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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돌피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2> 기회의 땅, 유럽에서 마지막 시간들.

돌피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2>(마지막회)

기회의 땅, 유럽에서 마지막 시간들.

 

서른을 이립(而立)이라 했던가. 고향 LA로부터 동쪽으로 4천 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에서 서른을 시작한 에릭 돌피. 에릭 돌피가 생전에 발표한 5장의 리더작 중 4장은 뉴욕 입성 직후부터 2년 사이에 발표되었다. 서른이 공자의 말처럼 뜻을 세우는 나이라면 뉴욕은 돌피의 뜻이 오롯이 자리할 수 있는 장소였던가. 

뉴욕에서 돌피의 음악은 저항에 부딪히곤 했다. 지난 호에 소개했듯 에릭 돌피는 존 콜트레인과 이른바 '뉴-재즈'를 연주하면서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돌피가 뉴욕 입성 후 의욕적으로 연주에 매진하던 시기에 평론가들은  '안티 재즈'라며 비판했고 존 콜트레인에 따르면 이것은 돌피를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었다. 이미 탑 뮤지션으로 널리 알려진 콜트레인과 달리 뉴욕에서 뉴 페이스였던 돌피는 세상의 평가에 어느정도 민감했던 것 같다. 1961년 11월 23일 <다운비트>매거진은 "소름 끼치도록 (듣기 싫은) 아나키즘 음악"이라고 깎아내렸고 앞서 11월 9일 몬트레이 재즈 페스티벌 연주를 두고는 "인토네이션 트러블, 동물 사운드, 뒤틀린 새소리"라 표현하면서 이날 출연한 웨스 몽고메리와 비교하며 폄하했다. 이외에도 <다운비트>는 이들의 공연을 꾸준히 추적하면서 "뮤지컬 넌센스를 팔아댄다(peddle)"고 혹평하곤 했다. 1961~1962년 사이에 콜트레인-돌피의 음악에 대한 찬반 레터가 <다운비트>로 집중되었다. 1962년 4월 12일 다운비트 매거진과 콜트레인과 돌피의 동시 인터뷰(축약)를 잠시 보자. 다운비트가 이들은 안티 재즈라고 혹평한 뒤에 이들에게도 발언의 기회를 주자는 차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였다. 콜트레인이 돌피를 향한 애정은 물론, 세상의 평가에 대한 이들의 섭섭함도 잘 드러나 있다.

 

다운비트: 당신들은 왜 그렇게 지루할 정도로 길게 연주하는 것인가? (길게 연주하는 것도 당시 비판의 요인이었음)

▶콜트레인: 솔로이스트 각각 그 곡이 허용하는 모든 길을 탐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솔로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활용하고자 한다. 우리는 보여줄 것이 많다. 내가 연주할 때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게 있고 에릭이 할 때는 에릭이 하고 싶은 게 있다. 우리가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길어진다. 

 

다운비트: 도대체 당신들은 뭘 하려는 것이냐?

(30초간 침묵)

▶돌피: 좋은 질문이다. 어떤 영감을 느낄 때를 즐길 뿐이다. 항상 자발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있다. 존이 연주할 때 나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해낼 때가 있고 맥코이가 할 때도 그렇고 엘빈 존스, 지미 개리슨이 솔로를 할 때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이어지곤 한다. 그 새로운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콜트레인: 에릭과 나는 54년부터 지금까지 깊이 교류하며 음악을 관찰하고 음악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달 전에 에릭이 뉴욕에 왔다. 에릭이 우리 쿼텟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점을 깨닫고는 무척 놀랐다. 에릭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 쿼텟으로서만 편안함을 느꼈다. 그런데 돌피가 참여하니까 우리가 표현하는 것들이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돌피가 참여한 뒤 음악이 어떻게 발전할지 지켜보자고 했다. 가족이 하나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나는 전부터 돌피와 얘기만 나누었던 바로 그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다. 에릭이 들어와서 우리 음악은 더 넓어졌고 예전에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이 표현되고 있다. 에릭이 계속 우리 밴드에 편안하게 있으면서 계속 성장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주의 아름답고 좋은 것들에 대한 그림을 청중에게 선사하고 싶다. 놀랍고 포괄적인 우주의 한 면을, 한 예를 드는 것이 우리의 음악이다. 음악과 삶, 음악과 우주에 대한 철학을 어떤 이들은 젊을 때 터득하지만 나는 때가 지나서 이해했다. 아마 57년경이었을 것이다. 음악적으로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가 알았어야 할 때보다 더 늦게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음악의 새로운 면을 또 발견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나는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에릭 돌피와 함께 하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다운비트: ‘안티 재즈’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콜트레인: 당신들이 말하는 안티 재즈가 도대체 뭔지 설명을 해달라. 

 

다운비트: 당신들이 스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가?

▶콜트레인: 우리가 스윙을 안한다고?

▶돌피: 우리는 스윙을 한다. 실은 하도 스윙을 많이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존도 알고 싶다. 안티 재즈라는 뜻이 뭔가? 우리는 스윙도 하고 재즈도 하는데.

▶콜트레인: 스윙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모든 그룹은 각기 서로 다른 스윙이 있다. 우리 밴드도 마찬가지 있다. 스윙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답하기 참 힘들다.

▶돌피: 평론가들은 새로운 음악이 나타났고 이해 못 하는 부분이 있다면 연주한 뮤지션을 인터뷰를 해봐야 한다. 그러지도 않고 무조건 혹평을 하면 뮤지션은 놀랄 수밖에 없다. 기분이 몹시 상한다. 하지만 음악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상하지는 않는다. 혹평을 받으면 피해가 크다. 뮤지션은 자신의 음악도 하지만 또한 밥벌이도 해야하는데 평론가가 뮤지션을 나쁘게 쓰면 사람들이 그 뮤지션을 멀리하게 된다. 

▶콜트레인: 평론가들은 이해하고 동참하고 그 뒤에 써라. 우리를  좋게 쓰든 나쁘게 쓰든 이해가 먼저이다. 나는 제대로 분석도 못 하면서 무조건 좋게 쓴 글도 봤다. 얄팍한 내용밖에 안되는 평론도 봤다. 내 음악에 대한 이해도 없이 말이다. 최대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하라. 물론 평론가든 뮤지션이든 100% 음악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 근처에도 갈 수 없다. 나도 노력하고 평론가도 노력해야 한다. “이해(understanding)”. 이것이 전부이다. 그래야 우리가 모두 베네핏을 누린다. 

 

'정리된 혼란' 돌피의 걸작, Out To Lunch. 

 


1964년은 재즈사에서 무척 의미 있는 한 해이다. 이노베이터들의 걸작 행진이 이어지던 해였다. 앤드류 힐의 Point of Departure (3월 21일, 에릭 돌피 참여), 앨버트 아일러의 Spiritual Unity (7월 10일),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 (12월 9일)이 녹음된 해였다. 무엇보다도 1964년 2월 25일, 에릭 돌피의 Out To Lunch 음반 녹음은 그 해의 가장 빛나는 소득일 것이다. 

1964년 에릭 돌피의 창의성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토니 윌리엄스, 바비 허쳐슨, 리처드 데이비스, 프레디 허바드가 참여한 Out To Lunch. 이 미래지향적인 음반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정리된 혼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셀로니어즈 몽크의 이미지를 제목으로 단 첫 곡 Hat and Beard는 시작부터 베이스 클라리넷, 비브라폰, 베이스, 드럼의 특색있는 스카타토 조합으로 듣는 이를 대단히 불안정한 세계로 이끌어간다. 18세에 불과한 드러머 토니 윌리암스의 연주는 경이롭다. 그는 이듬해 윌리암스가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우리도 안티 뮤직을 연주하자고 제안했을 만큼 창의적이었는데 Out To Lunch에서 이미 그의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Hat and Beard에서 하이햇의 쓰임은 무척 감동적이다. 비브라폰 주자 바비 허쳐슨도 이 음반에서 대단히 특색있는 연주를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비브라폰 연주자들은 서스테인 페달을 적극 이용해서 음이 초인종 소리처럼 울리게 하는데 허쳐슨은 페달을 쓰지 않고 비브라폰을 세게 내리쳐서 거친 쇠소리 사운드를 내고 있다. 셀로니어즈 몽크처럼 오픈 스페이스를 많이 두고 멜로디를 빗겨가듯 연주하면서 돌피의 솔로를 푸시하기도 한다. 허쳐슨은 비프라폰의 음역 범위 전체를 적극 이용하면서 다른 솔로이스트의 보조를 넘어선 몹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리처드 데이비스의 베이스도 훌륭하다. 그는 보우를 많이 쓰면서 카운터포인트로 연주하는데 모던 베이스 기술의 축소판을 보여주는듯 자기 영역을 충실히 수행한다. 이 음반에서는 프레디 허바드가 상대적으로 덜 모험적인 것 같다. 그의 프리 재즈 연주는 조금 경직되어 있으며 전통의 틀로 되돌아오려는 조짐이 있는데 돌피는 허바드의 불편한 점을 잘 매우고 있는 것 같다.

이 음반을 듣고 있으면 내 소견상 돌피가 왜 콜트레인 그룹에서 왜 나왔는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돌피는 분명 보다 진보적인 리듬 섹션을 원했던 것 같다. 구성면에서도 콜트레인과 스타일이 다른 부분이 있다. 콜트레인의 음악은 큰 틀에서 주제를 갖고 있으며 그의 솔로는 하나의 주제로 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반면, 돌피는 하나의 긴 주제를 갖는다기보다 분열된 멜로디가 반복되고 여러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이어져서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동시에 논리적인데 (그래서 나는 '정리된 혼란'이라고 했다) 타이밍에 대한 엄청난 센스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테크닉이 아닐 수 없다. 이 음반은 지금 들어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이 없다. 아방가드 최첨단 음반은 아니지만, 돌피는 그 시대의 문법을 넘어선 미래지향적이고 이상적인 연주를 했다고 생각한다. 이 음반이 후대의 프리 재즈 뮤지션들에게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시 동쪽으로, 동쪽으로.

 

Out To Lunch 녹음을 마치고 돌피는 찰스 밍거스 섹스텟 멤버로서 유럽 투어를 떠났다. 그리고 떠나기 전 지난 호에 언급했듯 그가 소장해온 음악 자료와 짐들을 친구 헤일스 스미스에게 맡겼다. 돌피는 이번에 유럽에 가면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돌피는 발레리나인 약혼녀 조이스 모데카이와 파리에서 정착하고 싶었다. 떠나기 전 밍거스에게 그의 뜻을 알렸다. 이번 유럽 투어를 끝낸 뒤에 당신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돌피는 밍거스에게 "미국은 내 음악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라"라고 말한다. 얼마 뒤 돌피는 독일의 평론가 와킴 배랜트에게도 같은 이유를 토로했다. 돌피에게 유럽은 인종차별 없고 새로운 음악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뉴욕에서 다시 6천 킬로 동쪽으로…. 돌피의 결심은 확고한 것이었다. 밍거스는 자신의 밴드를 떠나는 돌피에 대한 애정을 담은 섭섭함을 평소 돌피와 함께 연주했던 블루스곡에 "So Long Eric"이라고 제목을 붙여 돌피와 함께 유럽 투어 내내 연주했다.

 

굿바이, 에릭 (So Long Eric)

 

1967년 6월 27일. 에릭 돌피는 '탕전트 재즈 클럽' 첫 무대에 서기 위해 독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그러나 도착 직후 몸이 아프다고 주변에 호소했다. 집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결국, 무대에서 두 세트만 연주하고 내려와야 했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에는 이미 의식불명이었다. 치료 과정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인슐린 주사 쇼크로 사망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의사가 지레짐작 흑인 재즈 뮤지션 사이에서 흔한 마약 과용을 원인으로 보고 마약 성분이 몸에서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느라 살릴 기회를 놓쳤다는 설이 있다. 여러 증언과 상황을 보았을 때 후자가 유력하다. 그의 사망 원인은 혈당상승으로 인한 심장 발작이었다. 에릭 돌피는 심각한 당뇨였다. 에릭 돌피 자신도 자신의 병을 모른 것으로 추정된다. 돌피는 의식불명 이틀 뒤인 6월 29일 숨을 거두었다.

 "에릭이 흑인이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의사가 피검사만 했어도 당뇨인 것을 알았을 텐데, 마약 성분을 떨어뜨리는 엉뚱한 약을 주었다. 에릭은 마약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돌피의 측근이었던 트럼펫터 테드 컬슨의 말이다.

돌피는 이렇듯 믿을 수 없을 만큼 허망하게 떠났다. 베이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를 거의 혼자의 힘으로 발전시킨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한 채. 수많은 프로젝트를 남긴 채 그렇게 허망하게. 찰스 밍거스 섹스텟으로 유럽에 온 지 불과 두 달여 만의 일이었다. 밍거스와 헤어진 후 뉴욕에 처음 왔을 때처럼 돌피는 성실하게 그의 음악적 목표를 하나둘씩 이룩해나가고 있었다. 미사 멩겔버그, 한 베니크, 자크 스콜스 등 네덜란드 뮤지션들과 만나 녹음한 음반은 그의 유작(Last Date 음반)이 되고 말았다. 돌피는 세실 테일러와도 연주할 일정을 가지고 있었고 우디 쇼, 빌리 히긴스와도 밴드를 구상 중이었다. 'Love Suite'라 이름 붙여진 스트링 쿼텟 작품도 작곡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죽으면 죽은 자의 좋은 점만 부각하고 얘기하게 된다. 그런데 에릭은 진정 좋은 점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는 오로지 좋은 것만 있는 사람이었다." (찰스 밍거스)

겨우 서른 여섯, 새의 꿈을 닮은 착한 남자 돌피는 안타깝게 그렇게 떠났다. 

 

소울 메이트, 콜트레인. 슬픔을 삭이다.

 

에릭 돌피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슬퍼한 사람은 소울 메이트, 존 콜트레인이었다. 돌피가 떠난 후 돌피의 어머니는 돌피의 플루트와 베이스 클라리넷을 존 콜트레인에게 선물했다. 콜트레인이 이례적으로 플루트와 베이스 클라리넷을 부는 작품들이 있는데 모두 돌피의 악기로 녹음된 것이다. 콜트레인의 플루트,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는 각각 To Be (Expression, Impulse!, 1967)과 Reverend King (Cosmic Music, Impulse!, 1968)곡에서 들을 수 있다.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마틴 루터 킹을 표상하는 Reverend King에서는 돌피의 혼을 담은 듯 콜트레인의 열정적인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제, 존 콜트레인의 추모 메세지로 에릭 돌피의 이야기를 끝맺으려 한다. 1964년 8월 27일 에릭 돌피 추모 페이지를 마련한 <다운비트>가 콜트레인의 이 메세지로 끝을 맺은 것처럼. 

"내가 그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지 간에 불충분하다. 그를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뿐이다. 에릭을 알고부터 내 삶은 훨씬 풍요로와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친구로서 뮤지션으로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중 하나였다."

 


에릭 돌피 추모 페이지를 실은 1964년 8월 27일자 <다운비트>. 존 콜트레인의 메세지는 짧지만 중요했던 돌피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에릭돌피 사후 돌피의 부모가 선물한 플루트를 불고 있는 존 콜트레인.


 1964년 찰스 밍거스 섹스텟으로 유럽 투어를 떠난 시절. 투어가 끝나고 두달 여 뒤에 돌피는 사망했다.


 

양수연의 에릭 돌피 베스트송 (녹음일순)

 

▶베스트 '베이스 클라리넷' 연주


Serene (1960년 8월 15일 녹음. <Out There>, New Jazz 수록)

Green Dolphin Street (1960년 4월 1일 녹음. <Outward Bound>, New Jazz 수록)

Miss Toni (1960년 4월 1일 녹음. <Outward Bound>, New Jazz 수록)

When Light Are Low (1960년 8월 30일 녹음. <Berling Concerts>, Enja 수록)

Spiritual (1961년 11월 1일~5일. <John Coltrane,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Impulse!수록)

India (1961년 11월 2일~5일. <John Coltrane,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Impulse!수록)

God Bless the Child (1963년 3월 10일 녹음,  에릭 돌피 솔로곡. <The Illinois Concert>, Blue Note 수록)

Epistrophy (1964년 6월 2일 녹음, <Last Date>, Fontana 수록)

 

▶베스트 '플루트' 연주


17 West (1960년 8월 15일 녹음, <Out There>, New Jazz 수록)

Sunday Go Meetin’ (Latin Jazz Quintet + Eric Dolphy, <Caribe>, Prestige 수록)

Ode to Charlie Parker (1960년 12월 21일 녹음, <Far Cry>,New Jazz 수록)

Inner Flight No.2 (1960년 11월 7일 녹음. 에릭 돌피 솔로곡. <Other Aspects>, Blue Note 수록)

Glad to Be Unhappy  (1960년 4월 1일 녹음. <Outward Bound>, New Jazz 수록)

Stolen Moments (1961년 2월 23일 녹음, Oliver Nelson의 <The Blues and the Abstract Truth>, Impulse! 수록>

Don’t Blame Me (1961년 9월 6일 녹음 (코펜하겐), <In Europe, Vol.2>, Prestige 수록)

My Favorite Things (1961년 11월 18~11월 29일 녹음. <Live Trane: The European Tours>, Pablo 수록)

You Don’t Know What Love Is (1964년 6월 2일 녹음. <Last Date>, Limelight Records 수록)

Gazzelloni (1964년 2월 25일 녹음 <Out to Lunch>, Blue Not 수록)

 

▶베스트 '알토 색소폰' 연주

 

Dolphy-N (1960년 11월 (?)녹음. Ron Carter와 듀엣곡 <Other Aspect>, Blue Note 수록)

Miss Ann (1960년 12월 21일 녹음. <Far Cry>, New Jazz 수록)

Round Midnight (1961년 5월 8일 녹음, George Russell의 <Ezz-thetics>, Riverside Records 수록)

Aisha (1961년 5월 25일 녹음, John Coltrane의 <Ole Coltrane>, Atlantic 수록)

Hot House (1961년 8월 30일 녹음, <Berlin Concert>, Enja Records 수록)

Tenderly (1960년 12월 21일 녹음. 에릭 돌리 솔로곡. <Far Cry>, New Jazz 수록)

Out To Lunch (1964년 2월 25일 녹음 <Out to Lunch>, Blue Not 수록)

*Jim Crow (1962년 녹음 날짜 및 돌피를 제외한 연주자 불분명. 돌피 전 악기 사용. Other Aspect, 1987년, Blue Note)

 


▶기타: Out To Lunch 녹음 50주년을 맞아 후대 뮤지션들이 새롭게 각색한 트리뷰트 음반. Out To Lunch의 곡들과 에릭 돌피의 대표작들을 수록한 멋진 앨범들이다.



Aki Takase, Alexander Von Schlippenbach <So Long, Eric! Homage To Eric Dolphy>, Intakt Records, 2014


Russ Johnson, <Still Out To Lunch>, Enja, 2014 

; Russ Johnson (t), Roy Nathanson (saxophones), Orrin Evans (p), Brad Jones (b), George Schuller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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