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 교육강좌

My Library 2014.12.11 13:55

부도덕 교육 강좌, 미사마 유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소담출판사 -


미사마 유키오(みしま ゆきお). 미의 집착을 세세하게 묘사했던 ‘금각사'(1956년), 일상성을 뛰어넘는 초절적인 에로티즘을 보여준 '파도소리'(1954년) 등 그의 작품에 어린 탐미적 광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반면, 1958년 출간된 에세이집 '부도덕 교육 강좌'에서는 또 다른 면모의 미사마 유키오를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가 일본의 우익이고 사무라이식 할복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움(혹은 거부감)은 일단 제쳐두고.

차례는 이런 식이다. 모르는 남자와도 술집에 갈 수 있다 / 선생을 무시하라, 속으로만 / 남에게 폐를 끼치고 죽어라 / 거짓말을 많이 하라 / 약자를 괴롭혀라 / 약속을 지키지 마라 / 악덕을 많이 쌓아라…등.

물론, 이런류의 역설적 어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은 뻔하지 않다.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두터운 분량, 거론되는 소재들은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으며 작가의 아이디어가 번득인다. 50년 전 작가의 언어가 이렇게 재미있고 공감될 때가. 즐겁게 읽을 수 있고 그만큼 마음을 울린다.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에서는 소년들에게 도둑질을 장려했다고 한다. 이미 알려진 대로 스파르타는 무를 숭상하는 나라였으므로, 도둑질이 병사들에게 민첩성을 단련하는 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쟁이라는 국가적 도둑질이 인정된다면 개인 생활에 있어서의 도둑질도 인정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생각은 어쨌든 이치에 맞는 것이었다.

어떤 학설에 의하면 예로부터 각 민족의 도덕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고, 크게 죄의 도덕과 수치의 도덕으로 나뉜다고 한다. 전자의 대표적 예가 기독교적 도덕으로, 죄의식이나 양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도덕을 규제하고 있다. 후자의 대표적 예가 바로 그리스형 도덕이며, 수치와 체면 등을 중시하는 그들은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중략) 요즈음 도덕 교육이니 뭐니 떠들어대고들 있지만, 나는 선의 개념을 바로잡기 전에 악의 개념부터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사회가 처한 위협은 악의 개념이 무너진 데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 '도둑의 효용에 대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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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은 나의 영원한 주제이다. '내 입에 들어갈 빵을 타자에게 줌'이 레비나스식의 윤리학이라고 할 때 나에게 여성성은 곧 윤리학이며 타자(남편,아들)가 쉴 수 있는 '집'이야 말로 타자에게 존재의 문을 여는 중요한 공간으로, 그것을 돌보는 것을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비판받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내 식의 페미니즘이고 그것이 또한 다른 방식의 페미니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해에 최초로 번역되어 나온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은 1903년에 발표되었고 한 마디로 여성에 대한 (반 여성) 철학적 분석이다. 이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끝내는 것은 페미니스트로서 괴로운 일이었다. 바이닝거를 비트겐슈타인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그가 바이닝거를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 유대인 정서를 담은 이 책은 히틀러에게도 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다. 23세 천재 바이닝거는 이 책을 발표한 직후 자살했다. 110년만에 처음 번역된 이 책은 괴롭지만 대단히 의미있는 책이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특히 페미니스트라면 꼭 읽어볼 만하다.


바이닝거는 이상적인 남성(M)과 이상적인 여성성(W)으로 구분한 뒤 남성의 특성을 영혼(천재성)과 도덕으로 보았고, 여성의 특성을 감성, 섹슈얼리티, 물질로 보았다. 즉, 여성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도덕적 개념이 아예 없으며 창조력과 정신적인 기준이 결여되었다고 본 것이다.

바이닝거는 '양성' 개념에 주목하며 인간은 자웅동체 본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고 연구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바이닝거는 인간은 원래 성향이 양성적인데 인간이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 중 어느 요소가 더 많은지에 따라 남성, 또는 여성으로 불린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완전한 남성(M)과 완전한 여성(W)는 서로 부족한 보충물(sexuelles Komplement)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보는 것이다. 자기에게 부족한 보충물을 보유한 이성에게 강한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닝거는 남성이 여성의 요소(W)를 없애 버려야 하듯, 여성도 여성의 요소(W)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진정 해방되려면 여성은 M(남성)되어 가기 정도에 달려있다. 바이닝거에게 여성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이며 여성은 무일 뿐이다.

바이닝거는 이러한 관점을 반유대주의에 연결시킨다. 그는 유대인이야 말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유대인은 여성처럼 섹스, 육체, 물질일 뿐이며 정신, 영혼, 도덕이 없고 성적 금욕 생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다면, 인간, 즉, 남성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싸워 유대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닝거에게 세계란 새로운 남성성 위에 세워져야 할 새로운 인류로 구성되는 세계이다. 

바이닝거가 이 책에서 주장했던 반여성, 반유대주의적 요소는 극단적인 면이 많지만 그가 내세웠던 이상적인 남성 M과 이상적인 여성 W는 현실에서 존재하고 있지 않음을 인정한다. 따라서 인간은 기억, 논리, 윤리, 자아, 천재성, 불명의 필요성(영혼)의 관계에서, 내가 어느 정도 'M적 요소'와 'W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지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이닝거는 자신의 시대가 "어떤 시대보다 가장 유대적일뿐만 아니라 가장 여성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 시대를 "쉽게 믿는 무정부주의 시대이자 국가나 법에 대한 의미도 없는 시대"라고 불렀다. 

히틀러는 바이닝거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지만 바이닝거 그 자신이 유대인이었기에 나치 정권에서 이 책은 금서가 되었다. 히틀러는 '참모본부에서의 독백'이라는 책에서 "유대인은 다른 민족들이 해체되는 것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자살한 오토 바이닝거 말고는, 인정할 만한 유대인이 없다"라고 말했다. 

오토 바이닝거는 자살한 뒤에 곧 명성을 얻었다. 그의 명성은 전 유럽에 퍼져서 그는 전설이 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테제들은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으며 그의 반유대주의는 '새로운 여성'의 근대적 성격으로 미화되었을뿐만 아니라 여성 혐오주의의 기초가 될 정도로 영향이 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 초판본이 600부 팔리는데 9년이 걸린 것에 비해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은 그 때 이미 11판이 나왔으며 1932년까지 28쇄가 인쇄되었다고 한다.

(일부, 옮긴이 임우영 씨의 해설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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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턴 뮤지엄에서 전시되고 있는 신라 특별전에 다녀왔다. "황금의 나라, 신라"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회는 15년간의 준비 끝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단히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국보 10점, 보물 14점을 포함해서 132점의 신라 미술품이 전시되었는데, 미국에서 신라 미술이 주제가 된 최초의 전시라고 한다.  중앙 박물관에서 보았던 국보 제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비롯한 국보들을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깊었다. 금동미를보살반가사유상은 5000만 달러의 보험을 얻은 뒤 이곳에 왔다고 한다.

사실, 이번 전시회를 리마인드시켜준 것은 삼성의 옥외 광고였다. 우리 가족은 다른 일정이 있어 맨하탄 타임스퀘어 근방 호텔에서 지냈는데, 창문 너머 타임스퀘어 대형 삼성 전용 광고판에서 이 전시회를 홍보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뮤지엄 방문 일정을 잡을 수가 있었다. 타임스퀘어를 상징하는 전광판에서 신라 유물 전시 광고가 수 분 간격으로 나올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메트로폴리탄 신라 특별전 입구


입장하자 맨 먼저 보이는 화려한 신라의 왕릉 사진.




Buddha. Korea, Silla kingdom, late 8th–9th century. Said to be from Bowonsa Temple site, Seosan, South Chungcheong province. Cast iron; H. 59 1/8 in. (150 cm) National Museum of Korea




Crown. Korea, Silla kingdom, second half of 5th century. Excavated from the north mound of Hwangnam Daechong Tomb. Gold and jade; H. 10 3/4 in. (27.3 cm). Gyeongju National Museum, Korea, National Treasure 191



Bodhisattva in pensive pose, probably Maitreya (Korean: Mireuk). Korea, Silla kingdom, late 6th–early 7th century. Gilt bronze; H. 36 7/8 in. (93.5 cm). National Museum of Korea, National Treasure 83



Belt with pendant ornaments. Korea, Silla kingdom, second half of 5th century. Excavated from the north mound of Hwangnam Daechong Tomb. Gold; L. 47 1/4 in. (120 cm) Gyeongju National Museum, Korea, National Treasure 192



Female figurine. Korea, Silla kingdom, 7th century. Excavated from Hwangseong-dong Tomb. Earthenware with incised decoration; H. 6 1/2 in. (16.5 cm). Gyeongju National Museum, Korea







NYTIMES.COM  
ART REVIEW 

A Mysterious Realm of Exquisite Objects

Silla: Korea’s Golden Kingdom,’ at the Metropolitan Museum

A Mysterious Realm of Exquisite Objects

Here’s a good question for “Jeopardy!”: One of the world’s longest-running dynasties, it emerged around 57 B.C. and grew to dominate the Korean Peninsula in the seventh and eighth centuries before meeting its demise in A.D. 935.

The answer: What was Silla?

If the name Silla is unfamiliar, it might be partly because no major museum exhibition about this kingdom’s art, craft and culture has been mounted in the West until now. Silla: Korea’s Golden Kingdom,”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presents more than 130 objects dating from A.D. 400 to around 800, organized by Soyoung Lee, associate curator, and Denise Leidy, curator, in the Met’s Asian art department, with colleague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n Seoul and the Gyeongju National Museum.

The first of the show’s three sections presents small objects excavated from fifth- and sixth-century royal tombs buried under enormous earthen mounds in Silla’s capital city, Gyeongju, near the peninsula’s southeastern coast. It was customary to put valuables in tombs to provide the dead with resources in the afterlife. The jewelry, pottery, metal vessels and weapons here from early Silla belong to a culture based in shamanism and influenced by the arts of horse-riding tribes of the Eurasian steppes. Most conspicuous are pieces of delicate, gleaming gold jewelry, including dangling earrings made of links, rings and geometric and organic forms. There are also necklaces made of glass beads, another favorite material in Silla jewelry.

The pièce de résistance is a crown in the form of a gold headband with attached, upright, branchlike elements cut from thin gold sheets. Many small, comma-shaped pieces of jade are attached by fine wires, and chains of spangles and leaf shapes hang down from the headband, all of which adds to its appearance of gaudy opulence. The crown is accompanied by a belt of linked squares of flattened gold from which dangle gold charms in the shapes of a fish, a knife, tweezers and a medicine bottle. Like a number of other works in the exhibition, the crown and the belt have been designated Korean National Treasures.

The pottery is striking for its simplified form, all-gray surface and abstract decoration consisting of finely incised lines and geometric shapes. One enormous bottle has the shape of a bubble about two feet in diameter. There’s not a lot of representational imagery in the first section, but a delightful little stoneware vessel in the form of a dragon-tortoise hybrid from the early sixth century attests to a lively mythic imagination. So do several eighth-century sculptures of zodiac figures in the show’s second part, including a wonderful pair of sword-wielding deities with human bodies and animal heads (a horse’s and a boar’s) crisply carved in high relief from cutting-board-size slabs of agalmatolite.

Many objects found in the tombs were evidently not of local origin. The second section of the exhibition presents glassware believed to have come from Rome and China and an extraordinary dagger and sheath resplendently decorated in curvy gold tracery inlaid with colored glass and garnet. This luxurious fifth-century weapon is thought have hailed from the Black Sea area or Central Asia. Imported artifacts like these bespeak a cosmopolitan society whose trade routes reached far and wide in the known world.

Nothing in the exhibition’s first two parts prepares you for the third section, which finds Silla galvanized and unified by a new and powerful import: Buddhism, which became the kingdom’s state religion between 527 and 535. One of the most captivating pieces here is a three-foot-high sculpture of a young, lithe bodhisattva made of gilded bronze. Smiling sweetly, he nods his head and raises the fingers of his right hand to touch his cheek while resting his right foot on the thigh of his left leg. This sculpture — also a Korean National Treasure — is jaw-droppingly beautiful, and it exudes an infectious serenity.

The last piece in the exhibition, a massive, larger-than-life Buddha seated in the lotus position, made of cast iron in the late eighth or early ninth century, is equally compelling. But in contrast to the youthful bodhisattva, this one seems ancient, a monumental embodiment of timeless cosmic consciousness.

The works in this section, including many smaller representations of Buddhist divinities in stone and gold and other metals, show that, along with Buddhist beliefs, came what seems a suddenly enhanced skill in figurative representation among Silla’s artisans. They obviously learned from Indian and Chinese examples, but the leap from the comparatively primitive works to these pieces of world-class sophistication is dumbfounding.

Silla’s embrace of Buddhism also brought about a change in its burial practices. No longer were the dead interred with valuable works of art for the afterlife. Under Buddhism, art would be for living beings, and so it would have a large public dimension. And since gold was used profusely in Silla’s Buddhist public art, the nation acquired the moniker “the golden kingdom.”

Many, if not most, of the greatest works of Sillan art are site-specific and unmovable. One of the most prized is the Seokguram Grotto, an underground, dome-ceilinged room occupied by a colossal seated Buddha all made of granite. Here, a fascinating short video gives a tour of it and shows, by digital animation, how it was put together. After seeing it, you might experience an irresistible urge to book a trip to Gyeongju.

Silla: Korea’s Golden Kingdom” runs through Feb. 23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212-535-7710, met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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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26 April 1889 – 29 April 1951)


지난 가을에 구입했던 비트겐슈타인 전집을 끝내었다. 끝내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글자들을 읽었다는 말이 될 것이지만 그의 사상을 모두 이해하고 장악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예전에 알고 있던 부분은 명확해졌고 애매모호하다고 여겨졌던 부분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나로서는 장악됨이 까다로운 사람이다. 

비트겐슈타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천재, 우울함, 완고함 등이다. 나는 그의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대학 시절 꽤나 열심히 그의 개론서들을 읽었다. 전공 과목 중에 '분석 철학'을 몹시 좋아했는데, 그 수업 시간이 되면 너무나 흥분이 되어서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비트겐슈타인의 얘기가 나오면 맨 앞에 앉아서 숨을 죽이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책들을 늘어놓고 복습을 했다. 나의 학습 방법은 거미가 집실을 방사하듯 참고 서적들을 토대로 의문-해결-의문-해결-미완-정지-다른 접근-해결 이런 식으로 뻗어나가는 방식이었다. 비트겐슈타인 덕분에 나는 관념적인 철학에 거리를 두게 되었는데, 사실 이 방법이 반드시 옳다고만 볼 수는 없지만 나로서는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철학적 사고가 진정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었고 형이상학이라는 무거운 장식물을 벗어던지는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논리학은 비트겐슈타인 공부에 큰 도움을 주었다. 지금도 잊지 못했던 일은 논리학 수업의 경우 제 딴에는 교수님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는 핑계로 수업을 자주 빠졌다. 뒤늦게 시험 공부를 위해서 논리학 책을 독학할 수 밖에 없었는데, 세상에서 이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학문이 있을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울 지경이었다.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했던 엉망 학생이 시험 직전의 미친듯한 열정의 공부로 최고의 성적을 받았던 기억. 지금도 증보판 논리학 책을 종종 읽어보곤 한다.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보통, 논고)>는 모든 철학은 언어 비판이라고 보는 시각에서 현대 철학의 언어적 전환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책으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문제들은 우리의 언어 논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철학은 언어의 논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통해, 발할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된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한 사물의 집합이 사실을 이루지 않는다는 문구로 논고를 시작한다 .(p.19-20) 

그리고 그는 사실을 구성하는 '사물'을 사실로부터 끄집어냄으로써 가능성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1*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1.1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

1.13 논리적 공간 속의 사실들이 세계이다.

1.2 세계는 사실들로 나뉜다.


그리고 그림 이론(Picture Theory) 25~27p -요약


2.1 우리는 우리에게 사실들의 그림들을 그린다.
2.11 그림은 논리적 공간 속의 상황, 즉 사태들의 존립과 비존립을 표상한다.
2.12 그림은 현실의 모형이다.
2.15 그림의 요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를 맺고있다는 것은 실물들이 서로 그렇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표상한다. 그림 요소들의 이러한 연관은 그림의 구조라고 불리며, 그 구조의 가능성은 그림의 모사 형식이라고 불린다.
2.1514 모사 관계는 그림의 요소들과 실물들과의 짝짓기들로 이루어진다.
2.17 그림이 현실을 그림의 방식으로-올바르게 또는 그르게-모사할 수 있기 위해 현실과 공유해야 하는 것이 그림의 모사형식이다.
2.18 모든 그림이, 그 형식이 어떠하건, 아무튼 현실을-올바르게 또는 그르게-모사할 수 있기 위해 현실과 공유해야 하는 것은 논리적 형식, 즉 현실의 형식이다.
2.2 그림은 모사된 것과 모사의 논리적 형식을 공유한다.
2.223 그림이 참인지 거짓인지 인식하려면, 우리는 그것을 현실과 비교해야 한다.
2.224 오로지 그림만으로는 그것이 참인지 그것인지 인식할 수 없다. 
2.225 선천적으로 참인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는 세계에 대한 그림이며, 그러한 한에서 언어는 의미를 갖는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응 방식은 이러하다.
세계-언어
사태(사실)-문장(명제)
대상-이름


논고의 이 마지막 구절은 유명하고,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6.53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자연 과학의 명제들---그러므로 철학과는 아무 상관없는 어떤 것--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다른 어떤 사람이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할 때는 언제나, 그가 그의 명제들 속에 있는 어떤 기호들에다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였음을 입증해 주는 것, --이것이 본래 철학의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이 방법은 그 다른 사람에겐 불만족스럽겠지만--그는 우리가 그에게 철학을 가르쳐 주었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으리라--이 방법이 유일하게 엄격히 올바른 방법이다.

6.54 나의 명제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의해서 하나의 주해 작업이다. 즉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만일 그가 나의 명제들을 통해--나의 명제들을 딛고서--나의 명제들을 넘어 올라간다면, 그는 결국 나의 명제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는 말하자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 그는 이 명제들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세계를 올바로 본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영철 부산대 철학과 교수가 완역한 이 전집은 철학도들에게 대단히 유용할 것이라 믿는다. 이영철 교수의 완역본을 토대로 기회가 될 때 마다 틈틈히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을 소개해보려한다.


선집 전체 목록

1.《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1921) 

2.《소품집》

3.《청색 책·갈색 책 The Blue and Brown Books》(1958)

4.《철학적 탐구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1953)

5.《쪽지 Zettel》(1967)

6.《확실성에 관하여 Über Gewißheit》(1969)

7.《문화와 가치Vermischte Bemerkungen/Culture and Value》(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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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간결하면서, 명료하고 깊이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시는 보편성을 띄며 신비롭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시는 그 어떤 시보다 혁신적입니다.

그녀는 속물을 싫어했고,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을 연구했습니다.

그녀의 시는 나에게 순수한 언어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고 많은 영감을 줍니다.

간결한 김소월의 시처럼 맛있습니다.

나에겐 그 이상으로 맛있을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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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My Library 2013.03.06 14:44

                                                                    


We dare not trust our wit for making our house pleasant to our friend, and so we buy ice-creams. 

재치만으로 우리 집에 온 친구를 즐겁게 할수있을 것이라 믿어서는 안되기에, 아이스크림을 준비한다.(Ralph Waldo Emerson)


저는 애머슨의 위트있는 이 문장이 좋습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은 좋은 맛과 소박함과 순수함을 표상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을 대하는 자의 재치에 더해진 아이스크림은 얼마나 맛이 좋을 것이며,

그 재치 또한 얼마나 사랑스러울 것인가요.


내 집을 찾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 겸손과 예의가 묻어있는 이 문장도 함께 떠올립니다.

소박하지만 '맛'이라는 감각을 공유함으로써 관계는 더욱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Kinfolk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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