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재즈피플 2014년 4월호

진정한 향유가 있는 곳, 그곳엔 재즈 클럽이 있다.

릭(Licks)은 세익스피어 경구처럼 아름다운 것




지금 나는 여행 중이다. 맨해튼 레스토랑 로우(Row)의 한 식당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주문한 애피타이저를 기다리면서 연신 자판을 두드리고 있지만 동시에 내 귀는 이 식당을 메우고 있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식당이나 카페에서 흐르는 마일스의 음반들은 59년 Kind of Blue라든가 Relaxing, Cooking 내지는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음반 등 주로 50년대 중 후반 이후의 앨범들이 많은 편인데, 지금 이 식당에선 마일스의 40년대의 초기 연주들이 흐르고 있다. 때로는 빅밴드 스타일, 때로는 소규모 편성 속에서 빠르고 흥겹게 그의 연주가 흘러나온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Donna Lee를 콧노래로 따라부를 수 있는 이 기쁨이란! 낡은 음질이지만 어둠 속에서 매처럼 번득이는 마일스의 눈매가 그대로 느껴진다. 무대의 붉은 조명이 그 눈매를 비춘다면 청중은 심장이 멎을 것이다. 조명 속 그의 눈매를 보았던 그 시대 청중이야말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존재 중 하나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이곳을 떠나면 나는 재즈 클럽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마일스처럼 강하든 강하지 않던 연주자들의 모습과 연주를 직접 체험할 것이다.


맨하탄 재즈 클럽, 55Bar. 3월 16일, 이날은 기타리스트 빅 주리스의 공연이 열렸다. 작고 허름한, 오직 연주자와 청중을 위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재즈 클럽이다.  


위대한 컨텀포러리 임프로바이저들의 향연, 데이브 리브맨, 마크 코플란드, 리치 바이락.

 

지난 이 주간 나는 몇 군데의 재즈 클럽에서 인상적인 연주를 들었다. 

데이브 리브맨과 마크 코플란드 듀엣, 리치 바이락과 제이미 바움 듀오, 론카터, 도널드 해리슨, 빌리 콥햄 트리오, 빅주리스 트리오와 차세대 신인 트럼페터 암브로즈 아킨시뮤레와 월터 스미스 3세 퀸텟 등 모두 이 시대 내로라하는 재즈 뮤지션들이다. 또 하나의 이 시대 위대한 기타리스트 빅 주리스와 색소포니스트 암브로즈 아킨시뮤레의 음악에 대해서는 지면상 다음 기회에 다루도록 하겠다. 

데이브 리브맨과 마크 코플란드의 공연은 3월 15일 케임브리지 시 릴리 패드에서 열렸다. 데이브 리브맨에 대한 나의 애정은 거의 추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음악을 들을 때 마다 금욕적인 태도로서 일체의 음악적 허영도 스스로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분석적으로 그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음악은 그 자체가 이론이자 그 이론을 벗어나 있다. 나는 그의 79년도에 발매된 Dedlication(헌정) 음반을 특별히 좋아한다. 이 음반에는 리브맨의 음악적 동지 피아니스트 리치 바이락을 위한 “The Code’s Secret Code”과 2차 세계 대전 당시 트리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죽은 100만명의 사람들에게 헌정된 “Treblinka”이 수록되어 있다. 무겁게 시작되는 현악기들의 인트로를 지나가다보면 리브맨의 서정적인 멜로디에 이른다. A-B-C-A 구성으로 주멜로디의 변주가 계속 이어지다가 섹션 B에서는 전 악기가 퍼커시브 필링으로 리드미컬한 하모니를 자유분방한 느낌으로, 섹션 C에 이르러서는 리치 바이락과 데이브 리브맨이 인상적으로 교감한다. 리브맨의 곡들은 대단히 치밀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음반에서와같이 무겁고 비극적인, 때로는 서정적인 메세지들이 있다. 이번 마크 코플랜드와의 듀오 역시 탄탄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재즈가 커뮤니케이션의 음악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최근 발매된 프레디 허버드와 줄리앙 라지의 Free Flying 음반과 같은 일종의 완벽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처럼. 마크 코플란드의 페달을 많이 쓰는 아르페지오에 내재된 깊은 그루브를 타고 리브맨의 소프라노 색소폰은 좁은 공간을 박차고 나갈 듯 저돌적이면서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그의 음악이 지닌 특유의 지성미, 특유의 칼러는 즉흥 연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며 청중의 귀 속으로 이내 스며든다. 

3월 6일 케임브리지 레가터 바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리치 바이락 콘서트도 리브맨과 같은 맥락 즉, 하모니, 멜로디, 리듬, 톤, 칼러 등에 있어 끊임없는 혁신성을 보여주었다. 이날 리치 바이락의 연주는 불과 열흘 전후로 결정된 것이었다. 그의 공연은 매우 드물었고 따라서 그날 그의 청중이 된 것이 행복했다. 크로매티즘 이론을 집대성한 데이브 리브맨의 저서 A Chromatic Approach to Jazz Harmony and Melody에는 그에게 영감을 준 리치 바이락에 대한 깊은 애정과 감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는데 이들 두 사람, 데이브 리브맨과 그의 동지 리치 바이락을 열흘 간격으로 만났던 것은 나로서는 큰 영광이었다. 바흐에서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클래식 음악 역사에서 크로매티시즘은 진화를 거듭해왔지만 짧은 재즈의 역사 속에서 임프로바이징의 지평을 넓혀주는 요소로서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은 데이브 리브맨, 리치 바이락과 같은 위대한 컨템포러리 임프로바이저들 덕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가는 재즈 클럽, 그리고 나의 핫하우스 재즈 클럽.

 

어느 수요일 밤, 빌리지 뱅가드나 55Bar와 같은 재즈 클럽에 혼자 앉아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재즈 클럽에 나는 주로 혼자 간다. 공연장은 여럿이 가는 것을 즐기지만 재즈 클럽 만큼은 혼자가 좋다. 진정한 의미에서 무대의 주인공이 재즈 뮤지션이 되는, 오직 퍼포먼스가 중심에선 그러한 재즈 클럽말이다. 이왕이면 테이블 차지가 있는, 그 테이블 차지나 티켓 수익이 뮤지션들에게 돌아가는 그러한 클럽 말이다. 뮤지션이 중심이 되고 청중이 중심이 되는 그곳에서 음식이나 음료 따위를 즐기는 나의 미각은 이차적인 것이다. 나에게 있어 연주는 연주, 음식은 음식. 콘서트홀에서 좋은 연주를 듣고 나이스한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거나 인터미션 때 샴페인을 먹는 것은 기꺼이 즐기지만, 재즈클럽에서 이러한 식감에 대한 교감을 누군가와 나누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그리고 이런저런 재즈 외의 화제들로 분위기를 나누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 내가 누군가를 재즈 클럽에 데려왔다면 그 또는 그녀를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가지게 될 수도 있는데 이 상황을 또한 피하고 싶다. 오직 음악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나는 혼자가 좋다. 그 음악이 좋던 아니던 그 누구보다 진지한, 좋은 오디언스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십 오년 전 홍대에서 재즈 클럽 핫하우스를 오픈했을 때를 기억한다. 작은 클럽이었지만 충분한 바가 있었고, 테이블에서도 혼자 앉아 음악을 듣는 청중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때론 테이블을 쉐어 했고 과묵하게 음악에 집중했다. 나는 그러한 청중들을 좋아했다. 나는 그 때 핫하우스의 훌륭한 젊은 뮤지션들과 청중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젊은 뮤지션들은 지금은 쟁쟁한 중견 뮤지션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 때의 청중들 또한 지금의 나처럼 어디에선가 깊이 음악을 즐기고 있으리라. 그때 나는 클럽 구석의 오피스에 조용히 앉아서 무대와 청중을 번갈아 바라보며 음악을 듣곤 했다. 당시 티켓료는 공연에 따라 적을 때는 삼천 원 많을 때는 만 원 정도 했었는데 처음에 반발이 많아서 모 커뮤니티에 ‘안티 핫하우스’가 카페로 개설되기도 했다. 그들은 공연이 중심이 되는 클럽을 도무지 이해하려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또 다른 챌린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 안티카페는 몇 주가 안되어 사라졌고 청중들은 묵묵히 티켓료를 지불했다. 다행히 그 카페는 몇 주가 안되어 사라졌고 청중들은 묵묵히 티켓료를 지불했다. 좋은 청중들이 클럽으로 모여 들었다. 그것은 나의 챌린지가 성공했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내 클럽에서 연주자는 존 케이지 이상의 실험을 할 수도 있었고 스트라빈스키를 연주하는 윈튼 마샬리스처럼 클래시컬 할 수도 있었다. 신인 뮤지션들의 데뷔 무대가 되기도 했고 그래서 낮에는 항상 오디션이 있었다. 그때의 즐거웠던 기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 가면 지금처럼 재즈 클럽에 혼자 갈 것이다. 혹시 재즈 클럽에서 혼자 마티니를 마시며 연주를 듣고 있는 묘령의 여인이 보인다면 그녀가 대단히 프라이빗한 재즈 아피시아나다(aficionada)일 뿐이라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릭(Licks)은 세익스피어 경구처럼 아름다운 것, 론 카터, 도널드 해리슨, 빌리 콥햄 트리오.

 

도널드 해리슨, 론 카터, 빌리 콥햄 트리오의 연주는 데이브 리브맨의 공연이 열리기 이틀 전인 3월 13일 케임브리지 레카터 바 재즈 클럽에서 열렸다. 이들 트리오는 10년 넘게 투어해왔고 이날도 전통적인 포스트 비밥 튠을 연주했다. 여든을 향해 가는 베이시스트 론 카터는 하얀색 포켓 스퀘어와 블랙 수트를 입고 등장했다. 론 카터가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했던 Sorcerer나 E.S.P, Nefertiti 음반에서 얼마나 대단했는지 잊을 수가 없다. 그러나 All Alone, Peg Leg를 비롯한 그의 리더작이라던가 소위 포스트 마일스 이후의 활동은 기대에 미흡했던 부분이 있다. 심지어 그가 시도했던 바흐의 곡들이 미흡했노라 그 스스로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든 적도 있다. 결론적으로 나는 론 카터의 전성기를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 그를 만나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를 보기 위해서 300마일을 달려갈 수도 있다. 행여 명성에 기대어진 과장된 평가를 받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가 오랫동안 이 세상에 남아 연주를 들려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현을 튕길 때마다 나뭇가지처럼 흔들리는 유난히 긴 손가락, 다크 브라운 업라잇 베이스, 블랙 수트, 그의 미소 모두를 사랑한다. 

그는 오랫동안 솔로를 한다. 대다수의 청중들은 중장년층이었는데 그들을 향한 팬서비스, 이를테면 You are My Sunshine 같은 곡을 10여 분 넘게 홀로 연주하는 것은 그의 의도대로 성공적인 팬서비스였다. 그러나 나는 아는 곡이 나온다고 해서 모든 것을 음악적 조크로 받아들이는 것, 끊임없이 웃는 청중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로 중간에 느닷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조크를 발견했을 때 잠시 웃고 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연주자가 의도하는 한, 그가 괜찮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청중들의 태도 역시 그들 음악 세계의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식으로 그들의 음악에 개입하고 싶지는 않다. 

빌리 콥햄, 이 시대 최고의 드러머 중 하나로서 그의 명성을 한 번에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 그와 론 카터는 대단히 잘 어울렸다. 그는 자기의 화려한 드럼 솔로를 한 번만 보여줬지만, 매곡 마다 나는 그가 없었더라면, 없었더라면…이런 생각을 했다. 그와 론 카터는 대단히 잘 어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론 카터는 콥햄의 73년도 데뷔 음반 Spectrum에서부터 함께 했었다. 퓨전 재즈 명반이라고 할 수 있는, 콥햄의 모든 것이 총 망라되어 있는 이 기념비적인 음반에서와 같이 그의 연주는 록과 재즈의 그 모든 보케브러리를 가지고 있으며 대단히 복잡한 드러밍을 선보인다. 이 날 연주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노장 드러머의 모습에 모두가 감동을 받았다. 뉴올리언즈 출신의 기품있는 색소포니스트 도널드 해리슨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스트라이프 수트에 붉은 색 포켓 스퀘어를 가슴에 꽂고 정중한 태도로 연주를 했다. 그의 연주가 엄청나게 새로웠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최소한 뉴올리언즈의 전통에서부터 비밥까지 재즈 색소폰이 지닌 향수를 듬뿍 느끼게 해주었다. 그는 연주는 이제 막 50줄에 들어선 그의 나이만큼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많은 연주자들이 그들의 릭(licks)을 연주한다. 혹자는 클리세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 모든 연주가 릭으로만 이루어졌다면 모르겠지만 솔로에서 적절한 릭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릭을 들을 때 나는 세대와 세대로 이어져가는 전통과, 그것을 만들고 만들어진 것을 연습해왔던 연주자의 땀방울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 세익스피어의 경구나 적절한 사자성어처럼 효과적이다. 특히 색소폰 주자에게서 이따금 보여지는 찰리 파커의 릭은 눈물나게 아름답다. 콜맨 홉킨스의 아름다운 명 솔로에서 아이디어를 뽑은 릭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것은 재즈의 랭귀지이고 보케브러리 중 하나이다. 

이 트리오 그룹은 적절한 릭을 사용하면서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이들의 오랜 호흡, 무시할 수 없는 연주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들의 연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로비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도널드 해리슨이 내게 다가왔다. “당신이 사진 찍는 것을 보았다. 내게 보내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 그의 고향 뉴올리언즈의 재즈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론 카터가 그를 부르며 다음 공연을 상기시킬 때까지 20여분. 헤어질 때 그가 말했다. 나, 미스터 카터, 미스터 콥햄은 우리의 본능으로 교감한다. 예술에 대한 열망이 있는 장소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낸다. 이 재즈클럽의 많은 청중들에게 나는 그 열망을 읽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렇게 나아갈 것이다. 죽을 때까지.

피아니스트 리치 바이락, 3월 6일 케임브리지 시 레가터 바의 공연. 

데이브 리브맨

데이브 리브맨(우)와 마크 코플란드(좌). 3월 15일 케임브리지 시의 릴리 패드 공연. 이들 음악이 지닌 특유의 지성미, 특유의 칼러는 즉흥 연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론 카터와 도널드 해리슨. 3월 13일 케임브리지 시 레가터 바에서의 트리오 공연. 이들은 무시할 수 없는 오랜 연주 경험에서 비롯된 감동을 청중들에게 선사했다. 

론 카터, 도널드 해리슨과 함께 10년 넘게 투어를 해왔던 드러머 빌리 콥햄. 



posted by jazzlady

재즈 탐미 <2회>  재즈피플 2014년 2월호


"재즈의 정치로 꿈꾸는 미국"


영웅의 탄생



사막의 메마른 먼지를 뚫고 몇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일련의 사람들은 총성과 함께 갈팡질팡 흩어졌다. 뜨겁게 김 오른 아지랑이 사이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은 총구는 가슴에 흐르는 피를 쥐어 막으며 주저앉은 사내를 향한다. 승자의 처분을 기다리는 이 자는 남자의 얼굴을 알아본다. "키드, 너였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는 가쁜 숨을 내쉬는 사내를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와중에 다시 모여든 사람들은 총집을 매만지며 뒤돌아선 남자가 지나가도록 길을 내어준다. 뉴멕시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그 이름은 빌리 더 키드. 주인 없는 초지, 무법의 서부에서 횡포한 권력과 악을 징벌하고 가난한 개척자들을 지키는 자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서부로 몰려든 자들에게 그는 이제 정의의 사도로 불린다.


미국의 전설적인 총잡이 '빌리 더 키드'에 대한 나의 묘사가 우스꽝스럽고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졌다면, 이제 미국의 위대한 작곡가 아론 코플란드의 1938년 발레작품 '빌리 더 키드'를 감상하기 바란다. 넓은 대평원, 개척지의 거리, 밤의 카드 게임, 권총 싸움 등 빌리 더 키드의 삶의 장면들이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생기를 얻게 되는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척박한 서부의 땅을 일구는 자들의 삶의 무게를 공감하며 절로 가슴이 먹먹해질 터이다. 총잡이들의 싸움이 묘사되는 작품 'Gun Battle'에 이르러서는 악기들의 긴박함에 마음을 졸이며 21명을 죽였다는 실존했던 이 범법자가 시대의 영웅으로 미화되는 것의 불편함 조차 망각하게 된다. 한낱 총잡이의 이야기는 음악이라는 고차원의 예술과 만나 '아메리칸 스피릿 미학'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개척정신의 유물인 서부의 총잡이들은 미국 사회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영웅 이미지의 원천이다. 미국 사회가 깔끔하게 면도한 단정한 스타일보다는 반대 이미지의 거친 영웅을 선호해 온 것도 과거의 개인주의와 개척 정신이 미국을 대표하는 가치임을 암시하는 비공식적 찬양이나 다름 없는데 작품 '빌리 더 키드'가 미국의 작곡가에 의해 미국적 소재로 만들어진 미국 최초의 발레극이라는 역사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한 미국의 총잡이에게 주어진 미학적 가치도 계속될 것이다.

(전설적인 서부의 총잡이 빌리 더 키드는 1859~1881년까지 살았던 실존 인물로 미국 문화 예술계에서 시대의 영웅으로 미화되어왔다.)



미국이 요구하는 재즈의 정신


존 콜트레인 탄생 60주년이던 1987년 9월 23일, 미 하원에서는 '재즈는 미국의 국보 (Jazz: A National American Treasure)' 결의안이 통과됐다. 재즈가 미국의 근대 문화유산 가치로 공식화된 것이다. 이 결의안은 민주당 소속 존 콘여스 주니어 의원이 발의했고 같은 당 알랜 크랜스턴 의원의 후원한 것으로 같은 해 12월 4일 상원에서도 채택되었다. 그리고 20년 뒤 영부인 미셀 오바마의 당찬 발언으로 상기된다. 2009년 6월, 오바마는 이례적으로 백악관에서 재즈 워크숍을 개최했고 "재즈는 미국 고유의 예술 형식(Jazz is America's indigenous art form)"이라 강조하며 재즈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재즈가 들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미셸 오바마,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에 빠져 있는 버락 오바마. 이들 재즈 애호가 커플이 백악관에 입성해 "재즈야 말로 가장 민주적인 음악"이라 칭송했을 때 미국 재즈계가 얼마나 감동 일색이었는지 일일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집권을 위해 마지막 박차를 다했을 때에도 재즈계는 오바마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2년 10월 9일 뉴욕 심포니 스페이스 극장의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을 보라. 오바마 재선을 위한 기금 모금 콘서트 'Jazz For Obama'에는 짐 홀, 론 카터, 조 로바노, 브레드 멜다우, 캐니 배런, 디디 브리지 워터, 캐니 가렛, 크리스찬 맥브라이드 등 내로라한 재즈 뮤지션들이 총 집합해 오바마를 외쳤다. 오바마는 이렇게 응답한다. "재즈는 다양한 목소리와 생각을 담으며 불협화음 조차 그 안에서 예술이 된다."


재즈의 이미지는 국가 내부적으로 9.11사태 이후 위기에 직면한 문화적 다양성을 회복함과 동시에 복잡한 국제 정략 속에서 초강대국 지위를 지속시켜야 하는 오바마의 과제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진취성과 용기를 상징하는 개척정신이 미국의 전통적 시대정신이었다면 모든 인종과 계급이 사회적 이익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수용 원칙, 이른바 '재즈 정신'은 미국의 새로운 소명이 되었다. 지난해 시리아 내전과 관련한 기자회견 중 오바마의 즉흥 발언에 당혹감을 느낀 세력이 "즉흥은 재즈의 덕목이지 대통령의 자질이 아니다"라며 비아냥거린 것도 '재즈적인 오바마'를 다소 침통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개척정신이 총을 필요로 했다면 재즈의 정신은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필요로 한다. 개척정신이 보수의 이미지로 차용되었다면 재즈정신은 진보의 가치로 표상됐다. 개척정신의 이면에 내포된 탐욕과 파괴를 윤색(淪塞)할 수 있는 선하고 아름다운 공존의 가치. 나는 이것을 미국의 재즈 정신이라 부르고 싶다. 


      

(오바마를 예찬하기 위해 만들어진 패러디 작품들 : 미국 재즈계는 오바마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재즈의 정신은 오바마가 추구하는 국가적 목표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빌 프리셀, 미국 재즈의 지평을 넓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타리스트 빌 프리셀을 주목해야 한다. 그야 말로 미국 정신의 계보를 독창적인 자기 언어로 담아내는 가장 미국적인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빌 프리셀이 추구하는 스타일의 다양성(diverse)과 음악의 뿌리(root)에 대한 탐구는 포크, 컨트리, 블루그래스, 록, 재즈를 포괄하는 이른바 '아메리카나(Americana)'스타일 창출로 이어진다. 장르의 외피를 벗고 미국을 탐미하려는 그의 시도는 92년 작 <Have A Little Faith> 앨범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은 19세기와 20세기,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북부와 남부라는 미국의 다양한 역사, 문화적 층위를 포괄하였으며 앞서 언급했던 총잡이 Billy The Kid 7부작을 비롯하여 스티브 포스터, 찰스 아이브스, 존 필립 수자, 밥 딜런, 머디 워터스, 마돈나, 존 하이아트, 소니 롤린스의 곡을 미국이라는 거대한 주제 속으로 통합시켰다.


(빌 프리셀의 92년 작 Have A Little Faith는 미국 정신의 계보를 빌 프리셀의 독창적인 언어로 담아낸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빌 프리셀의 빌리 더 키드는 작곡가 아론 코플란드의 멜로디를 그대로 따라가지만 Mexican Dance and Finale와 Prairie Night에서는 과감하게 임프로바이징을 펼치고 있으며 표현방식에 있어서는 원곡과는 다른 개성 있고 독특한 질감을 준다. 코플란드가 장엄한 하모니로 스케일 큰 영웅을 표현하려 했다면 프리셀의 빌리 더 키드는 감성적이고 천진난만한 청년의 느낌이다. 빌리 더 키드 외에도 미국의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미국 현대 음악의 아버지 찰스 아이브스의 작품 <뉴잉글랜드의 세 장소>중 첫 번째 "The Saint-Gaudens' In Boston Common(보스턴 코먼에 위치한 성 가우든스)" 를 실었는데 이곳은 남북 전쟁에서 싸웠던 흑인 병사들의 연대기가 새겨진 장소로서 미국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상징한다. 빌 프리셀은 이 곡을 발췌(excerpt)의 형식으로 두 개로 나누었고 양 곡 사이에 밥 딜런의 'Just Like A Woman', 머디 워터스의 'I Can't Be Satisfied', 마돈나의 'Live To Tell'을 배치하여 곡이 주는 메세지 효과를 높였다. 마돈나의 히트곡 'Live To Tell' 은 빌 프리셀에 이르러 역경을 딛고 살아남은 자에 관한 거대한 서사시로 새롭게 태어나는데 클라이막스로 치달아가는 10여 분은 이 앨범의 백미이기도 하다.

'The Star-Spangled Banner(미국 국가)','God Bless America', 'America, the Beautiful' 등과 함께 미국의 애국심 고취 음악으로 선두에 꼽히는 아론 코플란드의 Billy The Kid와 독립 기념일 퍼레이드의 주 레퍼토리인 존 필립 수자의 행진곡 Washington Post March이 시사하듯 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애국의 메타포이다. 애국의 메시지는 웃통을 벗은 채 질주하는 아이들을 담은 앨범 표지에서도 드러나는데, 이 사진은 작가 러셀 리가 1941년 미국 서부 오레건주의 작은 도시에서 열린 미국 독립 기념일 달리기를 찍은 것이다. 창공에는 빌 프리셀의 딸인 모니카 프리셀의 손글씨로 '신념을 지녀라(Have a Little Faith)'는 제목이 달려있다. 이 제목은 존 하이아트의 곡 이름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미국의 건국 이념 중 하나인 'Faith'를 연상시킨다. 이 외에도 리듬 체인지 대표 곡중 하나인 소니 롤린스의 No Moe를 비롯해 When I Fall In Love (빅터 영),  Little Jenny Dow (스티브 포스터), Have A Little Faith In Me (존 하이아트),  Billy Boy 등 지난 125년 미국 음악사의 스타일리시한 포인트를  빌 프리셀의 독특한 사운드로 표현해낸 것이다. 


Have a Little Faith 앨범 이후에도 빌 프리셀은 미국이라는 텍스트를 적극 활용한다. 때론 시골 농부의 일상을 파고 들기도 했고 (Disfarmer, 2009) 서부 영화의 내러티브를 차용하기도 하였으며 (Go West : Music for the Films of Buster Keaton, High Sign/One Week 95년), 컨트리 음악을 모티브로 지역의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Nashville, 1997) 


지난 해 발표된 앨범 빅 서(Big Sur)는 자연과 교감하는 유니크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빅 서는 산타 크루즈와 산타 바바라 사이의 90마일에 달하는 장대한 미 서부 해안으로 1937년 1번 해안 도로가 완성된 이후에도 개발이 제한되어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으로 남아 있다. 빌 프리셀이 몬터레이 페스티벌 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이 아름다운 서부 해안을 음악으로 만들려했을 때의 목표도 순수 그 자체의 자연이었다. 이를 위해 스트링 앙상블인 858 사중주 - 제니 샤인맨(바이올린), 에이빈트 강(비올라), 행크 로버츠(첼로), 루디 로이스턴(드럼)과 함께 빅 서의 자연 속에 머물면서 광활한 해안 절벽의 바람과 동물들의 울음 소리까지 깊이 귀 기울였다. 장엄한 북태평양 바다를 묘사하거나 제압하기 위해 그 어떤 과장된 인위적 사운드를 동원하지 않았으며 컨트리 포크 느낌의 진솔함으로 담담하게 자연을 풀어내고 있다. 적어도 빌 프리셀의 음악에서 자연은 더 이상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정복되거나 파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공유하고 공존해야 하는 대상이다. 

빌 프리셀의 진정한 능력은 오랜 수련 과정을 통해 다듬어온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내공의 음악을 보여준다는 것이며, 이는 북미 대륙의 자연적 토양분을 저 심연의 끝에서부터 받아들인 토착민의 영혼을 소유한 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빌 프리셀은 깊은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스토리텔러이자 미국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태도이다. 그래서 그가 아메리카나와 접합될 때 미국 재즈의 지평은 빅 서처럼 광대무변해진다. 만고 끝에 서부에 다다른 개척자들이 북태평양 빅 서를 앞에 두고 느꼈을 환희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빌 프리셀의 최신작 Big Sur의 모델이 된 미 서부해안 '빅 서'의 모습.  사진: 김홍기 hongkirang.kr




(빌 프리셀은 깊은 통찰력을 가진 위대한 스토리텔러이자 미국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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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탐미 <1회>  재즈피플 2014년 1월호


 "이 시대 현자들에게 재즈의 길을 묻다”


“재즈의 유령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렉싱턴의 유령’이 출간됐던 1997년. 나는 운명적으로 재즈에 감당해야 할 몫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일을 벌였었다. 친구들이 한창 취업 준비에 바쁠 때 나는 하고 싶던 재즈 디렉터와 출판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속 재즈를 듣는 노인처럼 한없이 고독했다. 노인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수 만장의 재즈 콜렉션을 렉싱턴의 저택에 쌓아두고 있었다. 노인이 없는 저택에서 하루키는 재즈를 들으면서 매일 밤 언뜻언뜻 유령과 조우한다. 재즈와 고독이 만들어낸 유령이다. 나는 지금 그 소설의 무대가 된 렉싱턴 근방에서 살고 있다. 렉싱턴 한복판을 지날 때마다 이따금 그 유령들이 나를 엄습하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재즈를 향한 연민이라는 유령일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 나는 여러 번 재즈의 유령들을 만났었다. 가장 강력했던 것은 8년 전 여름이었다.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가 송두리째 무너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과 찬란한 재즈의 유물들이 속절없이 죽어갔을 때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흔은 처참한 것이었다. 재난을 맞고 수개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볼 수 있었다. 퓨너럴 밴드가 고장난 악기들을 고쳐 모아 거리 행진을 하며 뉴올리언스의 부활과 재즈 뮤지션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부르짖었다. 그 날 신들린 듯 연주했던 퓨너럴 밴드는 도시 구석구석 숨어있던 재즈의 유령들을 기어이 불러내고 말았으리라. 8년이 지난 지금도 뉴올리언스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은 또 있다. 대공황을 연상시킬 만큼 강력했던 서브프라임 경기 침체 후유증. 재즈 클럽들을 비롯해 많은 비즈니스가 문을 닫고 전 국민이 경제적인 근심에 쌓여 있는 동안에 재즈는 번민하는 불법 체류자들처럼 그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기 힘겨워했다. 미국 대통령이 에스페란자 스팔딩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퇴근길에 NPR 재즈를 듣는다고 해서 미국이 재즈의 천국이 아니라는 것 쯤은 이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충심의 재즈 매니아들은 이런 종류의 사색이 많아졌다. 재즈는 미국이 전 세계에 준 선물이라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 것일까? 미국에서 재즈가 희망이 있는 것일까? 

나는 유러피언 전통 음악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스타일을 창작해 내는 유럽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과 중소 레이블들을 경탄해 마지않는다. 언더그라운드 재즈 뮤지션들이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를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로 삼는다던가 하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재즈 바이올린의 선구자 조 베누티의 후예 답게 이태리 음악 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고사리손으로 스트링 재즈를 연주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이저까지 필드 곳곳을 골고루 채우고 있는 지적인 청중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프랑스 출신의 클라우드 볼링이 미국의 원조 래그타임을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뉴올리언스가 유럽에서 부활한 듯도 하다. 클라우드 볼링은 듀크 엘링턴 추종자로 지금까지 나온 앨범 60여 장의 거의 절반이 래그타임, 부기우기와 빅밴드 스타일로 채우고 있다. 누가 볼링을 크로스오버 뮤지션이라고 못 박았단 말인가?


이번 ‘양수연의 재즈탐미’ 연재를 통해서 운이 좋으면 미국에서 재즈의 희망에 관한 사색들이 어떤 종착점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 글에는 재즈 이야기들이 모자이크처럼, 이를테면 공연이나 앨범 감상 소감 따위라든가 뮤지션들과의 인터뷰가 난데없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 에세이를 통해 재즈에 관한 나의 짧은 지식을 늘어놓는다던가 어떤 거창한 주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러분이 재즈 매스터들에 대한 무한 경외를 노골화하는 것에 반감을 갖지 않고 행간을 관통하는 아이러니들을 발견한다면 난 행복할 것 같다. 


지난 몇 주간 나는 훌륭한 재즈 아티스트들의 서로 다른 공연 두 개를 감상했다. 하나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열린 키스 자렛 트리오 공연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보스턴의 소극장 ‘릴리 패드’에서 열린 색소포니스트 제리 버곤지의 쿼텟 공연이었다. 개성이 강한 이 두 공연을 서로 비교할 것은 못되지만, 나의 변별된 느낌 만큼은 이러했다. 키쓰 자렛이 득음의 유희가 펼쳐지는 세상 너머 속 비현실적 나를 실감케 했다면, 제리 버곤지는 그의 독창성이라는 맹렬한 무기를 방패할 것인지 파고들 것인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는 역동적인 나를 체험케 했다. 키쓰 자렛이 자연법을 따르도록 정교하게 조각된 신의 창조물이라면 제리 버곤지는 자유와 희망을 논하는 입헌 국가의 수장과도 같았다. 나는 이 두 명의 재즈 매스터들에게 이 시대의 재즈의 길을 묻고 싶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음악으로 답을 할 터이지만 나의 미흡한 능력이 요구하건대 나는 내 눈앞에 보여질 인품과 적절한 언어의 뉘앙스가 필요했다. 교육자로서도 존경받는 버곤지는 그것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뮤지션이었다. 그렇다면 키쓰자렛은?


“음 2개만 잘 쳐도 좋겠다”

키쓰 자렛 트리오 결성 30주년 공연에서.


(키쓰 자렛 트리오의 30주년 기념 콘서트가 열리기 직전의 무대 모습)



12월 11일 카네기홀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키쓰 자렛 트리오 공연은 트리오 결성 3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지면에서 그들의 긴긴 30년 여정을 풀지 못하고 공연을 잠깐 스케치하고 마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자렛은 이날 말을 많이 했다. 지난 30년간 연주의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고, 팬들이 성원해준 탓에 30년 주택 모게지를 다 갚았다며 우스갯소리들도 늘어놓았다. 처음 공연장에 데리고 왔다는 손녀딸 둘을 위해 첫 곡은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캐럴로 시작했고 1, 2부에 걸쳐 Answer Me, My Love / Autumn Leaves / I Loves You Porgy / One for Majid / Fever / The Ballad of the Sad Young Men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 God Bless the Child 등의 순서로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연주했다. (자렛이 곡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키쓰 자렛의 팬으로서 어떻게 의미를 두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키쓰 자렛 트리오의 팬이라면 예전에도 연주되었던 이 스탠다드 곡들이 어떻게 카네기홀을 울렸을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매 곡들은 양질의 내용으로 충족되어 있었고 결핍을 찾기 어려웠다. 키쓰 자렛의 개성은 너무나 구체적인 것이어서 나는 심장에서부터 솟구치는 희열을 자근자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청중들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자렛이지만 이날 뉴욕에서는 관대해진 것일까. 2008년 보스턴 공연에서도 누군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무대를 박차고 나가서 다시 나오려 하지 않았던 그였다. 이날은 청중들의 태도 따위는 잊은 듯했다.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휴대폰 카메라도 개의치 않았고 곡을 막 끝내어 심호흡을 내뱉기도 전에 실없이 소리 지르는 청중에게도 고개를 획 돌려 관심의 되물음을 건네기도 했다. 많은 커플들이 상대방 어깨에 기대어 편안히 보는 바람에 객석 곳곳이 데이트 공연장처럼 V자 모양이었다. 그래, 재즈의 메카, 자유로운 뉴욕이니까.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되자 자렛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느릿느릿 말문을 열었다. 

“우리 점잖고 무뚝뚝한 게리 피콕이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더 마시고 왔는지 조금 흥분해서 저에게 훈계하더군요. 2부 공연에서는 청중들을 그냥 확 보내줘 버릴 연주를 하자고 하면서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나가서 음 2개만 잘 쳐도 좋겠다고 대답했죠”

이 말이 끝나고 연주한 곡이 가수 페기 리의 히트곡 “Fever”였다. 속웃음이 나왔다. Fever는 주 멜로딕 아이디어가 “피, 버!”하는 음 2개가 아니던가. 이 곡은 코드 시퀀스가 없는 지극히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졌고 다만 베이스 리프와 “피, 버” 음 두 개만이 생동감을 줄 뿐이다. 멜로디 자체는 밀가루 솔틴 크래커처럼 심드렁해서 가사가 들어간 파퓰러 음악이 되어야만 제법 맛있게 들린다. 자렛은 펑키한 리듬에 맞추어 변형 없이 Fever 멜로디를 연주했다. 자렛은 충실하게 스케일을 연습하는 학생처럼 화려한 기교 대신 마이너 팬터토닉 안에서 담백하고 또렷하게 솔로를 이어갔다. 나는 자렛의 지나치게 겸손한 ‘음 두 개(just two notes)’ 발언에서 그의 음을 향한 fever를 읽었다. 자렛이 왜 음 하나하나가 중요한 푸가적인 악곡이나 대위법적 악곡들에도 심혈을 기울이는지 나로 하여금 다시 성찰하게 했다. 키쓰 자렛은 공연 내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은 최근 Somewhere 앨범에 불완전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수록되기 바란다고 말했던, 진실한 자아를 보여주고자 하는 자렛의 열망과도 맞닿아진 메시지였다. 음 하나하나의 고유성을 탐미하고 기본을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뮤지션들의 영원한 숙제이며, 음결합의 이치는 다름아닌 자신의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제리 버곤지, “재즈는 진화했지만 청중은 진화하지 않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금빛 악기의 윤곽이 드러났다. 허름한 자주색 파커를 걸어 놓고 색소폰을 꺼내 들자 비로소 깊고 잘 생긴 제리 버곤지의 눈매가 도드라져 보였다. 적막의 한기를 깨고 몇 호흡 불어 사운드 체크를 끝낸 뒤에야 그의 얼굴에 여유가 번졌다. 10여 명의 청중이 릴리 패드 소극장에 모여 앉았다. 매주 월요일 밤, 드러머 루써 그레이(luther gray), 베이시스트 윌 슬래이터(Will Slater), 트럼펫터 필 그레나디어(Phil Grenadier) 등 젊은 유망주들이 그와 함께 한다. 진보의 임프로비제이션 현장에서 서로의 영혼을 탐색하는 이들이기에 몇 사람이 지켜보던 그 무대는 뜨거웠다. 키쓰 자렛이 청중들에게 개념을 요구한다면 제리 버곤지는 뮤지션들에게 개념을 요구한다. 제리 버곤지는 끊임없이 다양한 뮤지션들을 탐색해왔고 그의 주변에는 늘 젊고 유능한 뮤지션들이 그와 플레이 하기를 원했다. 그는 이 시대 위대한 교육자로서 늘 재즈의 미래를 고민하는 위치였다. 미국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이미 교과서나 다름없는 그의 이론서 <인사이드 임프로비제이션> 시리즈는 진보하는 재즈의 모든 것들이 차근차근 담겨있다. 제리 버곤지의 명성은 일찍이 데이브 브루백 쿼텟에서 활동했던 70년대 (73~75년, 79년~81년)에 전 세계에 알려졌고 2000년 이후에만 그는 스무 장에 가까운 앨범을 발표했다. 최근 앨범 Three For All, Shifting Gears, By Any Other Name은 버곤지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수작들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예술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감상 풍토에 대해 애석함을 드러냈다. 삶과 재즈는 진화되어 왔지만 청중은 진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예술혼이 안고 가야 할 일종의 비애였다. 공연이 끝난 후 그는 남루한 자주색 파커를 걸친 채 곧장 어둠의 거리로 사라졌다. 나는 잠시 꿈을 꾼 듯 하였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찬란한 광채의 금관(金管)악기였던가, 아니면 이 시대 예술의 영토를 고민하는 금관(金冠)을 쓴 고독한 왕이었던가. 

그와의 일문일답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소극장 릴리 패드의 무대에 선 제리 버곤지.)



-. 당신은 다양한 뮤지션들과 그룹을 만들어왔는데 지금 멤버들을 누구인가.

‘제리 버곤지 쿼텟’은 어디서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멤버가 달라진다. 고정 멤버는 없지만 드러머 안드레아 메첼루티(Andrea Michelutti), 베이시스트 데이브 산토로(Dave Santoro) 등 핵심 멤버가 있고 네 번째 멤버는 달라지는데 필 그레나디어와 같은 훌륭한 트럼펫터도 있고, 내년 3월에는 색소포니스트 딕 오츠(Dick Oatts)와도 연주할 예정이다. 난 앨범 <Shifting Gears>에서처럼 퀸텟 구성을 좋아한다. 나는 내 음악에 방향과 개성을 주기 위해서 최대한 많이 연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앨범 <Any Other Name> 매우 인상적이었다. Giant Steps를 비롯해 여러 스탠다드 곡들을 콘트라팩트로 작곡했는데 느낌이 정말 새롭다. 작곡할 때 어떤 점들은 염두에 두었나?

이런 스타일의 작법에서는 스탠다드 코드 체인지에 이따금 오리지널 튠과 아주 다른 강한 바이브와 멜로디를 작곡한다. 그러면 대단히 새로운 방식으로 임프로바이즈 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듣는 이들도 새롭고 신선하게 들리게 된다. Giant Steps가 원곡과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 당신의 앨범 상당수가 대부분 당신이 작곡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최근 앨범 Shifting Gears나 Any Other Name에는 트럼펫이 있는데 다른 혼의 멜로디도 작곡하는가? 이 두 앨범에 참여한 트럼펫터 필 그레나디어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필 그레나디어는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나디어와 형제임)

그렇다. 나는 작곡할 때 두 개의 혼(horn)을 위한 멜로디를 각각 작곡한다. 테마 부분 혼 하모니는 임프로바지잉이 아니라 작곡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테너 색소폰과 트럼펫 주자들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트럼펫터와 연주하는 것을 매우 즐긴다. 그래서 두 개의 혼을 위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트럼펫터 필 그라나디어는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사운드를 가진 대단히 훌륭한 뮤지션이고, 그와 연주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사람들이 곧잘 콜트레인과 당신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도 알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세대의 모든 뮤지션들이 존 콜트레인과 그의 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콜트레인과 나를 비교하는 사람 중에는 음악을 쉽게 쉽게 듣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즉, 내 음악을 제대로 듣지 않고 그냥 자기가 알고 익숙한 뮤지션과 비슷하다고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내 음악을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내 세계의 고유한 아이디어와 감정을 가지고 연주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 연주할 때 당신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음악적으로 영감을 받는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연주하고 있는 밴드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는다. 물론, 연주자들은 자기 악기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연주 홀의 어쿠스틱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모든 연주공간은 다르다. 이것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다. 사운드 엔지니어들이야말로 뮤지션들의 유일한 적이라고 생각한다.


-. 재즈의 지난 역사를 보았을 때 재즈는 진화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창의적인 음악 작품들은 난해해서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경향이 있다. 재즈가 가야 하는 길이 있는 것인가?

삶과 모든 예술이 진화하듯 재즈도 진화했지만, 청중만큼은 진화하지 않았다. 예술을 써포트할 돈이 없는데 어떻게 청중이 진화될 수 있겠나? 청중도 교육되어야 진화가 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아티스트는 뭘 해야 하나? 아메리칸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알아듣기 쉬운 음악을 해야 하나? 청중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때 나는 속으로 웃는다. 그들이 어떻게 이 우주, 이 음악을 이해하겠는가? 우주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것이고 본능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수준 낮은 마인드로 고차원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아티스트 수준으로 마인드를 끌어올려야 한다.


당신은 보스턴에서 태어났고 현재 보스턴에 정착해 있는데 이곳은 재즈 환경은 어떠한가.

나는 뉴욕에서 5년간 살았고 77년 내가 태어난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데이브 브루백과 1년에 200회를 투어했기 때문에 사는 곳이 별 의미가 없었다. 보스턴은 학생 타운이다. 많은 학생이 음대를 졸업하고 그들의 상당수가 뉴욕이라는 재즈의 진짜 세계로 떠난다. 보스턴은 현실이 아니다. 학생들은 그들만의 거품 생활을 할 뿐이다. 학교에서 인정받는 것과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졸업 후 프로 세계로 뛰어들어야 현실이 보인다.


최근 들어 유럽의 재즈 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사람들은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예술성 있고 독특한 스타일의 재즈도 각광받는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유럽에서 예술이 더 각광받는다는 것에 동의한다. 청중의 질도 더 좋다. 일반인들은 뮤지엄에 가기를 즐기고 클래식과 재즈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왜? 그들의 교육에 이런 부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정부 차원에서 예술을 적극 지원해주는 않는가? 미국은 좋은 무기만 잘 만들고 있다.


-. 당신은 교육자로서도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뮤지션들이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데, 재즈 뮤지션들이 해주고 싶은 말은?

너 자신을 믿어라. 네가 숨만 쉬어도 의미 있다. 음악이 곧 마스터이고 우리는 모두 학생이다. 음악은 너무나 큰 존재이다. 음악은 우주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신성한 삶의 원칙을 공부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진심으로 대해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또 상상해라. 예술은 많은 희생이 따른다. 인생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 다른 것을 해서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1월에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스튜디오에서 7 Rays를 녹음할 것이다. 이 곡은 하나의 테마로 연결되는 여러 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또 3월에는 딕 오츠와 "A Granny Winner”라는 앨범이 새번트 레코드(Savant records)에서 발매될 예정이고, 2015년에는 Riggamaroll의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제리 버곤지는 이 지역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롤 모델이 되왔다. 트럼펫 유망주 필 그라네디어와 함께.)


(‘릴리 패드’는 보스턴에 몇 안되는 예술 전문 소극장으로 현관문을 열면 바로 무대와 직면한다.)


여러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새로운 멜로디 하모디 구성으로 편곡한 앨범 By Any Other Name, 2012, Savant Records.


드라마틱한 솔로의 진수를 보여 주는 수작, Shifting Gears, 2012, Savant Records.

posted by jazzl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