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재즈피플 2014년 3월호


"어느 겨울, 위험한 외출"

카쓰 자렛, 카네기홀 솔로 콘서트를 고백하다.






우리 삶의 여정의 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 안에 던져진 나를 발견했다. (단테 '신곡)


오늘의 이 글은 오직 감성의 고백일 뿐이다. 이것은 일기장에 쓰여야 마땅하다. 나는 2월 5일 카네기홀 이삭 스턴 오디토리엄을 떠올리고 있다. 


#.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털고서 민첩한 동작으로 카네기홀 로비로 들어선 그녀는 예약증과 표를 바꾸기 위해 줄을 선 무리를 제치고 곧장 공연장 객석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1층 정중앙 좌석 넘버 P108로 향했고 먼저 앉아 있던 P106과 P105에게 양해를 구하자 그들은 그녀가 들어가기 쉽도록 기꺼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그들에게 “땡큐”라고 했고 그들은 미소를 지었는데 저도 모르게 감추었던 기대감이 순식간에 터져 나올 듯 그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키쓰 자렛의 연주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는 동질감, 그리고 이 공연이 가져올 감동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여유의 미소가 그들에게 번졌다. 그녀가 눈인사를 끝내고 좌석에 앉는 순간, 그녀는 이제 오직 청중 넘버 P108으로만 존재한다. 그녀는 P108로 명명되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공연이 시작되면 그녀의 신체 활동은 제한되고 그녀만큼이나 나이를 먹고 있는 상념들도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 그녀는 이날 아침, 올해 들어 가장 막강하게 불어 닥친 눈보라를 뚫고 보스턴 사우스 스테이션에서 뉴욕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맨해튼 중심부에 도달할 때까지도 폭풍은 멈추지 않았고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열차처럼 기차 밖 풍경은 그저 황량하기만 했다. 그녀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콘체르토 No.1을 귀에 꽂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이 얼어붙은 정경과 더없이 잘 어울렸으며 그녀의 열정을 북돋워 줄 엑스터시로써 가슴에 꽂혔다. 기차가 코네티컷 주를 통과할 무렵 그녀는 격정에 휩싸였던 마음을 잠시 거두고 키쓰 자렛 솔로 연주들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발라드를 떠올렸다. 매끄럽게 물결치는 바다 위의 배, 그 위에 누워있는 듯한 요동침이 그의 발라드에 담겨 있다.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듯 지속적으로 표출되는 루바토. 그의 루바토는 프레이즈 끝에 어떤 감동이나 뉘앙스를 제시하기 위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곡 전반에 걸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73년 솔로 콘서트의 Bermen에서와 같은 운동성을 몹시도 사랑했다. 그 느릿한 호흡이 만들어내는 리듬의 변화들, 4/4, 3/8, 3/4 다시 4/4와 2/4로, 그리고 7/8, 5/6으로.  그  비트는 밤의 호흡처럼 긴장과 이완으로 요동치는 것이며 종국에는 물결처럼 잔상으로 남고 마는 것이다.

그녀는 그 운동성에 미치도록 연루되고 싶었다. 그 판타시에서 그녀 자신이 멀어지는 것을 경계해왔으며 설령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마냥 질주하고 싶었다. 그 질주를 위해 그녀는 그녀가 가진 것을 조금씩 비우기로 했다. 즉, 허가되지 않은 뺌샘, 즉 <인간Home -이성 Logos = 짐승>. 짐승으로 허락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니 조금씩만 천천히 빼면 될 것이었다. 키쓰 자렛은 음악을 찾아 더할 것이고, 그녀는 뺄셈을 시작할 것이다. 뺄셈은 하강이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키쓰 자렛과 교감하는 그녀의 방식이었다. 



#. 공연이 시작되기 2시간 전 그녀는 카네기홀 건너편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롱 아일랜드산 프레시 오이스터와 마크햄 샤르도네 와인을 주문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카네기홀 건물은 맨해튼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 보수를 위한 철기둥이 처마를 이루고 있었다. 앙상하게 붉은 뼈마디를 드러내고 있는 구조물 뒤로 오늘의 공연을 말해주는 키쓰 자렛의 포스터가 보일 듯 말 듯했다. 저 가는 철골들은 지금 그녀의 설렘과 환희를 지탱하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나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일종의 잔해로 느껴질 것이다. 질척한 속살을 내뱉은 오이스터 껍질처럼.



#. 청중은 내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다른 연주자들보다 나에게는 청중이 필요하다. 다만 청중이 이 일을 하기만을 원할 뿐이다. Try to concentrate.

청중 넘버 P108, 그녀는 무대를 응시했다. 자렛식 음향 무대는 그녀의 이차적 쾌락이다. 그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자 그녀의 기관들은 침묵한다. 그녀는 어둠의 숲 절벽 위에 홀로 앉아 있을 뿐이며 그녀의 앞 뒤, 좌우는 오직 낭떠러지일 뿐이다.  



#. P108은 선율의 윤곽을 그려본다. 키쓰 자렛은 결코 토널 센터로 진입하지 않는다. 그는 일련의 아이디어를 끝내기가 무섭게 새 아이디어를 등장시켰다. 그는 패턴 없는 무조를 즐긴다. 종국은 없을 듯 음들을 연기시켜 나가다가 마침내 파열시켜 버린다. 내부의 음들이 안정적인 탐험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P108은 긴장감에 잠시 몸을 떤다. 10여 분 간의 프리 임프로비제이션이 끝난 뒤 키쓰 자렛은 가스펠적으로 Pt.2에 진입했다. 명료하게 스타일을 부여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P108은 잠시 이론적 레퍼런스들을 떠올리고 싶은 유혹에 빠졌지만, 계속 로고스 뺄셈을 이어가려 노력한다.

Pt.2가 끝난 뒤 키쓰자렛은 무대를 잠시 거닐다가 좁은 드라이브 웨이에 차를 잠시 세운 것을 깜빡한 사람처럼 황급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무섭게 질주한다. 비현실적인 속도감이 P108의 억눌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미궁 속으로 빠지려 하기 직전에 그는 느닷없이 연주를 끝내버린다. 2분간의 질주는 애를 태웠다. P108은 낭떠러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새로운 곡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그는 거세게 발리듬으로 탭하며 그루브를 만들었고 그녀는 멜로디에 짓밟히는 느낌 마저 들었다. 그녀 대신 자렛이 신음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그가 눈부시게 로맨틱한 멜로디로 Pt.5를 시작하자 P108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부상당한 그녀의 몸을 누군가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 몹시도 슬퍼졌다. 그 음악적 마조히즘이 섬뜩해서, 그녀는 어서 빨리 어둠의 절벽 위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 단지 피아노 한 대와 내가 무대에 있을 때, 나의 육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연스레 알고 있다. 내 왼손은 무엇을 연주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내가 꿈꾸는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해서, 내 손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에너지와 인스퍼레이션, 이것은 과도한 인풋이 되어 내 육체로 들어온다. 사람들은 내가 연주할 때 왜 소리를 내느냐고 묻는다. 아웃풋이 필요해서이다. 음악에 심취하면 열정이 나를 끌고 갈 뿐이다.

키쓰 자렛은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린 뒤 길게 손을 뻗어 피아노를 치곤 한다. 프레이즈를 날렵하게 순식간에 해결할 때, 주술을 읊듯 반복적인 뱀프로 리듬의 모멘텀을 만들어 낼 때에도 이 몸짓을 보인다. 어깨 밑으로 깊게 떨구어진 머리는 그 어떠한 것도 응시하지 않는다. 오직 스트레칭 하듯 길게 뻗은 팔이 독특한 보이싱을 이루는 손가락을 지탱하고 있다. 이윽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변화 없는 뱀프를 그만두고 몸을 주욱 끌어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길게 호흡을 내뱉고 들이마시면서 새로운 음들을 꺼내 보인다. 그에게 그루브는 육체적 경험이다. 



#. 인터미션이 시작되자 그녀는 비로소 어두운 사위를 돌아다 본다. 펭귄처럼 긴밀하게 붙어있던 개별자의 군상이 사라지고 있다. P106이 멋진 공연이 아니었냐고 말을 걸어온다. 그녀는 미소 짓는다. P106은 친구와 함께 뉴욕과 반대편 콜로라도에서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왔다. 그는 일본인으로 생각했다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의 말대로 키쓰 자렛을 좋아하는 아시안은 거의 일본 사람들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공연 전 32번가 코리아타운에서 한국 순두부를 먹었다. 또 다른 개별자 P109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다는 듯 말없이 앉아 있다. 그러나 그녀가 사진을 찍기 위해 일어나자 그녀의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을 건넨다. 그들 모두 중년의, 더 이상 누군가를 숭배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향유할 줄 아는, 파국적 경험을 가진, 거리낌 없는 탐험이 가능한, 강박적 열정에 관대한 존재.

P108. 그녀에게 주어진, 쾌락을 위한 외출의 시간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 



#. 음악은 허공에 있는 것을 찾던지 못 찾는 것이다. 쏟아지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일은 그 감정을 다 풀어내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것을 몰랐었다. 내가 연주하면 내 손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저절로 알고 있다. 나는 머리로 지시하지 않는다. 내 본능에 나를 맡길 뿐이다. 나는 무의식으로 음악의 경지를 이룬다. 

자렛은 왼손으로 아르페지오 하며 코드를 깨어낸다. 그러다 5th로 10th로 루트를 명시해가며 클래시컬 레퍼토리를 끌어들린다. 선정성은 격조 있는 패턴들로 가장한다. Pt. 8, Pt.10, Pt.11에서 그의 번민이 느껴진다. 그는 두 개의 곡에서 비슷한 시도를 하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 한다. 프레이징에 대한 센스를 남용하며 완결되지 못하는 시도를 감추기도 한다. 그의 실연(失戀)은 P108 그녀에게 조용히 간파된다. 그녀는 그가 쏟아내는 하모니 뭉치의 끝단을 주르륵 풀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독단적인 그를 벗기고 해체하고 그의 순진성을 가늠하고 싶어진다. 그의 과잉된 본능이 한낱 장식으로 무마되기도 할 때 그녀는 오히려 희열을 느낀다. 기교에 완전히 도달하지 않은 악기로 인해 그녀를 심란케 했던 앨범 No End를 떠올리며, 그가 확신 받고자 다가올수록 복종을 거부하고 싶어진다.



#. 그러나 결국 P108은 그로부터 이식된다. Over the Rainbow로 앙코르곡을 마무리할 때 그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결국, 그 인간적인 멜로디는 무조성에 대한 그의 사유와 샤먼적 본능을 강조시키는 장치이다. 그는 그녀에게 결여된 것을 상기시켜 주었고, 그녀는 자렛에게 이 청명한 카네기홀이라는 지정학적 지위를 부여했다. 그녀는 노회하나 그녀보다 더 오래 영원히 살아남을, 그 육체에 위탁된 멜로디와 내연의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걸려들었지만 세속의 뺄셈으로는 규범의 논리와 완전히 결별할 수 없었고 따라서 온전히 짐승이 될 수는 없었다. 이것은 그녀 존재의 본질적인 허약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초연히 무대 뒤로 사라진 뒤에도 우물 밑바닥 물빛처럼 축축해진 어둠의 객석에서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좌석에 앉는 순간, 그녀는 이제 오직 청중넘버 P108으로만 존재한다. 그녀는 P108로 명명되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공연이 시작되면 그녀의 신체 활동은 제한되고 그녀만큼이나 나이를 먹고 있는 상념들도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키쓰 자렛은 결코 토널 센터로 진입하지 않았다. 그는 일련의 아이디어를 끝내기가 무섭게 새 아이디어를 등장시켰다. 키쓰자렛의 2006년 카네기홀 솔로 콘서트의 모습. 


맨해튼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 보수를 위한 철기둥이 처마를 이루고 있는 카네기홀. 이 붉은 철골들은 지금 그녀의 설렘과 환희를 지탱하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나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일종의 잔해로 느껴질 것이다. 


2월 5일 카네기홀에서 열린 키쓰 자렛의 솔로 콘서트. 자렛식 음향 무대는 그녀의 이차적 쾌락이다. 


*상기 언급된 키쓰자렛의 코멘트는 지난 달에 열린 NEA재즈 마스터스 어워드에서 키쓰자렛의 인터뷰를 인용한 것임.



posted by jazzlady

재즈 탐미 <1회>  재즈피플 2014년 1월호


 "이 시대 현자들에게 재즈의 길을 묻다”


“재즈의 유령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렉싱턴의 유령’이 출간됐던 1997년. 나는 운명적으로 재즈에 감당해야 할 몫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일을 벌였었다. 친구들이 한창 취업 준비에 바쁠 때 나는 하고 싶던 재즈 디렉터와 출판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속 재즈를 듣는 노인처럼 한없이 고독했다. 노인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수 만장의 재즈 콜렉션을 렉싱턴의 저택에 쌓아두고 있었다. 노인이 없는 저택에서 하루키는 재즈를 들으면서 매일 밤 언뜻언뜻 유령과 조우한다. 재즈와 고독이 만들어낸 유령이다. 나는 지금 그 소설의 무대가 된 렉싱턴 근방에서 살고 있다. 렉싱턴 한복판을 지날 때마다 이따금 그 유령들이 나를 엄습하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재즈를 향한 연민이라는 유령일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 나는 여러 번 재즈의 유령들을 만났었다. 가장 강력했던 것은 8년 전 여름이었다.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가 송두리째 무너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과 찬란한 재즈의 유물들이 속절없이 죽어갔을 때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흔은 처참한 것이었다. 재난을 맞고 수개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볼 수 있었다. 퓨너럴 밴드가 고장난 악기들을 고쳐 모아 거리 행진을 하며 뉴올리언스의 부활과 재즈 뮤지션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부르짖었다. 그 날 신들린 듯 연주했던 퓨너럴 밴드는 도시 구석구석 숨어있던 재즈의 유령들을 기어이 불러내고 말았으리라. 8년이 지난 지금도 뉴올리언스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은 또 있다. 대공황을 연상시킬 만큼 강력했던 서브프라임 경기 침체 후유증. 재즈 클럽들을 비롯해 많은 비즈니스가 문을 닫고 전 국민이 경제적인 근심에 쌓여 있는 동안에 재즈는 번민하는 불법 체류자들처럼 그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기 힘겨워했다. 미국 대통령이 에스페란자 스팔딩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퇴근길에 NPR 재즈를 듣는다고 해서 미국이 재즈의 천국이 아니라는 것 쯤은 이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충심의 재즈 매니아들은 이런 종류의 사색이 많아졌다. 재즈는 미국이 전 세계에 준 선물이라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 것일까? 미국에서 재즈가 희망이 있는 것일까? 

나는 유러피언 전통 음악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스타일을 창작해 내는 유럽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과 중소 레이블들을 경탄해 마지않는다. 언더그라운드 재즈 뮤지션들이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를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로 삼는다던가 하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재즈 바이올린의 선구자 조 베누티의 후예 답게 이태리 음악 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고사리손으로 스트링 재즈를 연주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이저까지 필드 곳곳을 골고루 채우고 있는 지적인 청중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프랑스 출신의 클라우드 볼링이 미국의 원조 래그타임을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뉴올리언스가 유럽에서 부활한 듯도 하다. 클라우드 볼링은 듀크 엘링턴 추종자로 지금까지 나온 앨범 60여 장의 거의 절반이 래그타임, 부기우기와 빅밴드 스타일로 채우고 있다. 누가 볼링을 크로스오버 뮤지션이라고 못 박았단 말인가?


이번 ‘양수연의 재즈탐미’ 연재를 통해서 운이 좋으면 미국에서 재즈의 희망에 관한 사색들이 어떤 종착점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 글에는 재즈 이야기들이 모자이크처럼, 이를테면 공연이나 앨범 감상 소감 따위라든가 뮤지션들과의 인터뷰가 난데없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 에세이를 통해 재즈에 관한 나의 짧은 지식을 늘어놓는다던가 어떤 거창한 주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러분이 재즈 매스터들에 대한 무한 경외를 노골화하는 것에 반감을 갖지 않고 행간을 관통하는 아이러니들을 발견한다면 난 행복할 것 같다. 


지난 몇 주간 나는 훌륭한 재즈 아티스트들의 서로 다른 공연 두 개를 감상했다. 하나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열린 키스 자렛 트리오 공연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보스턴의 소극장 ‘릴리 패드’에서 열린 색소포니스트 제리 버곤지의 쿼텟 공연이었다. 개성이 강한 이 두 공연을 서로 비교할 것은 못되지만, 나의 변별된 느낌 만큼은 이러했다. 키쓰 자렛이 득음의 유희가 펼쳐지는 세상 너머 속 비현실적 나를 실감케 했다면, 제리 버곤지는 그의 독창성이라는 맹렬한 무기를 방패할 것인지 파고들 것인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는 역동적인 나를 체험케 했다. 키쓰 자렛이 자연법을 따르도록 정교하게 조각된 신의 창조물이라면 제리 버곤지는 자유와 희망을 논하는 입헌 국가의 수장과도 같았다. 나는 이 두 명의 재즈 매스터들에게 이 시대의 재즈의 길을 묻고 싶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음악으로 답을 할 터이지만 나의 미흡한 능력이 요구하건대 나는 내 눈앞에 보여질 인품과 적절한 언어의 뉘앙스가 필요했다. 교육자로서도 존경받는 버곤지는 그것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뮤지션이었다. 그렇다면 키쓰자렛은?


“음 2개만 잘 쳐도 좋겠다”

키쓰 자렛 트리오 결성 30주년 공연에서.


(키쓰 자렛 트리오의 30주년 기념 콘서트가 열리기 직전의 무대 모습)



12월 11일 카네기홀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키쓰 자렛 트리오 공연은 트리오 결성 3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지면에서 그들의 긴긴 30년 여정을 풀지 못하고 공연을 잠깐 스케치하고 마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자렛은 이날 말을 많이 했다. 지난 30년간 연주의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고, 팬들이 성원해준 탓에 30년 주택 모게지를 다 갚았다며 우스갯소리들도 늘어놓았다. 처음 공연장에 데리고 왔다는 손녀딸 둘을 위해 첫 곡은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캐럴로 시작했고 1, 2부에 걸쳐 Answer Me, My Love / Autumn Leaves / I Loves You Porgy / One for Majid / Fever / The Ballad of the Sad Young Men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 God Bless the Child 등의 순서로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연주했다. (자렛이 곡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키쓰 자렛의 팬으로서 어떻게 의미를 두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키쓰 자렛 트리오의 팬이라면 예전에도 연주되었던 이 스탠다드 곡들이 어떻게 카네기홀을 울렸을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매 곡들은 양질의 내용으로 충족되어 있었고 결핍을 찾기 어려웠다. 키쓰 자렛의 개성은 너무나 구체적인 것이어서 나는 심장에서부터 솟구치는 희열을 자근자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청중들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자렛이지만 이날 뉴욕에서는 관대해진 것일까. 2008년 보스턴 공연에서도 누군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무대를 박차고 나가서 다시 나오려 하지 않았던 그였다. 이날은 청중들의 태도 따위는 잊은 듯했다.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휴대폰 카메라도 개의치 않았고 곡을 막 끝내어 심호흡을 내뱉기도 전에 실없이 소리 지르는 청중에게도 고개를 획 돌려 관심의 되물음을 건네기도 했다. 많은 커플들이 상대방 어깨에 기대어 편안히 보는 바람에 객석 곳곳이 데이트 공연장처럼 V자 모양이었다. 그래, 재즈의 메카, 자유로운 뉴욕이니까.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되자 자렛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느릿느릿 말문을 열었다. 

“우리 점잖고 무뚝뚝한 게리 피콕이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더 마시고 왔는지 조금 흥분해서 저에게 훈계하더군요. 2부 공연에서는 청중들을 그냥 확 보내줘 버릴 연주를 하자고 하면서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나가서 음 2개만 잘 쳐도 좋겠다고 대답했죠”

이 말이 끝나고 연주한 곡이 가수 페기 리의 히트곡 “Fever”였다. 속웃음이 나왔다. Fever는 주 멜로딕 아이디어가 “피, 버!”하는 음 2개가 아니던가. 이 곡은 코드 시퀀스가 없는 지극히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졌고 다만 베이스 리프와 “피, 버” 음 두 개만이 생동감을 줄 뿐이다. 멜로디 자체는 밀가루 솔틴 크래커처럼 심드렁해서 가사가 들어간 파퓰러 음악이 되어야만 제법 맛있게 들린다. 자렛은 펑키한 리듬에 맞추어 변형 없이 Fever 멜로디를 연주했다. 자렛은 충실하게 스케일을 연습하는 학생처럼 화려한 기교 대신 마이너 팬터토닉 안에서 담백하고 또렷하게 솔로를 이어갔다. 나는 자렛의 지나치게 겸손한 ‘음 두 개(just two notes)’ 발언에서 그의 음을 향한 fever를 읽었다. 자렛이 왜 음 하나하나가 중요한 푸가적인 악곡이나 대위법적 악곡들에도 심혈을 기울이는지 나로 하여금 다시 성찰하게 했다. 키쓰 자렛은 공연 내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은 최근 Somewhere 앨범에 불완전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수록되기 바란다고 말했던, 진실한 자아를 보여주고자 하는 자렛의 열망과도 맞닿아진 메시지였다. 음 하나하나의 고유성을 탐미하고 기본을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뮤지션들의 영원한 숙제이며, 음결합의 이치는 다름아닌 자신의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제리 버곤지, “재즈는 진화했지만 청중은 진화하지 않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금빛 악기의 윤곽이 드러났다. 허름한 자주색 파커를 걸어 놓고 색소폰을 꺼내 들자 비로소 깊고 잘 생긴 제리 버곤지의 눈매가 도드라져 보였다. 적막의 한기를 깨고 몇 호흡 불어 사운드 체크를 끝낸 뒤에야 그의 얼굴에 여유가 번졌다. 10여 명의 청중이 릴리 패드 소극장에 모여 앉았다. 매주 월요일 밤, 드러머 루써 그레이(luther gray), 베이시스트 윌 슬래이터(Will Slater), 트럼펫터 필 그레나디어(Phil Grenadier) 등 젊은 유망주들이 그와 함께 한다. 진보의 임프로비제이션 현장에서 서로의 영혼을 탐색하는 이들이기에 몇 사람이 지켜보던 그 무대는 뜨거웠다. 키쓰 자렛이 청중들에게 개념을 요구한다면 제리 버곤지는 뮤지션들에게 개념을 요구한다. 제리 버곤지는 끊임없이 다양한 뮤지션들을 탐색해왔고 그의 주변에는 늘 젊고 유능한 뮤지션들이 그와 플레이 하기를 원했다. 그는 이 시대 위대한 교육자로서 늘 재즈의 미래를 고민하는 위치였다. 미국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이미 교과서나 다름없는 그의 이론서 <인사이드 임프로비제이션> 시리즈는 진보하는 재즈의 모든 것들이 차근차근 담겨있다. 제리 버곤지의 명성은 일찍이 데이브 브루백 쿼텟에서 활동했던 70년대 (73~75년, 79년~81년)에 전 세계에 알려졌고 2000년 이후에만 그는 스무 장에 가까운 앨범을 발표했다. 최근 앨범 Three For All, Shifting Gears, By Any Other Name은 버곤지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수작들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예술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감상 풍토에 대해 애석함을 드러냈다. 삶과 재즈는 진화되어 왔지만 청중은 진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예술혼이 안고 가야 할 일종의 비애였다. 공연이 끝난 후 그는 남루한 자주색 파커를 걸친 채 곧장 어둠의 거리로 사라졌다. 나는 잠시 꿈을 꾼 듯 하였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찬란한 광채의 금관(金管)악기였던가, 아니면 이 시대 예술의 영토를 고민하는 금관(金冠)을 쓴 고독한 왕이었던가. 

그와의 일문일답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소극장 릴리 패드의 무대에 선 제리 버곤지.)



-. 당신은 다양한 뮤지션들과 그룹을 만들어왔는데 지금 멤버들을 누구인가.

‘제리 버곤지 쿼텟’은 어디서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멤버가 달라진다. 고정 멤버는 없지만 드러머 안드레아 메첼루티(Andrea Michelutti), 베이시스트 데이브 산토로(Dave Santoro) 등 핵심 멤버가 있고 네 번째 멤버는 달라지는데 필 그레나디어와 같은 훌륭한 트럼펫터도 있고, 내년 3월에는 색소포니스트 딕 오츠(Dick Oatts)와도 연주할 예정이다. 난 앨범 <Shifting Gears>에서처럼 퀸텟 구성을 좋아한다. 나는 내 음악에 방향과 개성을 주기 위해서 최대한 많이 연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앨범 <Any Other Name> 매우 인상적이었다. Giant Steps를 비롯해 여러 스탠다드 곡들을 콘트라팩트로 작곡했는데 느낌이 정말 새롭다. 작곡할 때 어떤 점들은 염두에 두었나?

이런 스타일의 작법에서는 스탠다드 코드 체인지에 이따금 오리지널 튠과 아주 다른 강한 바이브와 멜로디를 작곡한다. 그러면 대단히 새로운 방식으로 임프로바이즈 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듣는 이들도 새롭고 신선하게 들리게 된다. Giant Steps가 원곡과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 당신의 앨범 상당수가 대부분 당신이 작곡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최근 앨범 Shifting Gears나 Any Other Name에는 트럼펫이 있는데 다른 혼의 멜로디도 작곡하는가? 이 두 앨범에 참여한 트럼펫터 필 그레나디어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필 그레나디어는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나디어와 형제임)

그렇다. 나는 작곡할 때 두 개의 혼(horn)을 위한 멜로디를 각각 작곡한다. 테마 부분 혼 하모니는 임프로바지잉이 아니라 작곡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테너 색소폰과 트럼펫 주자들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트럼펫터와 연주하는 것을 매우 즐긴다. 그래서 두 개의 혼을 위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트럼펫터 필 그라나디어는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사운드를 가진 대단히 훌륭한 뮤지션이고, 그와 연주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사람들이 곧잘 콜트레인과 당신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도 알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세대의 모든 뮤지션들이 존 콜트레인과 그의 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콜트레인과 나를 비교하는 사람 중에는 음악을 쉽게 쉽게 듣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즉, 내 음악을 제대로 듣지 않고 그냥 자기가 알고 익숙한 뮤지션과 비슷하다고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내 음악을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내 세계의 고유한 아이디어와 감정을 가지고 연주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 연주할 때 당신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음악적으로 영감을 받는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연주하고 있는 밴드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는다. 물론, 연주자들은 자기 악기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연주 홀의 어쿠스틱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모든 연주공간은 다르다. 이것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다. 사운드 엔지니어들이야말로 뮤지션들의 유일한 적이라고 생각한다.


-. 재즈의 지난 역사를 보았을 때 재즈는 진화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창의적인 음악 작품들은 난해해서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경향이 있다. 재즈가 가야 하는 길이 있는 것인가?

삶과 모든 예술이 진화하듯 재즈도 진화했지만, 청중만큼은 진화하지 않았다. 예술을 써포트할 돈이 없는데 어떻게 청중이 진화될 수 있겠나? 청중도 교육되어야 진화가 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아티스트는 뭘 해야 하나? 아메리칸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알아듣기 쉬운 음악을 해야 하나? 청중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때 나는 속으로 웃는다. 그들이 어떻게 이 우주, 이 음악을 이해하겠는가? 우주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것이고 본능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수준 낮은 마인드로 고차원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아티스트 수준으로 마인드를 끌어올려야 한다.


당신은 보스턴에서 태어났고 현재 보스턴에 정착해 있는데 이곳은 재즈 환경은 어떠한가.

나는 뉴욕에서 5년간 살았고 77년 내가 태어난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데이브 브루백과 1년에 200회를 투어했기 때문에 사는 곳이 별 의미가 없었다. 보스턴은 학생 타운이다. 많은 학생이 음대를 졸업하고 그들의 상당수가 뉴욕이라는 재즈의 진짜 세계로 떠난다. 보스턴은 현실이 아니다. 학생들은 그들만의 거품 생활을 할 뿐이다. 학교에서 인정받는 것과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졸업 후 프로 세계로 뛰어들어야 현실이 보인다.


최근 들어 유럽의 재즈 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사람들은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예술성 있고 독특한 스타일의 재즈도 각광받는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유럽에서 예술이 더 각광받는다는 것에 동의한다. 청중의 질도 더 좋다. 일반인들은 뮤지엄에 가기를 즐기고 클래식과 재즈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왜? 그들의 교육에 이런 부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정부 차원에서 예술을 적극 지원해주는 않는가? 미국은 좋은 무기만 잘 만들고 있다.


-. 당신은 교육자로서도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뮤지션들이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데, 재즈 뮤지션들이 해주고 싶은 말은?

너 자신을 믿어라. 네가 숨만 쉬어도 의미 있다. 음악이 곧 마스터이고 우리는 모두 학생이다. 음악은 너무나 큰 존재이다. 음악은 우주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신성한 삶의 원칙을 공부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진심으로 대해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또 상상해라. 예술은 많은 희생이 따른다. 인생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 다른 것을 해서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1월에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스튜디오에서 7 Rays를 녹음할 것이다. 이 곡은 하나의 테마로 연결되는 여러 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또 3월에는 딕 오츠와 "A Granny Winner”라는 앨범이 새번트 레코드(Savant records)에서 발매될 예정이고, 2015년에는 Riggamaroll의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제리 버곤지는 이 지역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롤 모델이 되왔다. 트럼펫 유망주 필 그라네디어와 함께.)


(‘릴리 패드’는 보스턴에 몇 안되는 예술 전문 소극장으로 현관문을 열면 바로 무대와 직면한다.)


여러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새로운 멜로디 하모디 구성으로 편곡한 앨범 By Any Other Name, 2012, Savant Records.


드라마틱한 솔로의 진수를 보여 주는 수작, Shifting Gears, 2012, Savant Records.

posted by jazzlady



8년 전의 이 감동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생각할 수록 흥분됩니다.

1957년 셀로니오즈 몽크와 존 콜트레인의 카네기 홀 공연 실황이 2005년 미 의회 도서관에서 발견되었을 때의 그 감동 말이죠.

이들의 연주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50년 가까이 도서관 사서에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1957년 미국 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11월 29일 카네기 홀에서 열렸는데

뉴욕 할렘에 위치한 모닝사이드 커뮤니티 센터가 "Thanksgiving Jazz"라는 타이틀을 내 걸고 기획한 기금 모금 공연이었습니다.

아래의 짧은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시면, 이 공연 실황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과정을 알 수 있습니다.



2005년 4월, 미 의회 도서관의 랩 책임자인 래리 어필배엄 씨는 의회 도서관에서 일련의 공연 녹음 기록물을 발견합니다.

방송사 '보이스 어브 어메리카'의 녹음물이었는데 일련의 겉봉에는“sp. Event 11/29/57 carnegie jazz concert (#1)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고 그 중 하나의 테잎에“T. Monk." 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재즈 매니아였던 어필배엄 씨는 이 아날로그 테잎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는 곧 테잎을 재생했고,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셀로니어즈 몽크의 미공개 공연 실황임을 알아채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듣다보니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사운드가 들리는게 아니겠습니까?


경악을 금치 못한 그는 재즈 연구가인 루이스 포터 씨에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내가 대단한 것을 발견했노라고.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전 세계 재즈 팬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 레코딩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콜트레인과 몽크의 관계의 기록이기도 했기에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이었습니다.

연주된 사운드는 대단히 모던했고 모든 악기가 또렷히 들릴 만큼 음질도 좋았습니다. 

역사적 자료 가치도 높았지만, 연주 수준도 최상이었던 것이지요.

몽크는 컨디션이 매우 좋았고 신들린듯 많은 음들을 연주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더 이어가기 전에 카네기 홀 공연이 열렸던 그 해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1957년.

그 해는 셀로니어즈 몽크와 존 콜트레인 두 명 모두에게 몹시도 중요한 한 해였습니다.

몽크는 54년까지 10여 년, 개성있는 피아노 주법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해 어려운 시기를 보내오고 있던 터였습니다. 

다행히 55년 들어서 리버 사이드 레코드에서 발매된 <Plays Duke Ellington>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56년 말에는 추후 몽크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Brillant Corners>가 녹음되는 등 몽크는 날개를 달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뉴욕에서는 공연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뉴욕에서 공연을 하는 모든 연주자들은 '카페트 카드'라는 일종의 공연 등록증이 있어야 했는데요, 몽크는 마약 문제로 이 카페트 카드를 상실했었던 것이죠. 

1957년이 되어야 몽크는 이 카페트 카드를 다시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선 무대가 파이브 스팟 클럽이었고 그리고 이어  그 역사적 녹음이 이루어졌던 카네기 홀 무대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존 콜트레인과 함께 말이지요.


이제 존 콜트레인을 볼까요.

콜트레인도 57년 초반은 뮤지션으로서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헤로인 중독으로 인해 그 해 4월 마일스 데이비스 밴드에서 해고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일스는 여러 해에 걸쳐 콜트레인에게 경고를 했지만 그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퀸텟에서 방출하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충격 받은 콜트레인은 고향인 필라델피아에 돌아가 숙고합니다. 

그리고 그가 나중에 고백했듯 이 시기에 영혼의 재각성 순간(moment of spiritual reawakening)이라 부른, 우주와 진정한 자아를 만나는 세계를 체험합니다. 그리고 두어 달 뒤 콜트레인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갑니다.


뉴욕에서 콜트레인은 다시 음악의 길로 몰입하기 위해 함께 할 유능한 뮤지션들을 찾습니다. 

그리고 몽크를 만나 그의 쿼텟에 합류하게 됩니다.

공연에 목 말라 있던 몽크와 마약을 끊고 각성의 길로 들어선 콜트레인. 

이들이 함께 한 파이브 스팟의 무대가 얼마나 뜨거웠을런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파이브 스팟 공연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청중들이 몰리는 대성공이었고 이들의 공연은 7월부터 11월까지 5개월에 걸쳐 매일 밤 이어졌습니다. 

57년 바로 이 시점은 아니지만 콜트레인과 몽크의 한 파이브 스팟 클럽 공연 실황은 녹음되어 남겨져 있습니다. 58년도의 연주인데 이 때, 콜트레인은 몽크의 팀을 떠난 뒤였지만 일시적으로 색소포니스트 자니 그리핀의 자리를 매우기 위해 다시 몽크와 파이브 스팟 무대에 선 날이었죠. 이 날의 녹음은 콜트레인의 아내 나이마 콜트레인이 개인 휴대용 장비로 녹음되었고 나중에 발견된 뒤에는 1993년에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Thelonious Monk: Live At The Five Spot: Discovery!>라는 제목으로 발매된 바 있습니다. 

이 앨범은 원본 녹음 음질이 좋지 않아서 평가가 엇갈리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도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시 몽크와 콜트레인의 카네기홀 콘서트 레코딩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미의회 도서관에서 발견된 이 레코딩이 비록 좋은 상태로 녹음되고 보존이 되어 왔다 하더라도 아날로그 방식의 1/4인치 테입 모노로 녹음된 이 기록물을 디지털화하는 일은 까다로웠습니다. 

이 레코딩은 셀로니어즈 몽크의 아들인 프로듀서 T.S. 몽크에게 보내졌고, 그는 허비 행콕의 음반 작업에도 참여했던 유명 프로듀서 그랜드 믹서 DXT(Grand Mixer DXT)에게 가져갑니다.  

이들이 어떤 과정으로 작업을 했는지는 다음 자료에도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링크) 

DXT는 T.S. 몽크로부터 이 레코딩의 복원을 제안 받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일주일간 하루 8~10시간 씩 일하면서 디지털 복원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 날 녹음을 위해 어떤 마이크가 사용됬고 어떤 녹음기와 믹싱 머신이 쓰여졌는지 등 장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생존자들은 없었어요." 

DXT와 뭉크는 Pro Tools HD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GT Key 하드 드라이브 3개가 장착된 Glyph GT 103으로 변환시켰습니다.

오리지널 테잎은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두 번만 리와인드 시켰는데, 첫 번 째 돌릴 때는 192K로, 두 번째는 88.K로 녹음했으며 백업본은 2개의 하드 드라이브에 나누어서 별도로 저장 했습니다.

1차 디지틀화 시킨 후 마무리 작업은 DXT가 도맡았는데요, 이것은 그야말로 많은 집중이 필요한, 일련의 잡음 제거 작업이었습다.

어떤 소리가 연주된 사운드인지, 테잎이 낡아지면서 나오는 잡음인지 일일이 구별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처음에 DXT는 잡음을 제거하고 오늘날의 기술 퀄러티로 복원시키는 일이 과연 필요한가에 대해 고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전통주의자들인 경우 원본 그대로, 손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약 이런 잡음 제거 작업에 문제가 생길 경우 DXT는 몽크와 콜트레인의 이 역사적인 레코딩을 망친 사람으로 기억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DXT는 곧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몽크와 콜트레인은 히스(hiss)(쉭쉭 돌아가는 잡음 소리)를 연주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잡음 제거를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이죠. 이 작업은 성공했고 마침내 바로 어제 녹음이 된 듯 생생한 음질로 몽크와 콜트레인 음악이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DXT는 이러한 자신만의 창의적인 복원 작업 기술을 'Forensic editing'이라 명명했습니다.

범죄학 용어인 forensic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DXT는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듯" 한 치도 놓치지 않고 면밀하게 사운드를 검토했다고 고백합니다. 

이들의 작업에 진정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몽크와 콜트레인의 이 라이브 실황을 들을 때 마다 슬럼프를 벗고 세상 앞에선 두 재즈의 거목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카네기 홀 무대 위로 저벅저벅 걸어나오는 그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마다 가슴이 떨린답니다.



Thelonious Monk (piano), John Coltrane (tenor saxophone), Ahmed Abdul-Malik (bass),  Shadow Wilson (drums).






posted by jazzl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