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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멜로디에 자유를 부여하라.-마일스 데이비스의 꿈, 모달을 만나다.

멜로디에 자유를 부여하라.

마일스 데이비스의 꿈, 모달을 만나다.     

-월간 재즈피플 6월호


탐미주의자로서 나는, 창작을 위한 영감(靈感), 창작을 위한 예술가의 고통을 헤아려야 함을 안다. 그 영감을 위해, 천재적인 예술가의 행위가 설령 도덕의 잣대를 비켜갈 경우에도 이를 만류하고 비난할 용기가 없을 수도 있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통해서만 창작의 영감을 얻는, 소설 <광염 소나타>의 주인공 같은 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움을 갖은 적이 있다. 천재적 예술가의 특수함이 광인의 퇴행적 병리와 동일시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다행히 나의 재즈 탐미 세계에서 실제로 그런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수의 재즈 연주자들이 과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는 연습과 공부를 독창성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중에서도 마일스 데이비스, 그는 디오니소스와 아폴로적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된 진보의 화신이었다. 마일스 데이비스, 이 일곱 음절은 내 탐미 여행의 주요 정박지요, 어슴푸레한 안개 너머로 서서히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잉카 제국처럼 일종의 문명이 되었다. 마일스가 받은 영감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공부했는지에 대해서 나는 탐험가가 된 양 언제나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안개를 헤치며 화려하게 솟구쳐오른 문명의 자태를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떠본다. 그러니 56년 전 오늘을 마주하게 된다. 4월 22일, 뉴욕의 콜롬비아 스튜디오. 마일스 데이비스는 <Kind of Blue>를 위한 마지막 녹음에 열중하고 있다.


마일스는 번영된 도시를 이룩하려는 제국의 황제처럼 근엄한 얼굴로 “멜로디에 자유를 선사할 것”을 지시한다. 이 지상 과제를 이루기 위해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캐논볼 애덜리, 폴 챔버스, 지미 콥 등 선택된 참여자들은 기본 설계도만 손에 쥔 채 기존에 없는 창의적인 건축물을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이를 위해 그들이 사용해야 하는 도구는 '모달리티(modality)'였다. 그들은 자신의 솔로에서 이 도구를 사용하여 임프로비제이션을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공간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했다. 코드에 의존하는 수직적인 공간이 아니라 모드 혹은 선법이라 불리는 수평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했다. 모든 연주자는 코드톤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며 다만 코드와 연관된 스케일의 콤비네이션을 통해 새롭게 멜로디를 창조해야만 했다. 그러면 이윽고 멜로디는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멜로디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1959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 <Kind of Blue>는 모달리티를 대표하는 획기적인 첫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마일스 데이비스가 고심 끝에 선정한 멤버들의 이야기, 즉 참가 연주자들이 어떤 과정으로 만나서 이날 스튜디오에까지 왔는지에 관한 에피소드는 최근 재발간된 마일스 데이비스 평전 (김현준 역, 그책, 2015년 / 원저:존 스웨드의 So What : The Life of Miles Davis)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오늘의 탐미여행은 마일스가 받은 영감과 <Kind of Blue> 연주에 사용된 모달리티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보의 마일스를 설명해주는 이 앨범의 핵심이니까.


<Kind of Blue>에서 사용된 모달리티의 아이디어는 마일스 고유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조지 러셀(1923-2009)을 기억해야만 한다. 마일스는 조지 러셀의 모달리티 개념에 무릎을 쳤다. 마일스는 러셀이 발견한 재즈 화성에서 미래를 보았다. 우리는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황제는 알지만 병약한 몸으로 뒷방에 앉아 이론에 골몰했던 황제의 멘토, 조지 러셀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만약 내가 <Kind of Blue>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면, 청년 조지 러셀이 결핵으로 병석에 누워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입원 중에도 음악 연구에 열중하는 이 젊은 학자의 시선에서 마일스를 그릴 것이다. 병문안을 온 마일스가 자신의 음악적 갈망을 러셀과 토의하고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러셀이 연구하는 과정을 결국 마일스의 음악으로 보여줄 것이다. 번득이는 카리스마로 당대 최고의 밴드를 이끌며 기라성 같은 연주자들에게도 호령하는 마일스였지만 동년배나 다름없는 조지 러셀 앞에서는 예외였다. 러셀의 모달 재즈 컨셉을 마일스는 <Kind of Blue>를 기획하기 전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1953년, 새로운 재즈 화성 이론을 제시한 조지 러셀의 역작 <조성 조직의 리디언 크로매틱 컨셉/Lydian Chromatic Concept of Tonal Organization>이 발표되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탐구했던 사람은 마일스였기 때문이다. 러셀의 저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재즈 이론서였으며 마일스 외에도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에릭 돌피 등 당대 진보적인 재즈 연주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모달 재즈를 몸소 실현하고 개척한 마일스에게 러셀의 컨셉은 든든한 바탕이 되어 주었다.


조지 러셀의 기념비적 저서, 리디언 크로매틱 컨셉.

최초의 재즈 이론서. 재즈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옛날 재즈곡을 들으면 화성을 재분배하는 느낌이 있다. 기본 코드 속에서 서로 포개어져 있던 음들이 멜로디로 나열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모달 어프로치(선법적 접근)에서는 즉석에서 의미 있는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코드 체인지를 재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  한 개의 하모니가 지속될 때 솔로이스트가 모드를 기반으로 임프로비제이션을 하는 이 상황을 모달 재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달 재즈는 어떤 장르가 아니라 임프로비제이션을 하는 접근 방법이라고 보면 된다. 모달 재즈곡들은 코드는 단순한 편이고 코드에서 비롯되는 스케일을 임프로바이즈하는데 쓰는 하나의 원료로 여겨 스케일 위에 또 다른 스케일을 겹치게 권장하고 그래서 곡이 토널 센터는 있되 결국 한 키(key)가 아니라 여러 키로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59년 당시만 하더라도 이는 기존과는 다른 파격적인 접근 방법이었다. 

러셀은 자유로운 임프로비제이션을 위해서 유럽의 조성 체계와는 다른 방식을 모색하였고 리디안 모드에서 해법을 찾았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러셀은 '도'로 돌아가려는 음의 현상을 '중력(gravity)'개념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중력이 완전 5도 간격으로 음을 잡아 내려가면 C, G, D, A, E, B, F#로 7개 음으로 나열될 수 있는데 이것이 곧 리디언 스케일이 된다. 러셀은 리디언 스케일을 통해 완벽한 표현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러셀의 저서 <조성 조직의 리디언 크로매틱 컨셉>은 재즈의 기념비적 저서이지만, 이 지면을 통해 화성에 관한 고급 지식이 요구되는 러셀의 복잡한 이론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진보적인 재즈 연주자들은 러셀의 컨셉을 바탕으로 비밥 혁명 이후 점점 복잡해지는 코드 체인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모드로 접근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그 의의에 주목하면 될 것이다. 러셀의 컨셉은 연주자들에게 분명 화성적 돌파구가 되었다. 재즈 임프로비제이션을 코드 패턴에 기대는 브로드웨이 송 방식에서 이탈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고 재즈를 유럽의 클래식 음악과 동등한 위치에서 연구되는 학문으로써 지성의 가치를 얻게 하였다. 


조지 러셀, 재즈의 판도를 바꾸다.


조지 러셀은 1923년 6월 23일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출생했다. 그는 본래 재즈 드러머로 연주자의 길을 걸었지만, 결핵으로 일 년 이상 장기 입원하는 바람에 연주 경력이 끊겼다. 그는 밴드 리더가 되기보다는 이론가의 길을 택했다. 1946년, 병상에서 회복한 뒤 뉴욕으로 가서 길 에반스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교류가 이루어졌던 진보적인 연주자 서클에 합류했다.

1947년에 조지 러셀이 디지 길레스피 빅밴드를 위해 작곡한 유명한 Cubana-Be/Cubana-Bop곡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재즈와 아프로 쿠반 스타일을 접목시킨 모달 오케스트라 작품에 몰입하던 러셀의 결실이기도 했다. 1949년 클라리넷주자 버디 디프랭코를 위해 작곡한 “A Bird in Igor's Yard”도 찰리 파커와 스트라빈스키를 개입시킨 클래식과 재즈의 내재적 접합체이자 러셀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1950년대에 러셀은 자신의 이론을 음악으로 완성하기 위해 여러 앙상블을 조직했다. 1956년 아트 파머, 빌 에반스, 폴 모션, 할 맥쿠식, 배리 갈브래이스 등이 참여한 조지 러셀 스몰텟의 <The Jazz Workshop>앨범은 러셀의 컨셉을 집대성한 대단히 독창적인 작품들로 채워진 러셀의 명작 중 하나이다. 러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Ezz-Thetic이 수록되어있는데 이 곡은 1961년 동명 앨범 <Ezz-Thetic>으로 출시된 바 있다. 돈 엘리스, 데이브 베이커, 에릭 돌피, 스티브 스왈로우, 조 헌트가 참여한 이 앨범도 획기적인 작품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몽크의 Round Midnight에서 에릭 돌피의 솔로는 심금을 울린다. 모든 곡이 독창적이며 매우 진보적이다.

브랜다이즈 대학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곡된 All About Rosie (1957) 역시 재즈사의 귀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10분 45초짜리 이 곡은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져있는데, 주 멜로디는 첫 번째 파트에서, 블루스적 느낌을 살린 두 번째 파트를 지나 세 번째 파트에 닿으면 젊은 빌 에반스의 보석 같은 솔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에반스 역시 러셀로부터 배우고 그의 이론적 컨셉에 매료된 연주자였다. All About Rosie에서의 에반스의 솔로는 에반스의 전 곡을 통틀어 가장 훌륭한 솔로 중 하나로 기록될 만 하다. 우리는 또 1958년에 녹음된 에반스의 Peace Piece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는가? 음을 최대한 절제하며 느린 발라드로 연주된 이 곡 역시 러셀의 컨셉을 도입한 에반스식 모달 재즈 피스이다.

조지 러셀은 교육자로서 그의 전 생애를 바친다. 진보적인 뮤지션들이 모여들었던 ‘레녹스 매사추체스의 스쿨 오브 재즈’에서 가르쳤고 이곳에서 오네트 콜맨과 칼라 블레이도 가르쳤다. 1964년 러셀은 유럽으로 건너가 스웨덴 룬튼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스웨덴 라디오와 계약해서 미사 음악과 발레 음악 등을 작곡했고 이 시기에 얀 가바렉이 러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1969년, 뉴잉글랜드 컨소바토리(NEC)의 교수로 임용되면서였다. 후진을 양성하면서도 1986년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인터네셔널 리빙 타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이끌었다. 14명으로 구성된 이 오케스트라는 지금도 영국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러셀은 1989년에 맥아더 파운데이션 그랜트, 1990년 어메리카 NEA재즈 마스터, 가디언 어워드, 구겐하임 펠로우십,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조성 조직의 리디언 크로매틱 컨셉>의 개정판(볼륨1)이 나와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2007년 알츠하이머로 사망할 때까지 재즈계의 지성, 선구자, 멘토로서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의 사망으로 말년에 준비하던 <리디언~>볼륨 2는 발간되지 못해서 무척 아쉽다.


무한 공간에 홀로 서서.


마일스 데이비스. 그는 모달 재즈를 통해 "창조적으로 영원히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32마디가 지나면 끝나 버리는 코드를 또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 체인지에 신경을 쓰지 않고도,  시작도 끝도 없이 원하는 만큼 의미 있는 멜로디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Kind of Blue>에서 So What의 프레이즈가  흑인들의 '아멘'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을 나 역시 동의한다. 멜로디와 리듬의 자유, 영원히 연주될 수 있는 음의 가능성이 '아멘'으로 기원 되고 응답하는 듯하여 감흥을 배가시킨다. 

안개 너머 어슴푸레 다가온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찬란한 문명, 그가 꿈꾸었던 것은 자유였다. 다만 그 자유는 1959년 콜롬비아 스튜디오에 모인 선각자들처럼 오로지 고도로 숙련된 자들의 것이다. 음의 체계와 변화, 그 모든 것을 터득한 자들의 몫이다. 위대한 예술가가 선사하는 자유의 무한 공간을 거닐다 행여 길을 헤매게 된다면, 나는 별을 보며 음을 생각했던 피타고라스와 조지 러셀과 마일스 데이비스와 여러 음악의 선구자들을 떠올리며 게오르그 루카치를 읊을 것이다. 밤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말이다. 


(끝)

1953년에 발행된 조지 러셀의 기념비적 저서, Lydian Chromatic Concept of Tonal Organization



<조지 러셀이 리디언 컨셉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초기 걸작들>

The Jazz Workshop (RCA Victor, 1956)

아트 파머, 빌 에반스, 조 해리스, 폴 모션, 오시에 존슨, 배리 갈브라스, 밀튼 히튼, 테디 코틱 등이 참여한 초기 명작.


New York, N.Y. (Decca,1959)

아트 파머, 밥 브룩메이어, 존 콜트레인, 빌 에반스, 맥스 로치 외 다수의 연주자들이 참여했고 존 렌드릭스가 나레이션을 맡은 독특한 앨범


Jazz in the Space Age (Decca,1960)

빌 에반스를 비롯한 초기 멤버들이 참여한 오케스트라 앨범. 


 Stratusphunk (Riverside, 1960)

 데이브 베이커, 데이브 영, 척 이스라엘, 알 카이거, 조 헌트가 참여.


Ezz-thetics (Riverside Records, 1961)

돈 엘리스, 데이브 베이커, 에릭 돌피, 스티브 스왈로우, 조 헌트가 참여한 역작.


 <1959년 모달 재즈의 역사적인 앨범, <Kind of Blue>의 녹음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