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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Dolphy

돌피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2> 기회의 땅, 유럽에서 마지막 시간들. 돌피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마지막회)기회의 땅, 유럽에서 마지막 시간들. 서른을 이립(而立)이라 했던가. 고향 LA로부터 동쪽으로 4천 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에서 서른을 시작한 에릭 돌피. 에릭 돌피가 생전에 발표한 5장의 리더작 중 4장은 뉴욕 입성 직후부터 2년 사이에 발표되었다. 서른이 공자의 말처럼 뜻을 세우는 나이라면 뉴욕은 돌피의 뜻이 오롯이 자리할 수 있는 장소였던가. 뉴욕에서 돌피의 음악은 저항에 부딪히곤 했다. 지난 호에 소개했듯 에릭 돌피는 존 콜트레인과 이른바 '뉴-재즈'를 연주하면서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돌피가 뉴욕 입성 후 의욕적으로 연주에 매진하던 시기에 평론가들은 '안티 재즈'라며 비판했고 존 콜트레인에 따르면 이것은 돌피를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었다. 이미 탑 뮤지션으로.. 더보기
돌피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새를 쫓던 천재 소년, 에릭 돌피. 그가 남긴 유산 (1) 돌피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새를 쫓던 천재 소년, 그가 남긴 유산. (에릭 돌피 1928.6.20 ~ 1964.6.29)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있던 1986년. 내가 살던 지역의 학생들은 성화 봉송을 위한 매스 게임 연습에 동원되었다. 반나절 이상을 카드 섹션이나 집단 무용 따위를 연습해야 했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에게 국가가 강요한 유희(遊戱)는 버거웠다. 탈주를 꿈꾸었다. 나에게 다른 세상으로 이끈 사람은 에릭 돌피였다. 돌피를 듣는 것은 비밀스러운 나만의 놀이었다. 아름답다는 말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을 돌피의 플루트 연주를 듣고 나서야 처음 느끼게 되었다. 여태껏 경험한 적 없는 실로 기묘한 소리여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낯선 사나이의 피리 소리에 홀려 따라가다 강에 빠져 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