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재즈피플 2014년 6월호


내 마음속의 52번가. 

찰리 파커의 발자취를 찾아서


Charlie Parker (1920–1955)


맨해튼 타임스퀘어는 지구에서 가장 화려한 밤을 뽐내는 장소일 것이다. 빌딩 외벽을 도배하고 있는 거대한 전광판들은 하도 현란해서 밤거리에 익숙한 도시인들도 낯설다고 할만하다. 그러나 그곳과 한 두 블록만 멀어져도 어둡고 삭막한 빌딩 숲이다. 나는 지금 한 블록을 거의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멋 없는 빌딩 앞에 서 있다. 이곳이 70년 전 오닉스 재즈 클럽이 있던 자리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 텅 빈 거리가 40년대 비밥의 센터였던 52번가라는 것도 믿고 싶지 않다. 오닉스, 야트, 다운비트, 3 듀스, 패이머스 도어, 스팟라이트, 사모아……타임스퀘어처럼 찬란했던 그 많은 재즈 클럽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황량한 이 거리에 나뒹구는 비닐 봉지마냥 나도 쓸쓸해진다. 

52번가 6번과 7번 애비뉴에 있는 재즈 클럽에서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셀로니오즈 몽크, 버드 파웰 등 비밥의 혁명가들이 재즈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1945년, 찰리 파커는 그동안 실험했던 비밥을 완성했으며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본격적으로 비밥 밴드를 만들어 52번가 3듀스 클럽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할리우드에 비밥을 알리겠다고 뉴욕을 떠났다가 2년 뒤 다시 이 거리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마일스 데이비스, 듀크 조던, 토미 포터, 맥스 로치와 함께였다. 찰리 파커의 Bird on 52nd St. 음반은 1948년도 오닉스 재즈 클럽에서의 이들의 라이브 연주를 담고 있는데 몹시 낡은 음질 속에서도 이들의 패기 어린 연주가 또렷하게 느껴진다. 52번가 오닉스 재즈 클럽 자리에서 66년 전 그들이 연주한 52번가 주제곡을 듣고 있는 기분이란!

1945년부터 48년까지 찰리 파커는 완성된 비밥 아이디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테크닉이 무르익은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사보이 레코드와 다이얼 레코드에서 녹음된 음반들은 찰리 파커의 빛나는 천재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949년에는 52번가 서쪽에 찰리 파커의 별명의 딴 ‘버드 랜드’ 재즈 클럽이 세워지기까지 했으니 52번가의 중심에는 단연 찰리 파커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2번가와 함께 비밥의 메카로 기념해야 할 곳은 할렘에 있는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 클럽이다. 52번가에서 비밥이 발전했다면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 클럽은 비밥이 태어난 곳이다. 


비밥이 발전했던 40년대 맨해튼 52번가 6번 7번 애비뉴(위)과 같은 장소 현재의 모습(아래) 40년대 재즈의 메카였던 이 거리의 재즈 클럽들에서 리 파커를 비롯한 천재적인 뮤지션들이 '비밥'이라는 장르를 창조했다. 찰리 파커가 자주 출연했던 3듀스 재즈 클럽과 오닉스 재즈 클럽의 네온사인이 보인다. 지금은 당시의 화려했던 모습은 간데없고재 황량한 거리로 남아있다.



52번가를 걸으며 들었던 찰리 파커의 음반. 1948년 7월에 녹음된 오닉스 재즈 클럽의 컴플리트 레코딩(2003년 Definitive Records)이다.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듀크 조단, 셀로니오즈 몽크, 토미 포터, 맥스 로치, 얼 롤맨 카멘 맥래 등이 참여했다. 


비밥이 태어난 곳.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


52번가의 재즈 클럽들과는 달리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는 아직도 할렘에 자리하고 있었다. 초창기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지만 그 이름 그대로 할렘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민튼스는 1974년에 문을 닫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2006년 비교적 최근에야 재오픈 한 것이었다. 

캔자스 시티 출신의 찰리 파커가 부푼 꿈을 안고 뉴욕으로 온 것이 1939년이었는데, 이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는 그 전 해인 1938년에 세워졌다. 주인장 색소포니스트 헨리 민튼스는 뮤지션들에게 공연료를 지급하는 대신 뮤지션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했고 공짜로 먹고 마시게 해주었다고 한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문을 열었기 때문에 아폴로 극장 등 근방의 다른 곳에서 연주를 끝낸 뮤지션들이 그곳에 모여들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애프터 아워 잼 세션에는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셀로니어즈 몽크, 케니 클락 등이 주축이 되어 실험적인 스타일들을 시도했는데 기존의 빅 밴드처럼 짜임새 있게 편곡된 음악이 아닌 고도의 기교를 필요로 하는 빠르고 복잡한 임프로바이징을 선보이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이들의 실험성으로 인해 민튼스의 잼 세션은 유명해졌다. 알려진 바와 같이 비밥은 춤곡으로서의 재즈가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중심이 된 예술로서의 재즈를 갈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찰리 파커는 기존의 재즈 스탠다드 자곡이나 블루스를 테마로 하여 춤을 출 수 없을 만큼 빨리 연주하거나 반대로 매우 느리게 연주했는데 복잡한 멜로디를 순식간에 부는 통에 그의 연주를 들은 뮤지션들은 충격에 휩싸이곤 했다. 찰리 파커는 스윙 시대의 끝물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3년 가까이 제이 맥산 오케스트라의 대표 주자로 연주해왔지만, 싫증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이곳 민튼스에서 재즈를 새로운 예술적 위치에 올려놓겠다는 욕망을 다른 비밥 혁명가들과 함께 꿈꾸었고 성공했다.

새롭게 단장한 민튼스는 예전의 선술집 분위기를 벗고, 명품 요리들을 내세우며 할렘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식당으로 변했지만 “역사적인 재즈 명소”라는 정문의 팻말을 보는 것만으로도 비밥 팬들에게 향수를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 가려면 남자들은 정장을 입어야 하고 정장을 갖추어 입은 민튼스 밴드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오래전 비밥이 꿈틀댔을 당시의 역동성까지 어떻게 재현할 수 있으랴. 찰리 파커와 같은 천재가 돋보일 수 있었던 그 시기로 우리가 돌아갈 수가 없는데.


1974년에 재정악화로 문을 닫았다가 2006년에 재오픈한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 1938년 세워진 이후 비밥의 태어났던 역사적인 할렘의 명소이다. 문이 닫힌채 방치되어 있는 민튼스 플레이 하우스(아래)와 리모델링 된 뒤 고급 재즈 레스토랑으로 바뀐 현재의 모습(위) 


Koko와 Hot House는 재즈계에 떨어진 원자폭탄.


지금 우리가 재즈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많은 재즈 언어들은 찰리 파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존 콜트레인이나 마일스 데이비스처럼 그에게 각별한 애정이나 존경의 태도를 보이는 데는 인색한 면이 있다. 추측하건대, 파커의 스타일은 ‘비밥’이라는 장르 하나에만 국한되어 다양한 음악적 변신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마약으로 스스로 파멸시켜 버린 35년간의 짧은 생애.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너무나 짧고 병든 삶을 살았다. 또한 그의 삶 전반에 걸쳐 나타났던 비도덕성, 비인격성도 그를 향한 거부감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찰리 파커는 기존 스윙의 클리세를 벗어나 혁신적인 비밥의 언어를 만들었지만 그 이후의 재즈 주자들이 그의 연주를 표본으로 삼은 탓에 지금 와서 보면 그의 플레이는 또 다른 클리세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는 기존에 사용하지 않았던 9,11,13도 음을 도입하여 풍부한 화성을 만들어 냈고 3도 7도를 반음 내려 사용했던 블루스 음계에 반음 내린 5도 음까지 포함시켰다. 또한 두 개의 코드를 겹쳐서 하나의 코드처럼 사용하고 대리코드도 빈번하게 사용하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자연스럽지만 당대에는 대단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비밥의 스타일을 개척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솔로 방식을 제시한 디지 길레스피, 특이하고 풍부한 화성을 보여준 셀로니오즈 몽크, 변화무쌍한 리듬을 전개한 케니 클락이었는데 찰리 파커는 이들이 지닌 모든 요소를 갖추고 비밥 혁명을 이끌었던 주도적인 인물이었다.

비밥 곡들 중에는 스윙 시대에 연주되던 재즈곡의 코드를 그대로 인용하여 새로운 코드를 첨가하고 멜로디를 만들어 다른 곡으로 탈바꿈시킨 것이 많았는데, 이러한 시도는 찰리 파커가 스윙 곡 Cherokee를 연주하면서 그 곡을 구성하는 코드의 윗부분을 구성하는 음들로 연주하며 새로운 화성 전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찰리 파커는 Cherokee의 코드를 이용하여 새로운 멜로디의 곡 Koko를 발표했다. 이 곡은 당시 기준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괴상하고 복잡한 화성과 빠른 연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같은 방법으로 What Is This Thing Called Love 도 Hot House라는 새로운 곡으로 거듭났다. 

Koko와 Hot House는 당시 2차 대전 상황에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처럼 재즈계에 투하된 또 다른 두 개의 원자폭탄이었다. 그 뒤로 수많은 비밥의 고전들이 이 두 곡이 만들어진 방식으로 재탄생되었다. 


사보이와 다이얼 세션, 45년-48년 사이의 명연주들.


찰리 파커의 첫 레코딩은 1940년 제이 맥산 오케스트라와 라이도 방송용 녹음이었다. 찰리 파커의 음반 목록을 일목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SP와 10인치 LP 시대를 거친 찰리 파커의 음반은 하나의 공연 실황이나 전집으로 발매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재즈팬들을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여러 세션의 녹음을 하나로 묶어 놓았거나 같은 녹음을 편집해 여러 음반에 담아 놓은 것들이었 많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1945년~1948년 사이의 사보이 세션과 다이얼 세션 음반에서 그의 주목할 만한 연주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사보이와 다이얼에 남긴 찰리 파커의 녹음은 그가 비밥의 이디엄과 테크닉을 갈고 닦아 리더로서 화려하게 등장한 시기부터 마약중독으로 비교적 덜 망가졌던(?) 최전성기에 이르기까지 최상의 연주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보이에서의 명연주 마스터 테이크를 모아 놓은 음반인 Bird/The Savoy Recordings (Master Takes)도 소장 가치가 높은데, 이 음반은 The Charlie Parker Story, Charlie Parker Memorial, The Immortal Charlie Parker 등의 음반으로 일부가 공개되거나 리마스터링 음반으로 나오기도 했다. 사보이에서의 녹음된 전체 곡들은 2004년에 The Complete Savoy Sessions으로 출시된 바 있다. 

사보이 세션이 마일스 데이비스 등 트럼페터가 참가한 퀸텟 구성이라면 다이얼 세션은 트럼펫 뿐만 아니라 테너 색소폰, 트롬본 등 다른 여러 악기들이 더 참여했다. 다이얼 레코드는 찰리 파커가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갔을 때 그들로부터 재즈의 미래를 내다 본 로스 러셀이 설립한 레코드사이다.  사보이 세션이 뉴욕에서만 녹음된 반면 다이얼 세션은 L.A 와 뉴욕 두 군데서 녹음 되었으며 장소에 따라 분위기도 조금씩 다르다.  

다이얼 세션의 모든 녹음을 수록한 The Complete Dial Session (Stash)과 마스터 테이크를 모은 The Legendary Dial Master, Vol. 1 & 2 (Stash),  Bird Lives - The Complete Dial Master (Spotlite), Charlie Parker Story on Dial 1 & 2 (EMI) 등으로 나와 있는데 사보이와 다이얼 세션을 합쳐 놓은 The Complete Savoy & Dial Master Takes (Savoy)도 주목할만하다.


The Complete Dial sessions (1999, Definitive)

The Complete Savoy & Dial Master Takes (Savoy)

1945년에서 48년 사이에 찰리 파커는 사보이 레코드와 다이얼 레코드를 통해 명연주를 녹음했다. 사보이에서의 전 녹음을 담은 Complete Savoy Session (2004, Definitive)


52nd Street Theme

From Complete Onyx Recordings, 1948 at the Onyx Club, NYC.

Featuring: Charlie Parker Quintet with Miles Davis (tpt), Duke Jordan (p), Tommy Potter (b), Max Roach (d); Earl Coleman (voc)

posted by jazzl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