. 아름답고 슬픈 Come Sunday가 끝나면 다소 혼란스러운 새로운 국면의 리듬과 멜로디로 악장이 채워져 간다. Come Sunday의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공연 후 가장 혹평이 쏟아졌던 첫 악장에 대한 평가를 일부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산만함에 대한 지적은 그릇되다 할 수 없다. 짧은 곡들이 꼬리를 물며 등장하기에 전체적인 조화나 통일성을 찾기가 어려운 면도 분명 보인다. 그러나 평론가 헨리 사이먼의 혹평은 과도하다 “1악장 Black이야말로 거의 망가진다. 2악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분산되면서 망가진다”라고 썼다. 월드 텔레그램 신문은 “너무 길다, Black, Brown and Beige를 가지고 24개의 짧은 곡을 만들 수 있을 것을 심포니로 만들어놓았다.” 뉴욕 포스트는 “했던 말을 반복하는데 쓸데없이 45분이나 걸렸다”고 비아냥거렸다. “과연 듀크가 오케스트라 작품을 쓸 능력이 되는가? 듀크가 재즈를 버렸는가?” 따위의 힐난은 새해 벽두부터 듀크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 팠다. 무엇보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폴 바울스의 리뷰는 직격탄이었다. 듀크는 큰 충격에 빠진 나머지 한동안 작곡에 손을 대지 못할 정도였다. 

“듀크 엘링턴은 악장이 시작되기 전에 거창한 내용에 관해서 설명을 했지만 결국 속된 댄스 음악과 기교 부리는 솔로가 내용의 전부였다. 조잡스러운 원곡을 조잡스럽게 인용했다. 전체의 곡 진행을 방해하는 반복적인 클라이맥스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심포니를 흉내 내지만 템포는 들어 맞지 않는다. 템포를 방해하려는 위험한 성향이 무척이나 많이 보인다. 규칙적인 비트가 없다면 싱코페이션도 없을 수밖에 없고 텐션도 없으며 결국 재즈도 없다. 

재즈를 예술 음악(클래식)과 결합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재즈와 클래식은 극과 극으로 서로 다르게 존재하며 둘 다 동시에 초점을 맞추기 힘들다. 재즈와 클래식은 다른 주파수로 존재하는 음악이다. 조율은 불가능하다.”

듀크의 꿈, 듀크의 소명.

모두가 희망을 말하는 신년, 그래서인지 나도 2016년 첫 호부터 누군가의 실패와 절망을 다루는 것이 유감스럽다. 신년 벽두부터 상심에 가득 찬 사람이 다름 아닌 영화배우처럼 근사하게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는 신사 듀크 엘링턴이라는 점이 애석하다. 그는 카네기 홀에서 화려하게 데뷔식을 치르고 진정한 현대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는 위치가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1924년 조지 거슈윈의 Rhapsody in Blue가 그러했듯 그 누구의 영향이 아닌 오직 블랙 스윙의 요소로 훨씬 젊은 나이에 예술적 지위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듀크 엘링턴은 1936년 7월 다운비트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음악적 소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숲 속에서 스윙하며 흔들거리는 덩굴의 소리를 아직 잡아본 적이 없어요. 그 덩굴이 부드럽게 흔들거리며 나뭇잎을 규칙적으로 리드미컬하게 가볍게 스칠 때의 그 순간을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음악 역사의 획기적인 순간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듀크 엘링턴은 화려한 무대 매너와는 달리 매우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다. 다정다감하고 시적이었으며 혼자 고민하기를 즐겼고 두루두루 좋은 인간관계를 가졌지만 특별히 누군가와 깊게 지내지는 않았다. 문학적이었고 신사적인 사람이었다.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에 20년 장기 단원들이 있는 이유도 그의 좋은 성품 탓도 한몫했다. 그는 자존심이 셌지만 느긋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카네기 홀 공연의 혹평으로 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서서히 스스로 치유를 해 나갔다. 그를 믿고 의지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책임도 있었다. 듀크는 빌리 스트레이혼이라는 젊고 유능한 작곡가와 재능있는 단원들이 있었다. 빌리 스트레이혼은 Take A Train 곡을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에 선사한 듀크의 오른팔과 같은 존재였다. 

듀크 엘링턴은 Black, Brown and Beige에 대한 평단의 혹평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비판의 요소들을 면밀히 살펴 그 곡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보통 작곡가라면 그저 내버려둔 채 후세의 다른 평가를 기대할 법도 한데 듀크는 가슴을 후벼 파는 비난을 수용하면서 일일이 고쳐나갔다. “조잡한 짧은 곡들의 긴 나열”이라는 부분을 깊게 염두에 두었다. 듀크는 곡의 구성에 큰 변화를 줬다. 조화로움을 위해 Come Sunday의 멜로디를 주제로써 극대화하였다. 이윽고 1958년, 듀크 엘링턴은 십 오 년 전 카네기 홀 무대에 올랐던 Black, Brown and Beige 새로이 각색하여 녹음하게 된다.

콜롬비아 레코드를 통해 발매된 <Black, Brown and Beige>(Columbia-CS 8015)는 Part I (Work Song - Full Orchestra) - Part II (Come Sunday Instrumentally) - Part III (Work Song And Come Sunday) - Part IV (Come Sunday) - Part V (Come Sunday Interlude) - Part VI (23rd Psalm)로 전격구성되었다. 초연 당시 조니 호지스의 솔로로 연주된 Come Sunday는 마할리아 잭슨의 노래로 부활했다. 조니 호지스가 로맨틱하고 처연하게 Come Sunday를 연주했다면 마할리하 잭슨은 파워풀한 가스펠로 신을 향한 애절한 기도를 담았다. 

1958년의 < Black, Brown and Beige>는 50년대 초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침체기를 벗어나 이들의 부활을 알렸던 1956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출연 직후 야심차게 추진된 것이었다. 50년대 초반, 듀크 엘링턴은 큰 시련의 시기를 보냈다. 조니 호지스, 로렌스 브라운, 소니 그리어 등 주요 멤버들이 밴드를 떠났고 청중은 로큰롤이나 프랑크 시내트라와 같은 보컬 음악으로 쏠렸다. 게다가 듀크는 한 매체의 잘못된 인용으로 큰 낭패를 봤다. 듀크가 흑백인종 분리정책에서 흑인이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다고 잘못 알려진 것이다. 이 말은 흑인의 공분을 샀고 흑인 청중이 듀크에게 등을 돌리게 하였다. 56년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 출연을 계기로 명실상부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권위가 회복되었다고 평가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의미의 듀크 재탄생은 바로 1958년 앨범<Black, Brown and Beige>에 기인한다. 이 앨범 속에는 듀크가 바랐던 음악적 소명, 쓰라렸던 1943년, 실패와 좌절 그리고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고스란히 녹아있으니까 말이다. 1958년 앨범<Black, Brown and Beige>은 온전히 평가받았으며 비로소 위대한 작곡가 듀크 엘링턴의 지위를 확고히 만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60-70년대에 발표된 스피리츄얼한 <Sacred Concert> 작품의 원동력이 되었다. 

듀크가 바르톡처럼 스트라빈스키처럼 조지 거슈윈처럼 인정받으려 했던 욕망은 결코 허세로 치부될 수 없다. 덩굴의 미세한 스윙, 미세한 흔들림을 포착하고 싶다는 그의 말, 그 시절 그 누구도 이렇게 아름답게 말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그것은 순수하고 내밀한 그의 감성이 만들어낸 그 시절 그 누구도 쉽게 꿈꿀 수 없는 아름다운 소망이었다.




마할리와 잭슨과 듀크 엘링턴을 커버로 한  <Black, Brown and Beige>앨범 (Columbia-CS 8015)






1958년 <Black, Brown and Beige>녹음 중인 듀크 엘링턴과 마할리아 잭슨






1977 발매된 1943 카네기홀 데뷔 공연 실황 앨범 The Duke Ellington Carnegie Hall Concerts: January 1943 (Prestige – P-34004)







1943 1월 23일. 듀크 엘링턴의 카네기홀 데뷔 공연 포스터





사진설명

1. 1943년 1월 23일. 듀크 엘링턴의 카네기홀 데뷔 공연 포스터

2. 1977년 발매된 1943년 카네기홀 데뷔 공연 실황 앨범 The Duke Ellington Carnegie Hall Concerts: January 1943 (Prestige – P-34004)

3. 1958년 <Black, Brown and Beige>녹음 중인 듀크 엘링턴과 마할리아 잭슨

4. 마할리와 잭슨과 듀크 엘링턴을 커버로 한  <Black, Brown and Beige>앨범 (Columbia-CS 8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