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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재즈탐미 4회)나와 음악, 진정한 향유가 가능한 곳. 그곳에는 재즈 클럽이 있다.

월간 재즈피플 2014년 4월호

진정한 향유가 있는 곳, 그곳엔 재즈 클럽이 있다.

릭(Licks)은 세익스피어 경구처럼 아름다운 것




지금 나는 여행 중이다. 맨해튼 레스토랑 로우(Row)의 한 식당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주문한 애피타이저를 기다리면서 연신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동시에 내 귀는 이 식당을 메우고 있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식당이나 카페에서 흐르는 마일스의 음반들은 59년 Kind of Blue라든가 Relaxing, Cooking 내지는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음반 등 주로 50년대 중 후반 이후의 앨범들이 많은 편인데, 지금 이 식당에선 마일스의 40년대의 초기 연주들이 흐르고 있다. 때로는 빅밴드 스타일, 때로는 소규모 편성 속에서 빠르고 흥겹게 그의 연주가 흘러나온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Donna Lee를 콧노래로 따라부를 수 있는 이 기쁨이란! 낡은 음질이지만 어둠 속에서 매처럼 번득이는 마일스의 눈매가 그대로 느껴진다. 무대의 붉은 조명이 그 눈매를 비춘다면 청중은 심장이 멎을 것이다. 조명 속 그의 눈매를 보았던 그 시대 청중이야말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존재 중 하나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이곳을 떠나면 나는 재즈 클럽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마일스처럼 강하든 강하지 않던 연주자들의 모습과 연주를 직접 체험할 것이다.


맨하탄 재즈 클럽, 55Bar. 3월 16일, 이날은 기타리스트 빅 주리스의 공연이 열렸다. 작고 허름한, 오직 연주자와 청중을 위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즈 클럽이다.  


위대한 컨텀포러리 임프로바이저들의 향연, 데이브 리브맨, 마크 코플란드, 리치 바이락.

 

지난 이 주간 나는 몇 군데의 재즈 클럽에서 인상적인 연주를 들었다. 

데이브 리브맨과 마크 코플란드 듀엣, 리치 바이락과 제이미 바움 듀오, 론카터, 도널드 해리슨, 빌리 콥햄 트리오, 빅주리스 트리오와 차세대 신인 트럼페터 암브로즈 아킨시뮤레와 월터 스미스 3세 퀸텟 등 모두 이 시대 내로라하는 재즈 뮤지션들이다. 또 하나의 이 시대 위대한 기타리스트 빅 주리스와 색소포니스트 암브로즈 아킨시뮤레의 음악에 대해서는 지면상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데이브 리브맨과 마크 코플란드의 공연은 3월 15일 케임브리지 시 릴리 패드에서 열렸다. 데이브 리브맨에 대한 나의 애정은 거의 추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음악을 들을 때 마다 금욕적인 태도로서 일체의 음악적 허영도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분석적으로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은 그 자체가 이론이자 그 이론을 벗어나 있다. 나는 그의 79년도에 발매된 Dedlication(헌정) 음반을 특별히 좋아한다. 이 음반에는 리브맨의 음악적 동지 피아니스트 리치 바이락을 위한 “The Code’s Secret Code”과 2차 세계 대전 당시 트리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죽은 100만명의 사람들에게 헌정된 “Treblinka”이 수록되어 있다. 무겁게 시작되는 현악기들의 인트로를 지나가다보면 리브맨의 서정적인 멜로디에 이른다. A-B-C-A 구성으로 주멜로디의 변주가 계속 이어지다가 섹션 B에서는 전 악기가 퍼커시브 필링으로 리드미컬한 하모니를 자유분방한 느낌으로, 섹션 C에 이르러서는 리치 바이락과 데이브 리브맨이 인상적으로 교감한다. 리브맨의 곡들은 대단히 치밀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음반에서와같이 무겁고 비극적인, 때로는 서정적인 메세지들이 있다. 이번 마크 코플랜드와의 듀오 역시 탄탄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재즈가 커뮤니케이션의 음악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최근 발매된 프레디 허버드와 줄리앙 라지의 Free Flying 음반과 같은 일종의 완벽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처럼. 마크 코플란드의 페달을 많이 쓰는 아르페지오에 내재된 깊은 그루브를 타고 리브맨의 소프라노 색소폰은 좁은 공간을 박차고 나갈 듯 저돌적이면서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그의 음악이 지닌 특유의 지성미, 특유의 칼러는 즉흥 연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며 청중의 귀 속으로 이내 스며든다. 

3월 6일 케임브리지 레가터 바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리치 바이락 콘서트도 리브맨과 같은 맥락 즉, 하모니, 멜로디, 리듬, 톤, 칼러 등에 있어 끊임없는 혁신성을 보여주었다. 이날 리치 바이락의 연주는 불과 열흘 전후로 결정된 것이었다. 그의 공연은 매우 드물었고 따라서 그날 그의 청중이 된 것이 행복했다. 크로매티즘 이론을 집대성한 데이브 리브맨의 저서 A Chromatic Approach to Jazz Harmony and Melody에는 그에게 영감을 준 리치 바이락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는데 이들 두 사람, 데이브 리브맨과 그의 동지 리치 바이락을 열흘 간격으로 만났던 것은 나로서는 큰 영광이었다. 바흐에서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클래식 음악 역사에서 크로매티시즘은 진화를 거듭해왔지만 짧은 재즈의 역사 속에서 임프로바이징의 지평을 넓혀주는 요소로서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은 데이브 리브맨, 리치 바이락과 같은 위대한 컨템포러리 임프로바이저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가는 재즈 클럽, 그리고 나의 핫하우스 재즈 클럽.

 

어느 수요일 밤, 빌리지 뱅가드나 55Bar와 같은 재즈 클럽에 혼자 앉아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재즈 클럽에 나는 주로 혼자 간다. 공연장은 여럿이 가는 것을 즐기지만 재즈 클럽 만큼은 혼자가 좋다. 진정한 의미에서 무대의 주인공이 재즈 뮤지션이 되는, 오직 퍼포먼스가 중심에선 그러한 재즈 클럽말이다. 이왕이면 테이블 차지가 있는, 그 테이블 차지나 티켓 수익이 뮤지션들에게 돌아가는 그러한 클럽 말이다. 뮤지션이 중심이 되고 청중이 중심이 되는 그곳에서 음식이나 음료 따위를 즐기는 나의 미각은 이차적인 것이다. 나에게 있어 연주는 연주, 음식은 음식. 콘서트홀에서 좋은 연주를 듣고 나이스한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거나 인터미션 때 샴페인을 먹는 것은 기꺼이 즐기지만, 재즈클럽에서 이러한 식감에 대한 교감을 누군가와 나누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저런 재즈 외의 화제들로 분위기를 나누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 내가 누군가를 재즈 클럽에 데려왔다면 그 또는 그녀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는데 이 상황을 또한 피하고 싶다. 오직 음악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나는 혼자가 좋다. 그 음악이 좋던 아니던 그 누구보다 진지한, 좋은 오디언스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십 오년 전 홍대에서 재즈 클럽 핫하우스를 오픈했을 때를 기억한다. 작은 클럽이었지만 충분한 바가 있었고, 테이블에서도 혼자 앉아 음악을 듣는 청중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때론 테이블을 쉐어 했고 과묵하게 음악에 집중했다. 나는 그러한 청중들을 좋아했다. 나는 그 때 핫하우스의 훌륭한 젊은 뮤지션들과 청중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젊은 뮤지션들은 지금은 쟁쟁한 중견 뮤지션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 때의 청중들 또한 지금의 나처럼 어디에선가 깊이 음악을 즐기고 있으리라. 그때 나는 클럽 구석의 오피스에 조용히 앉아서 무대와 청중을 번갈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곤 했다. 당시 티켓료는 공연에 따라 적을 때는 삼천 원 많을 때는 만 원 정도 했었는데 처음에 반발이 많아서 모 커뮤니티에 ‘안티 핫하우스’가 카페로 개설되기도 했다. 그들은 공연이 중심이 되는 클럽을 도무지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또 다른 챌린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안티카페는 몇 주가 안되어 사라졌고 청중들은 묵묵히 티켓료를 지불했다. 다행히 그 카페는 몇 주가 안되어 사라졌고 청중들은 묵묵히 티켓료를 지불했다. 좋은 청중들이 클럽으로 모여 들었다. 그것은 나의 챌린지가 성공했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내 클럽에서 연주자는 존 케이지 이상의 실험을 할 수도 있었고 스트라빈스키를 연주하는 윈튼 마샬리스처럼 클래시컬 할 수도 있었다. 신인 뮤지션들의 데뷔 무대가 되기도 했고 그래서 낮에는 항상 오디션이 있었다. 그때의 즐거웠던 기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 가면 지금처럼 재즈 클럽에 혼자 갈 것이다. 혹시 재즈 클럽에서 혼자 마티니를 마시며 연주를 듣고 있는 묘령의 여인이 보인다면 그녀가 대단히 프라이빗한 재즈 아피시아나다(aficionada)일 뿐이라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릭(Licks)은 세익스피어 경구처럼 아름다운 것, 론 카터, 도널드 해리슨, 빌리 콥햄 트리오.

 

도널드 해리슨, 론 카터, 빌리 콥햄 트리오의 연주는 데이브 리브맨의 공연이 열리기 이틀 전인 3월 13일 케임브리지 레카터 바 재즈 클럽에서 열렸다. 이들 트리오는 10년 넘게 투어해왔고 이날도 전통적인 포스트 비밥 튠을 연주했다. 여든을 향해 가는 베이시스트 론 카터는 하얀색 포켓 스퀘어와 블랙 수트를 입고 등장했다. 론 카터가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했던 Sorcerer나 E.S.P, Nefertiti 음반에서 얼마나 대단했는지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All Alone, Peg Leg를 비롯한 그의 리더작이라던가 소위 포스트 마일스 이후의 활동은 기대에 미흡했던 부분이 있다. 심지어 그가 시도했던 바흐의 곡들이 미흡했노라 그 스스로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든 적도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론 카터의 전성기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 그를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를 보기 위해서 300마일을 달려갈 수도 있다. 행여 명성에 기대어진 과장된 평가를 받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가 오랫동안 이 세상에 남아 연주를 들려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을 튕길 때마다 나뭇가지처럼 흔들리는 유난히 긴 손가락, 다크 브라운 업라잇 베이스, 블랙 수트, 그의 미소 모두를 사랑한다. 

그는 오랫동안 솔로를 한다. 대다수의 청중들은 중장년층이었는데 그들을 향한 팬서비스, 이를테면 You are My Sunshine 같은 곡을 10여 분 넘게 홀로 연주하는 것은 그의 의도대로 성공적인 팬서비스였다. 그러나 나는 아는 곡이 나온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음악적 조크로 받아들이는 것, 끊임없이 웃는 청중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로 중간에 느닷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조크를 발견했을 때 잠시 웃고 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연주자가 의도하는 한, 그가 괜찮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청중들의 태도 역시 그들 음악 세계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식으로 그들의 음악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다. 

빌리 콥햄, 이 시대 최고의 드러머 중 하나로서 그의 명성을 한 번에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와 론 카터는 대단히 잘 어울렸다. 그는 자기의 화려한 드럼 솔로를 한 번만 보여줬지만, 매곡 마다 나는 그가 없었더라면, 없었더라면…이런 생각을 했다. 그와 론 카터는 대단히 잘 어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론 카터는 콥햄의 73년도 데뷔 음반 Spectrum에서부터 함께 했었다. 퓨전 재즈 명반이라고 할 수 있는, 콥햄의 모든 것이 총 망라되어 있는 이 기념비적인 음반에서와 같이 그의 연주는 록과 재즈의 그 모든 보케브러리를 가지고 있으며 대단히 복잡한 드러밍을 선보인다. 이 날 연주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노장 드러머의 모습에 모두가 감동을 받았다. 뉴올리언즈 출신의 기품있는 색소포니스트 도널드 해리슨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스트라이프 수트에 붉은 색 포켓 스퀘어를 가슴에 꽂고 정중한 태도로 연주를 했다. 그의 연주가 엄청나게 새로웠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최소한 뉴올리언즈의 전통에서부터 비밥까지 재즈 색소폰이 지닌 향수를 듬뿍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연주는 이제 막 50줄에 들어선 그의 나이만큼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많은 연주자들이 그들의 릭(licks)을 연주한다. 혹자는 클리세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모든 연주가 릭으로만 이루어졌다면 모르겠지만 솔로에서 적절한 릭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릭을 들을 때 나는 세대와 세대로 이어져가는 전통과, 그것을 만들고 만들어진 것을 연습해왔던 연주자의 땀방울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 세익스피어의 경구나 적절한 사자성어처럼 효과적이다. 특히 색소폰 주자에게서 이따금 보여지는 찰리 파커의 릭은 눈물나게 아름답다. 콜맨 홉킨스의 아름다운 명 솔로에서 아이디어를 뽑은 릭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것은 재즈의 랭귀지이고 보케브러리 중 하나이다. 

이 트리오 그룹은 적절한 릭을 사용하면서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이들의 오랜 호흡, 무시할 수 없는 연주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들의 연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로비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도널드 해리슨이 내게 다가왔다. “당신이 사진 찍는 것을 보았다. 내게 보내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 그의 고향 뉴올리언즈의 재즈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론 카터가 그를 부르며 다음 공연을 상기시킬 때까지 20여분. 헤어질 때 그가 말했다. 나, 미스터 카터, 미스터 콥햄은 우리의 본능으로 교감한다. 예술에 대한 열망이 있는 장소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낸다. 이 재즈클럽의 많은 청중들에게 나는 그 열망을 읽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죽을 때까지.

피아니스트 리치 바이락, 3월 6일 케임브리지 시 레가터 바의 공연. 

데이브 리브맨

데이브 리브맨(우)와 마크 코플란드(좌). 3월 15일 케임브리지 시의 릴리 패드 공연. 이들 음악이 지닌 특유의 지성미, 특유의 칼러는 즉흥 연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론 카터와 도널드 해리슨. 3월 13일 케임브리지 시 레가터 바에서의 트리오 공연. 이들은 무시할 수 없는 오랜 연주 경험에서 비롯된 감동을 청중들에게 선사했다. 

론 카터, 도널드 해리슨과 함께 10년 넘게 투어를 해왔던 드러머 빌리 콥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