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랜 블레이크의 80세 기념 콘서트, Realization of a Dream : An 80th Birthday Tribute to Ran Blake

11월 13일 뉴잉글랜드 음악원(NEC) 조던 홀에서 열린 이 공연에는 NEC에서 재즈를 공부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총 출연하여 써드 스트림의 거목이자 전 학장 랜 블레이크의 80세를 기념하였다. 랜 블레이크는 이날 몇 곡을 선보였는데 가장 인상적인 연주는 보컬리스트 도미니크 이드(Dominique Eade)와의 협연이었다. 공연 서두에 도미니크 이드와 함께 호레이스 실버를 그리며 작곡한 Horace is Blue (2001년 앨범과 동명곡)를 연주했다.

도미니크 이드는 재즈 보컬에 대한 내 인식의 전환점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재즈 보컬이라는 악기의 지향점을 향해 있다. 일반적으로 노래 잘한다고 불리는 가창력 좋고 목소리 좋은 가수가 재즈곡을 부른다고 해서 재즈 보컬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의 악기로서 기능하는 재즈 보컬, 따라서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 그러하듯 재즈라는 언어를 이론과 실기(특히 이어 트레이닝) 모두 철저하게 학습해야만 훌륭한 임프로바이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몸소 보여주고 가르치고 있다. 그녀는 1984년부터 NEC에서 재즈를 가르친다. 그녀가 가르치는 것은 ‘노래’가 아니라 재즈이다. 전공 악기를 불문하고 학생들은 그녀에게 재즈를 배운다. 그리고 재즈 보컬 학생에게는 재즈 보컬이 특수하게 훈련해야할 것들을 심도있게 가르친다.

보컬 듀엣은 랜 블레이크가 가장 좋아하는 컨셉이다. 작고한 천재적인 보컬리스트 진 리(Jeanne Lee)와의 앨범, <The Newest Sound Around>(1962, RCA), <Free Standards : Stockholm 1966> (Fresh Sound), <You Stepped Out of a Cloud> (Owl, 1989)는 재즈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최근 랜 블레이크는 도미니크 이드의 제자이기도 한 사라 써파(Sara Serpa)와의 협연이 돋보인다. 2015년 사라 써파와의 듀엣 앨범 <Kitano Noir>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모처럼 만의 도미니크와 랜의 조우에 정말 흥분되는 밤이었다.



Dominique Eade, voice

Ran Blake, piano


Realization of a Dream : An 80th Birthday Tribute to Ran Blake

November 13, 2015

posted by jazzlady

월간 재즈피플 2014년 5월호


재키 바이어드를 그리며

“고향이 어디든지 간에 당신이 있는 곳이 바로 재즈가 태어난 장소이다”

재키 바이어드 심포지엄 후기


모던 재즈의 거장, 피아니스트 재키 바이어드 (1922-1999)


1999년 2월 11일 오후 11시 40분. 뉴욕 주 퀸즈의 한 가정집에서 백발의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총알은 머리를 관통했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노인의 두 딸이 그 집에 함께 있었지만 아무도 총 소리를 듣지 못했다. 외부의 침입 흔적도 없었고 범행에 쓰인 총도 발견되지 않았다. 면식범에 의한 소행이 아닐까 추정될 뿐 미제로 남아있는 이 사건. 이른바 모던 크리에이티브를 이끌었던 피아니스트 재키 바이어드의 마지막은 이러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이날 또 한 명의 위대한 재즈 아티스트를 잃어야 했다. 이 사건에 대한 경찰 리포트는 더는 업데이트 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끔찍한 사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 같다. 적어도 그를 주제로 지난 4월 13일 열린 "재키 바이어드의 삶과 음악에 관한 심포지엄"에서는 말이다. 


봄볕이 따사로웠던 4월 둘 째주 일요일 오후, 나는 피아니스트 랜 블레이크 씨의 브룩클라인 집의 문을 두드렸다. 약속 시각보다 좀 일찍 도착했지만, 그는 봄날에 어울리지 않은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두른 채 일찌감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안부를 묻자 그는 힘겨운 목소리로 "너무 슬프다"고 짧게 답했다. 노약자용 워커에 몸을 의지하며 힘겹게 집을 나서는 그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재키 바이어드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흘렀지만, 그의 슬픔은 끝나지 않은 듯했다. 나는 슬픔에 잠긴 그와 함께 재키 바이어드의 심포지엄이 열리는 우스터로 향했다. 1시간 남짓 운전하면서 생각했다. 이 백발의 거장을 울게 하는 재키 바이어드는 진정 누구인가. 내가 들어왔고 느꼈던 그를 넘어서 또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그를 사로잡고 있단 말인가. 랜 블레이크 씨는 슬픈 목소리로 이따금 “오…재키…."하며 혼잣말로 탄식했다. 조수석에 앉은 그의 얼굴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슬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뻔 했으므로.


"미 서부 우스터에서 열린 재키 바이어드 심포지엄"


우스터의 알든 메모리얼 홀에 도착하자 여러 뮤지션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이날의 패널인 조지 쉴러, 쳇 윌리엄스 외에도 랜 블레이크와 오랜 친분이 있는 많은 뮤지션들이 블레이크 씨 주변에 모여들었다. 재키 바이어드는 시간과 장소의 장벽을 거두고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뮤지션들은 올뮤직가이드 등에 실린 짧은 바이오그라피로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바이어드의 삶과 음악의 내밀성을 명백히 이해하고 있었다. 재키 바이어드의 음악은 여전히 이곳 뮤지션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현실적인 범위에 있었는데, 그의 교육자로서의 커리어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재키 바이어드는 69년부터 뉴잉글랜드 컨소바토리(NEC)에서 15년간 아프로 아메리칸 뮤직을 가르쳤고 코네티컷주로 옮겨 하트 음대, 그리고 89년부터 사망하기까지 10년간은 뉴욕의 맨해튼 음대에 몸담았다.


2014년 4월 16일 매사추세츠주 우스터에서 열린 모던 크리에이티브의 거장 재키 바이어드 심포지엄의 모습.

이날 심포지엄에 함께 동행한 뉴잉글랜드 컨소바토리 전학장, 피아니스트 랜 블레이크. 그는 함께 연주활동을 해온 생전의 바이어드를 그리며 시종 비통해하였다. 랜 블레이크는 재키 바이어드를 위한 헌정곡으로 Only Yesterday를 연주했다. 


“재키의 연주를 듣는 것은 수도꼭지를 틀고 피아노의 모든 물줄기를 듣는 것과 같다. 즉, 제임스 존슨에서 세실 테일러까지 물줄기가 한꺼번에 쏟아지듯 들린다” 

-1999년 재키 바이어드 장례식에서 평론가 게리 기든스의 추모사 중


재키 바이어드는 자못 생소한 연주자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주는 희열을 공감하기 위해 우리는 상상 속에서 그의 이미지를 함께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향해 독설을 내뿜을 듯 다소 불만스럽고 퉁명스러운 눈빛을 담은 검은 얼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연주, 때로는 오른손으로 피아노를 치면서 왼손으로는 색소폰을 부는 이색적인 모습, 대부분의 악기를 고차원으로 다루기에 어렵다고 난색을 보이는 뮤지션에게 호통치는 그의 모습 등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에게 배우는 뮤지션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그 앞에 가면 얼어버렸다. 혁신적인 작곡가였고 위대한 이론가이자 임프로바이저였던 재키 바이어드는 치팅하는 뮤지션에게는 거짓말쟁이! 라고 화를 내며 가차 없었지만 진실한 연주 앞에서는 한없이 너그러웠다. 그는 한 마디로 비밥 혁명 이후에 “어떻게 재즈를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였던,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위대한 교육자였다. 1967년 군터 실러, 랜 블레이크, 조지 러셀이 주축이 되어 클래시컬 뮤직의 명문 NEC에 처음 재즈 교육이 시행되고 1969년에는 재키 바이어드에 의해 아프로아메리칸 뮤직과(課)가 개설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재즈 교육의 모델로 평가되어온 NEC. 그 중심에 또한 재키 바이어드가 있었으니 그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재즈 교육의 또 다른 파이오니어 랜 블레이크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십 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그토록 슬퍼하고 있는지도 헤아려볼 수 있을 듯하다. 랜 블레이크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재키와 함께했던 날들이 어제처럼 가깝게 느껴진다며 Only Yesterday를 연주했다.


모던 재즈에서 아방가드의 영역까지 재키 바이어드의 연주 스타일은 광범위하고 진보적이었다. 그의 바이오그라피에 대해서는 맨 마지막에 몰아서 정리했다. 그의 음반을 한국에서 구하기 어렵다면 유튜브에서 그를 찾아보기를 당부드린다. 유튜브에서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Aaluminum Baby를 타이핑하면 2012년 NEC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빅밴드 곡을 제일 먼저 찾아볼 수 있는데 바이어드의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쉬가 얼마나 멋지게 이 곡을 해석하는지도 지켜볼 수 있다. 지금부터는 우스터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가 주최한 재키 바이어드 심포지엄에서 재키 바이어드에 대한 패널들의 회상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고향이 어디든지 간에 당신이 있는 그곳이 바로 재즈가 태어난 장소이다”

“나는 재키가 이끌었던 빅 밴드 아폴로 스톰퍼스(the Apollo Stompers)에 참여했고 그와 트리오를 한 적도 있었다. 모두 두려운 경험이었다. 재키와 함께 연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레슨을 받는 것과 같다. 우리 트리오는 찰리스 탭이라는 아주 비좁은 클럽에서 연주했는데, 재키는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차선을 바꾸어 출구로 나가는 사람처럼 종횡무진 연주를 했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것이 재키의 아름다움이었다. 재키가 뭘 할지 모르고 어떤 식으로 변화를 줄지 예측할 수 없었지만 그의 모든 연주는 적합한 것이었다.

  그는 매년 몹시 추운 2월에 노쓰 다코타주의 비스마르크 시에서 연주하곤 했다. 비스마르크 재즈 축제 기획자 로이 앤더슨 씨가 20년 동안 변함없이 재키를 초청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95년에 재키와 함께 비스마르크 재즈 축제에서 연주했고 곧이어 파르고 시로 이동해서 트리오로 다시 협연했다. 매일 영하 20도의 기록적인 추위에도 그는 연주를 감행했는데 그 즈음해서 그는 미네소타주 둘러스에서 솔로 콘서트를 하러 떠났다. 그곳은 영하 35도였다. 그는 자신의 연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재키가 NEC에서 가르치고 있었을 시절, 나는 MIT방송 WMBR에서 재즈 방송을 진행했는데 어느 주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재키 바이어드 페스티벌을 기획한 적이 있다. 총 15시간이었는데 이 시간 동안 재키의 곡만 틀었다. 웬만한 것은 다 틀었던 것 같다. 그리고 와인 2병을 들고 재키를 인터뷰하러 갔다. 그때 인터뷰했던 카세트 테이프를 얼마 전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그가 어린 시절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술회하였는데 잊히지 않는 말은 “네가 태어난 고향이 어디든지 간에 당신이 있는 그곳이 재즈가 태어난 장소이자 원천”이라는 것이다.” 

-조지 쉴러(George Schuler, 드러머, 군터 쉴러의 아들)- 


“의도가 있으면 그것이 바로 스윙이다.”

“NEC에서 재키와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테크닉이 모자라서 재키가 가르칠 수준은 못되었다. 그의 이론교육은 몹시 까다로워서 힘겨웠다. 나는 플루트를 연주했는데 재키는 보이싱을 가르쳤다. 어느 날 레슨을 받으러 갔는데 재키가 드뷔시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2초 뒤에 리듬 체인지를 하는 것이었다. 음악적 컨셉과 관련해 나는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재키는 스윙에 여러가지 뜻이 있다고 했다. 스타일로서의 스윙이 있고, 필(Feel)로서의 스윙, 그리고 의도(intend)로서의 스윙이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길 무슨 종류의 음악이던지 간에 의도가 있으면 그것이 곧 스윙이라고 말했다. 재키는 그 개념을 몸소 실천했는데 그는 클래식과 재즈 모두 똑같은 기쁨이자 똑같은 아름다움으로 생각했다. 재키 바이어드는 재즈계의 찰스 아이브스(모던 클래식의 혁신적인 작곡가)였다. 그의 음악은 불과 4마디에서 조차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들을 수가 있었다.”

-제이미 바움(Jamie Baum, 플루티스트)-


“재키가 NEC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1969년부터 큰 변화가 있었다. 그는 학교의 모델이었고 여러 세대 학생들에게 아직도 그 영향을 느낄 수가 있다. 찰스 아이브스와 같은 음악, 다양한 종류의 곡을 다 연주할 수 있었다. 그는 스윙은 물론 무조음악을 했고 노래도 했으며 모든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소화해내는 뮤지션은 별로 없다. 재키 바이어드는 학교의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해냈으며 NEC가 어떻게 성장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방향을 잡아줬다.”

-켄 쉐포트스 (Ken Schaphorst, NEC 재즈와 학과장)-


재키는 시끄럽게 굴어서 연주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도구를 가지고 다녔다. 사람들이 너무 떠들면 피아노 위에 채터링 티스(Chattering teeth, 이빨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엽기 치아)를 두 개 올려놓고 태엽을 감아 다다다닥 소리를 내게 했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챗 윌리엄슨(Chet Williamson, WICN 라디오 진행자)-


찰스 밍거스와 에릭 돌피, 재키 바이어드가 함께한 음반 Mingus Mingus Mingus Mingus Mingus와 같이 나도 그렇게 스윙을 하고 싶었다. 재키의 연주는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에게 배우고 싶었다. 그 때가 1975년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재즈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많지 않았고 NEC는 선두에 있었다. 재키가 NEC에서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보스턴으로 향했다. 그리고 NEC 복도에서 재키와 마주쳤는데 그에게 “나는 지금 신시내시티에서 보스턴까지 운전해서 왔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에게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좋아, 딱 10분만 시간 내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 앞에서 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좋아, 입학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보스턴으로 이주해 왔다. 

-프레디 허쉬 (피아니스트, 재키 바이어드의 제자)-

*허쉬의 이 말은 에단 아버슨 씨와의 인터뷰에서 인용한 것임.


<재키 바이어드의 음악 세계>


재키 바이어드는 1922년 6월 15일 매사추세츠주 우스터(Worcester)에서 태어났다. 우스터의 마칭 밴드에서 연주하던 아버지,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트럼펫, 색소폰 등 여러 악기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는 라디오에서 들은 베니 굿맨, 러키 밀린더, 팻츠 월러에 심취했고 뮤지션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커머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에 가서도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스트라빈스키나 쇼팽을 비롯해 많은 클래시컬 작곡가들과 재즈 하모니를 연구했다. 플로리다에서 군 복무 하던 시절에는 어린 캐논볼 애덜리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1946년 군대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재즈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바이어드는 고향으로 돌아와 보스턴 지역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페리(Ray Perry)와 연주하는 것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조 고든(Joe Gordon), 샘 리버스 (Sam River)와 함께 보스턴 지역에서 비밥 밴드를 만들어서 투어했고 보스턴 북쪽 린(Lynn) 지역의 뮤직 라운지에서 색소포니스트 찰리 마리아노(Charlie Mariano)와 함께 3년간 정규 공연을 펼쳤다. 비밥이 태동했던 뉴욕과 가깝지만 음악의 변방이었던 보스턴에서 재키 바이어드는 찰리 마리아노, 허브 포메로이(Herb Pomeroy)등과 함께 이른바 '보스턴 비밥'을 태동시켰고 이끌었다. 바이어드는 1952년부터 3년간 색소포니스트 허브 포메로이스 밴드에서 연주했고 재키 바이어드가 참여한 허브 포메로이 밴드의 음반은 1958년 Progressive Jazz 레이블을 통해 Herb Pomeroy and His Orchestra : Band in Bostond와 Life is a Many Splendered Gig 으로 발매된 바 있다. 1959년부터 61년까지는 트럼펫터 메이나드 퍼거슨(Maynard Ferguson)과 활동했는데 이 시기에 바이어드는 솔로 피아노 연주 활동에도 열정을 보인다. 그래서 재키 바이어드가 처음 발표한 리더작도 솔로 연주 앨범인  Blues for Smoke (1960, Candid)였다. 이 앨범은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바이어드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활동하게 된다. 

1962년부터 64년까지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와 활동하며 밍거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Impulse!의 Mingus Mingus Mingus Mingus Mingus (파이브 밍거스)와 The Black Saint and the Sinner Lady를 녹음했으며 밍거스와 함께 유럽 투어를 떠난다. 

바이어드는 찰스 밍거스 외에도 에릭 돌피, 부커 더빈, 로랜드 커크, 샘 리버스의 사이드 맨으로서 중요한 레코딩들을 녹음했는데, 이 중 에릭 돌피의 첫 리더작 Outward Bound(1960, Prestige)는 모던 재즈의 최전선에 있는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 밴드로 유럽 투어를 했고 (1965년) 1967년에는 엘빈 존스와 연주했다. 70년에 들어서 밍거스 밴드에 다시 합류해 유럽 투어를 했다.  

재키 바이어드는 60-70년대에 괄목할 만한 리더작들을 남겼는데  Live! At Lennie's Vol.1 & 2 (1965, Prestige), Freedom Together (1966, OJC), Sunshine of My Soul (1967, OJC), Jaki Byard with Strings (1968, Prestige), The Jaki Byard Experience (1968, OJC)는 60년대에 발표된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이다. 




재키 바이어드의 데뷔작인 솔로 앨범 Blues for Smoke. 보스턴을 떠나 처음 비밥의 메카 뉴욕에서 녹음했던 작품. 클래시컬 뮤직과 고전적인 재즈의 분위기를 발랄하고 개성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 음반은 녹음은 1960년에 되었지만 89년이 되어서야 출시되었다. 


The Jaki Byard Experience. 1968년 프리스티지에서 발표된 음반으로 뉴올리언즈 스타일, 비밥, 프리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재키 바이어드 쿼텟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수작이다. 


재키 바이어드와 랜 블레이크, 써드 스트림의 거장들이 함께한 피아노 듀엣 앨범. On Green Dolphin Street 스탠다드 곡부터 여러 자작곡들에서 이들의 깊이 있는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재키 바이어드가 참여한 찰스 밍거스의 64년도 음반 Mingus, Mingus, Mingus, Mingus, Mingus (Impulse!). 


 

70년대 들어 바이어드는 솔로, 혹은 듀오 등 소규모 그룹으로 녹음을 많이 했는데 공연할 때는 피아노를 치면서 트럼펫, 색소폰을 불거나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부는 등 이색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posted by jazzlady


"사람들이 내 연주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쩌면...

진정으로 나는 고독을 즐기기 때문이다.

나는 고독과 음악과 영화와 책을 내 벗으로 삼고 지내왔다.

나는 다른 뮤지션들처럼 빨리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

나는 계속 음을 투입하지 않는다.

혹자는 내가 위대한 뮤지션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봐줄 만한 뮤지션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항상 훌륭한 뮤지션은 아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해달라고 요청받은 적도 없다.

나는 혼자, 혹은 두 명 정도만 같이 연주 하는 것에 족한다. 

많은 싱어들이 나를 인스파이어 하는 이유는 내가 공간과 침묵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랜 블레이크, Ran Blake (1935.4.20~ )


랜 블레이크는 군터 쉴러, 존 루이스 등과 함께 이른바 음악의 제 3의 물결 (써드 스트림, Third Stream)을 일구어온 개척자입니다.

써드 스트림이란 용어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인 건서 슐러가 창안했고, 이는 클래식(제 1물결), 재즈(제 2물결)에 이어 클래식과 재즈가 구조적으로 혼합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일컫습니다. 

랜 블레이크가 평생 그의 멘토이자 친구가 될 건서 슐러를 만나게 된 것은 1959년 1월, 뉴욕의 아틀란틱 레코드 스튜디오였습니다. 바드 칼리지에서 음악을 전공하던 블레이크는 아틀란틱에서 파트타임 어시스턴트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뮤지션들의 커피 심부름을 하거나 바닥을 닦는 허드렛일이 많았지만 그곳에서 당대의 내노라하는 뮤지션들, 리 코니츠, 레니 트리스타노, 밀트 잭슨, 모던 재즈 쿼텟 등 스튜디오를 찾은 많은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서 슐러와의 인연도 이 아틀란틱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죠. 

슐러는 블레이크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알아보았고 슐러가 가르치고 있던 '레녹스 스쿨 어브 재즈'의 써머 워크샵에서 공부하라고 조언합니다. 

당시 건서 슐러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한 '써드 스트림'이라는 개념을 창안하여 57년부터 보스턴의 브렌다이즈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슐러의 조언에 따라 블레이크는 59년과 60년 여름을 매사추세츠주 레녹스에서 보냅니다. 그 학교에서 군터 쉴러를 비롯해 빌 루소, 오스카 피터슨, 그리고 군터 쉴러와 함께 써드 스트림을 이끌었던 존 루이스에게 배우며 자신만의 창의적인 스타일을 정립해나가기 시작합니다.

블레이크의 초기 음악 스타일은 바드 칼리지의 음악 친구였던 보컬리스트 지니 리(Jeanne Lee)와의 듀오로 녹음한 첫 앨범 Newest Sound Around (RCA,1962)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이 작품은 재즈 스탠다드곡을 피아노, 보컬 듀오가 어떤 방식으로 유니크하게 해석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독창적인 작품으로 발표 후 뉴욕 재즈신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블레이크는 사라 본, 엘라 핏제랄드, 마할리아 잭슨 등 보컬 음악을 좋아했고, 보컬과의 듀오에 열정을 보여왔는데 그 중심에는 그의 대학 친구 지니 리가 큰 위치에 있습니다. 블레이크가 "지니 리를 처음 만난 것은 1956년 9월 26일 오후 3시 45분이었다"고 첫 만남을 술회할 만큼 그들의 프렌드십은 너무나 돈독한 것이었습니다.

Newest Sound Around의 성공으로 블레이크와 지니는 그 해 몽트레이 재즈 페스티벌에도 초대 받았고 벨기에, 그리스 등 두 사람은 유럽 여러 곳에서 3년을 머물며 열정적으로 활동합니다.


반향을 일으켰던 랜 블레이크와 지니 리의 듀엣 앨범 Newest Sound Around (RCA,1962)


<Free Standards : Stockholam 1966> 녹음 중인 랜 블레이크


1966년 발표된 <Free Standards : Stockholam 1966> 역시 스탠다드 곡들에 대한 독창적인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25곡으로 이루어진 이 앨범에서 10곡은 지니 리와의 듀엣, 나머지는 블레이크의 솔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랜 블레이크는 그 전 해인 65년 솔로 앨범인 <Ran Blake Plays Solo Piano>(ESP-Disk)을 발표했고 그 후 지금까지 상당수를 솔로 연주 녹음에 매진해왔습니다. 

1969년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앨범 Blue Potato & Other Outrages (Milestone Records)을 비롯해 폴 플레이가 설립한  Improvising Artists 레이블에서 녹음된  Breakthru (1977), 듀크 엘링턴의 곡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를 헌정하는 곡들이 수록된 Duke Dreams (1981, Soulnote)를 비롯해 Vertigo (1984, Owl)Painted Rhythms: The Compleat Ran Blake 1,2 (1985, GM Recordings)는 초기 솔로 녹음을 들을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앨범입니다. 

그의 솔로 녹음은 최근에까지 계속 이어지는데 Epistrophy(1001, SoulNote), All That Is Tied (2006, Tompkins Square), Wende (2007, Owl), Driftwoods (2009, Tompkins Square), Grey December: Live in Rome (2011, Tompkins Square)등이 괄목할만합니다.

제게 있어 소규모 그룹으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들을 꼽으라면 색소포니스트 제임스 메란다(James Merenda)와 데이비스 "나이프" 패브리스(David “Knife” Fabris)가 참여한 Horace is Blue: A Silver Noir (2000, Hatology), 드러머 지티아노 토노미(Tiziano Tononi)가 참여한  Unmarked Van: Tribute to Sarah Vaughan (1997, Soul Note - Italy), 그리고  건서 슐러의 아들인 베이시스트 에드 슐러와 드러머 조지 슐러가 참여한 Sonic Temples (2001, GM Recordings)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컬과의 협연을 좋아했던 랜 블레이크가 크리스틴 코레아(Christine Correa), 사라 세파(Sara Serpa)와 녹음한 앨범(Aurora, 2012, Cleanfeed)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인도 출신의 크리스튼 코레아는 지니 리와는 또 다른 섬세한 매력의 보컬 테크닉을 선보이는데 랜 블레이크와 Round About (1994, Music& Arts), Out of The Shadows (2010, Red Piano), Down Here Below: A Tribute to Abbey Liccoln, Vol. 1 (2012, Red Piano Records) 등 최근까지 그와 꾸준히 협연해오고 있습니다. 


랜 블레이크의 교육자로서의 업적은 그의 연주활동 못지 않게 재즈사에서 중요합니다.

1967년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컨소바토리(NEC)의 총장이 된 건서 슐러가 써드 스트림 동지들을 학교 교수로 초빙하였고 랜 블레이크는 조지 러셀과 함께 NEC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1973년에 랜 블레이크는 써드 스트림 전공의 석좌 교수가 되어 2005년까지 32년간 재직합니다.(지금은 써드 스트림과이라는 전공명이 '컨템포러리 임프로비제이션'으로 바뀌었습니다.)

블레이크의 이어 트레이닝과 음악에 관한 저서 Primacy of The Ear (2010년)를 보면, 그는 롱 텀(Long-term)메모리에 의한 이어 트레이닝 훈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블레이크는 스탠다드 곡을 연주할 때 악보에 의지하는 태도를 버려야한다고 말합니다. 음악을 악보로 시각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듯 머리 속에서 시각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아티스트는 음악을 위한 기억법을 개발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귀로 듣고 귀로 외우고 그것을 내면화하여 창의적인 임프로바이징을 하기 위해서는 이 점이 필수라는 얘기이지요. 기회가 될 때 마다 그의 이어 트레이닝 기법에 대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랜 블레이크는 저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의 행적 속에 등장하는 장소나 사람들이 친근하여 그와 더 가깝게 느껴지곤 합니다. 80이 가까운 나이지만 왕성하게 창작과 연주활동을 해 나가고 있는 그가 진정 존경스럽습니다. 



랜 블레이크의 2010년 저서 Primacy of The Ear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 Laura : 앨범 Newest Sound Around (RCA,1962)

Night and Day / Ticket To Ride : 앨범 Free Standards : Stockholam 1966 중에서



랜 블레이크에 관한 다큐 Above the Sadness의 트레일러. 

동유럽 리투아니아에서 랜 블레이크는 예술 애호가들의 가이드를 받으며 유목민처럼 뿌리 없이 떠다니는 재즈의 이야기들을 풀어봅니다.

랜 블레이크의 고독과 슬픔은 나치즘에 희생된 동유럽의 슬픈 역사와 대칭을 이루며 음악으로 승화됩니다.










posted by jazzl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