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즈음만 해도 초가을 날씨 같더니 (반소매 입고 다니는 사람도 여럿 봤다) 해가 바뀌기 무섭게 기온이 뚝 떨어져버렸다.

그래, 그래야 정상이지.....

지난 해는 11월 초부터 눈이 오기 시작하더니 2월까지 쉴새 없이 내렸다. 폭설로 갇힌 적도 있었다.

아무리 춥지 않아도 슈퍼 엘니뇨로 이상 기온을 보이는 것보다는 제대로 보스턴 겨울 맛이 나야 하거늘. 


2015년 마지막 날, 조촐한 가족 파티 사진.

지난 11월 말에 출시된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 The Complete Masters>와  Moet & Chandon Imperial  샴페인을 두고 새해를 기다렸다.

1965년 존 콜트레인의 역작 <A Love Supreme> 발매 50주년을 맞아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3CD 에디션이다. 

리마스터링 되어 음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모노 트랙과 미공개 음원, 65년 파리 실황까지 묶어서 나왔다. 

<A Love Supreme> 발매 이듬해인 1966년 11월,  콜트레인은 펜실베이니아의 템플 대학에서의 단독 공연을 가진 바 있다. 그때의 미공개 음원이 2014년에 앨범으로 출시돼 얼마나 기뻤던가. - <Offering: Live At Temple University>, Impulse! 

Offering에 A Love Supreme의 미공개 음원까지 더해지니 감동의 깊이란!

2016년 새해를 맞을 때 콜트레인이 내 옆에 꼭 붙어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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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의 이 감동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생각할 수록 흥분됩니다.

1957년 셀로니오즈 몽크와 존 콜트레인의 카네기 홀 공연 실황이 2005년 미 의회 도서관에서 발견되었을 때의 그 감동 말이죠.

이들의 연주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50년 가까이 도서관 사서에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1957년 미국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11월 29일 카네기 홀에서 열렸는데

뉴욕 할렘에 위치한 모닝사이드 커뮤니티 센터가 "Thanksgiving Jazz"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기획한 기금 모금 공연이었습니다.

아래의 짧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시면, 이 공연 실황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2005년 4월, 미 의회 도서관의 랩 책임자인 래리 어필배엄 씨는 의회 도서관에서 일련의 공연 녹음 기록물을 발견합니다.

방송사 '보이스 어브 어메리카'의 녹음물이었는데 일련의 겉봉에는“sp. Event 11/29/57 carnegie jazz concert (#1)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고 그 중 하나의 테잎에“T. Monk." 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재즈 매니아였던 어필배엄 씨는 이 아날로그 테잎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곧 테잎을 재생했고,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셀로니어즈 몽크의 미공개 공연 실황임을 알아채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듣다보니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사운드가 들리는게 아니겠습니까?


경악을 금치 못한 그는 재즈 연구가인 루이스 포터 씨에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내가 대단한 것을 발견했노라고.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전 세계 재즈 팬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레코딩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콜트레인과 몽크의 관계의 기록이기도 했기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었습니다.

연주된 사운드는 대단히 모던했고 모든 악기가 또렷히 들릴 만큼 음질도 좋았습니다. 

역사적 자료 가치도 높았지만, 연주 수준도 최상이었던 것이지요.

몽크는 컨디션이 매우 좋았고 신들린듯 많은 음들을 연주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더 이어가기 전에 카네기 홀 공연이 열렸던 그 해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1957년.

그 해는 셀로니어즈 몽크와 존 콜트레인 두 명 모두에게 몹시도 중요한 한 해였습니다.

몽크는 54년까지 10여 년, 개성있는 피아노 주법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오고 있던 터였습니다. 

다행히 55년 들어서 리버 사이드 레코드에서 발매된 <Plays Duke Ellington>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56년 말에는 추후 몽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Brillant Corners>가 녹음되는 등 몽크는 날개를 달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뉴욕에서는 공연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뉴욕에서 공연을 하는 모든 연주자들은 '카페트 카드'라는 일종의 공연 등록증이 있어야 했는데요, 몽크는 마약 문제로 이 카페트 카드를 상실했었던 것이죠. 

1957년이 되어야 몽크는 이 카페트 카드를 다시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선 무대가 파이브 스팟 클럽이었고 그리고 이어  그 역사적 녹음이 이루어졌던 카네기 홀 무대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존 콜트레인과 함께 말이지요.


이제 존 콜트레인을 볼까요.

콜트레인도 57년 초반은 뮤지션으로서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헤로인 중독으로 인해 그 해 4월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해고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일스는 여러 해에 걸쳐 콜트레인에게 경고를 했지만 그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퀸텟에서 방출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충격 받은 콜트레인은 고향인 필라델피아에 돌아가 숙고합니다. 

그리고 그가 나중에 고백했듯 이 시기에 영혼의 재각성 순간(moment of spiritual reawakening)이라 부른, 우주와 진정한 자아를 만나는 세계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두어 달 뒤 콜트레인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갑니다.


뉴욕에서 콜트레인은 다시 음악의 길로 몰입하기 위해 함께 할 유능한 뮤지션들을 찾습니다. 

그리고 몽크를 만나 그의 쿼텟에 합류하게 됩니다.

공연에 목 말라 있던 몽크와 마약을 끊고 각성의 길로 들어선 콜트레인. 

이들이 함께 한 파이브 스팟의 무대가 얼마나 뜨거웠을런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파이브 스팟 공연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청중들이 몰리는 대성공이었고 이들의 공연은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에 걸쳐 매일 밤 이어졌습니다. 

57년 바로 이 시점은 아니지만 콜트레인과 몽크의 한 파이브 스팟 클럽 공연 실황은 녹음되어 남겨져 있습니다. 58년도의 연주인데 이 때, 콜트레인은 몽크의 팀을 떠난 뒤였지만 일시적으로 색소포니스트 자니 그리핀의 자리를 매우기 위해 다시 몽크와 파이브 스팟 무대에 선 날이었죠. 이 날의 녹음은 콜트레인의 아내 나이마 콜트레인이 개인 휴대용 장비로 녹음되었고 나중에 발견된 뒤에는 1993년에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Thelonious Monk: Live At The Five Spot: Discovery!>라는 제목으로 발매된 바 있습니다. 

이 앨범은 원본 녹음 음질이 좋지 않아서 평가가 엇갈리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도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시 몽크와 콜트레인의 카네기홀 콘서트 레코딩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미의회 도서관에서 발견된 이 레코딩이 비록 좋은 상태로 녹음되고 보존이 되어 왔다 하더라도 아날로그 방식의 1/4인치 테입 모노로 녹음된 이 기록물을 디지털화하는 일은 까다로웠습니다. 

이 레코딩은 셀로니어즈 몽크의 아들인 프로듀서 T.S. 몽크에게 보내졌고, 그는 허비 행콕의 음반 작업에도 참여했던 유명 프로듀서 그랜드 믹서 DXT(Grand Mixer DXT)에게 가져갑니다.  

이들이 어떤 과정으로 작업을 했는지는 다음 자료에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링크) 

DXT는 T.S. 몽크로부터 이 레코딩의 복원을 제안 받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일주일간 하루 8~10시간 씩 일하면서 디지털 복원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 날 녹음을 위해 어떤 마이크가 사용됬고 어떤 녹음기와 믹싱 머신이 쓰여졌는지 등 장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생존자들은 없었어요." 

DXT와 뭉크는 Pro Tools HD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GT Key 하드 드라이브 3개가 장착된 Glyph GT 103으로 변환시켰습니다.

오리지널 테잎은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두 번만 리와인드 시켰는데, 첫 번 째 돌릴 때는 192K로, 두 번째는 88.K로 녹음했으며 백업본은 2개의 하드 드라이브에 나누어서 별도로 저장 했습니다.

1차 디지틀화 시킨 후 마무리 작업은 DXT가 도맡았는데요, 이것은 그야말로 많은 집중이 필요한, 일련의 잡음 제거 작업이었습다.

어떤 소리가 연주된 사운드인지, 테잎이 낡아지면서 나오는 잡음인지 일일이 구별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처음에 DXT는 잡음을 제거하고 오늘날의 기술 퀄러티로 복원시키는 일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전통주의자들인 경우 원본 그대로,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이런 잡음 제거 작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DXT는 몽크와 콜트레인의 이 역사적인 레코딩을 망친 사람으로 기억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DXT는 곧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몽크와 콜트레인은 히스(hiss)(쉭쉭 돌아가는 잡음 소리)를 연주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잡음 제거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이죠. 이 작업은 성공했고 마침내 바로 어제 녹음이 된 듯 생생한 음질로 몽크와 콜트레인 음악이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DXT는 이러한 자신만의 창의적인 복원 작업 기술을 'Forensic editing'이라 명명했습니다.

범죄학 용어인 forensic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DXT는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듯" 한 치도 놓치지 않고 면밀하게 사운드를 검토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들의 작업에 진정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몽크와 콜트레인의 이 라이브 실황을 들을 때 마다 슬럼프를 벗고 세상 앞에선 두 재즈의 거목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카네기 홀 무대 위로 저벅저벅 걸어나오는 그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떨린답니다.



Thelonious Monk (piano), John Coltrane (tenor saxophone), Ahmed Abdul-Malik (bass),  Shadow Wilson (dru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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