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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재즈의 ‘틈’으로서의 에릭 돌피, 앨범 <뮤지컬 프로펫> 에릭 돌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허망하게 죽었다. 미국을 등지고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인정받을 기회를 찾아 떠났던 유럽에 온 지 두 달 만에, 그것도 베를린 공연 가운데. 본인도 몰랐다고 한다. 의사가 피검사만 했어도 당뇨인 것을 알았을 텐데. 마약과는 거리가 먼 에릭 돌피를 흑인이라는 이유로 지레짐작 마약 성분을 떨어뜨리는 엉뚱한 약을 줬다는 얘기가 있다. 뉴욕에 있을 때처럼 성실하게 돌피는 하루하루 음악적 목표를 이룩해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돌피는 유럽으로 떠나기 전, 자신의 짐을 슈트케이스에 담아 친구에게 보관을 부탁했다. 친구 헤일 스미스 부부는 돌피가 사망한 후 슈트케이스를 열었다. 그 슈트케이스에는 에릭 돌피의 레코딩과 악보들이 들어있었다. 헤일 스미스 부부는 그가 남긴 슈트케이스 유품을 에릭.. 더보기
죽은 싱어의 사회 -비련의 노래를 그리워하며 복잡한 전자 회로가 귀로 진입하는 듯 난해한 재즈가 있는가 하면, 러스틱한 티포트의 내음처럼 노스탤지어의 재즈가 있는가 하면,봄날 아침 여인의 향기처럼 관능적인 재즈가 있는가 하면....... 만일 당신이 낡은 레코드 속 옛 여가수가 바스르르 떨며 부르는 노래를 듣기 소망한다면, 본인을 죽은 싱어의 사회의 이탈자로 자각하길 나는 바란다. 만일 당신이 어느 날 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그 바스르르 떨리는 곡조와 애절한 노랫말에 몸을 한껏 맡기기를 원한다면, 죽은 싱어의 사회 이탈자로서 본인을 대견하게 생각하길 나는 바란다. 옛가수의 음성처럼 슬픈 진동과 슬픔의 노래들은 청승맞고 진부한 것으로 격하된 세상. 유행과 첨단기술과 피상적 기교를 앞세운 싱어들이 주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아직도 낡은 레코드판 앞에.. 더보기
할렘의 재즈 현자, 이기준. "빈둥거림의 미학" 글: 양수연 (재즈 비평가) - 재즈피플 2018년 11월호 맨해튼에 오면 저녁은 거의 일정하다. 블루노트 혹은 빌리지 뱅가드, 재즈 스탠다드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블루노트에서 정형화된 어메리칸 메뉴로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무대를 바라보는 일. 저녁 공연이 끝나면 스몰스에서 밤의 충만함을 이어가거나 반대편 업타운으로 달려가 스모키 재즈 클럽에 들른다. 연주자를 확인하고 그들이 내 감성과 어떻게 화학작용을 할 것인지 미리 가늠하는 일은 항상 설렌다. 시장기를 느끼면서 레스토랑 메뉴를 읽는 것처럼 내 뇌가 먼저 음악의 맛과 멋을 감지한다. 재즈 클럽은 늘 혼자 다녔다. 재즈를 같이 들을 사람을 찾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음악과 내가 직접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그래서 혼자서도 충분하고 온전하다.. 더보기
(앨범 리뷰) 빌 프리셀 2018년 신작 <Music Is> 빌 프리셀, (OKeh, 2018) 평점 ★★★★★짧은 평: 기법과 상상력의 집약체. 밀도 높은 단상으로 채운 솔로 기타의 걸작. 빌 프리셀은 솔로 앨범을 '도전 과제'라고 말해왔다. 독창적인 기법으로 채워진 음악적 시선이 확장되어 정점에 이르는 곳.그걸 청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빌 프리셀에겐 솔로 앨범이다.그리고 "음악은 혼자서 하는 여행"이라고 말한다.새 앨범 타이틀 가 말해주듯 그가 말하는 음악, 그가 생각하는 음악 본질을 이번 앨범에 담아냈다. 빌 프리셀의 오리지널로 채워진 16곡, 매 곡의 러닝 타임은 평균 3분 선으로 짧다.가장 긴 곡은 Rambler인데(1984년 동명앨범 명이기도) 이것도 6분 33초에 불과하다.우리가 '프리 임프로비제이션' 솔로 연주자에게서 목격하는 길고 서사적인 솔로와는.. 더보기
어느 나른한 오후, 재즈 스탠다드를 듣는 특별한 방법. 어느 나른한 오후, 재즈 스탠다드를 듣는 특별한 방법.“나의 어리석은 마음(My Foolish Heart)”의 피아니시즘. 1961년 6월 25일 일요일 오후의 맨해튼 빌리지 뱅가드. 빌 에반스, 스캇 라파로, 폴 모션 - 세 명의 젊은이, 빌 에반스 트리오는 어둡고 담배 연기 뿌연 지하의 이곳에서 다섯 세트에 달하는 긴 하루를 시작한다. 첫 번째 세트, Gloria’s Step, Alice in Wonderland에 이어 세 번째로 연주된 곡은 빅터 영 작곡, 네드 워싱턴 작사의 ‘나의 어리석은 마음(My Foolish Heart)’. 보통 발라드는 분당 60~70비트로 연주되곤 하는데 빌 에반스는 ‘나의 어리석은 마음’을 보통과 달리 분당 50비트로 훨씬 느리게 연주했다. 이날 몇 안 되는 오후 관객.. 더보기
재즈, 에로티시즘을 향하여 (재즈를 왜 들어야 하는가 2 -나의 경우) 나에게 음악은, 때때로 폭력이다. 거리에서, 마켓에서, 카페에서, 공원에서, 원치 않은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을 때, 나는 조르쥬 바따이유가 말했던 비천함(abjection)에 몸을 떤다. 나는 그 음악을 거부하기 위해 감각의 환각을 동원한다. 그러나 동시에 내 귀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한편으로 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발화하는 나를 느낀다. 또한, 동시에 내 귀의 사용가치가 쾌락을 향한 감각적 확신임을 느끼면서 섬뜩해진다. 사적인 공간을 벗어난 내 쾌락의 욕망이 불손하여 다시 비천함을 느낀다. 공공장소에서 나의 쾌락은 배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를 인식하는 만큼 특정 부분을 과장되게 그리는 아이처럼 내가 그리는 그림 역시 커다란 귀를 갖은 무언가일 것이다. 나에게 귀는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내가 공.. 더보기
영원한 카리스마에게 시련은 없다. 찰스 밍거스. 영원한 카리스마에게 시련은 없다. 찰스 밍거스.(양수연의 재즈탐미 -재즈피플 2016년 5월호) 뉴햄프셔로 향하는 보스턴 북쪽 1번 도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올법한 투박한 시골 정경이 펼쳐진다. 한적한 도로에 띄엄띄엄 서 있는 백 년 넘은 집들은 목공소, 골동품 가게, 잡화점으로 채워져 있다. 누가 찾아올까 싶은 한적한 곳이지만 반세기 전엔 유명한 재즈 클럽이 있었다. 레니 소고로프가 운영했던 레니스 언 더 턴파이크(Lennie’s-on-the-Turnpike). 지금의 풍경처럼 허름하고 낡은 재즈 클럽이었다. 천장이 주저앉을 듯 낡았고 비좁고 여자 화장실도 없어서 니나 사이먼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그러나 재즈의 인기가 록으로 대체된 그 시절에 내로라하는 뉴욕의 재즈 뮤지션들은 이 먼 곳까지 올.. 더보기
평생 사랑에 빠진 남자, 폴 블레이를 찬미하며 월간 재즈피플 -2016년 2월호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 중 하나이다. 나는 그 작은 마을의 구석구석을 제법 잘 알고 있다. 아스라한 노을이 펼쳐진 해변에 누워 서핑하는 사람들을 하릴없이 바라보기도 했고, 오순도순 모인 빅토리아풍 집 정경이 펼쳐진 카페에서 우유 맛 나는 북태평양 굴의 비릿함에 취하기도 했다. 폴 블레이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소살리토가 떠올랐다. 몇해 전 나는 그곳에서 폴 블레이의 음악에 취해있었다. 소살리토에선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포근하고 나른한 느낌이 온몸을 감싼다. 아마 그때 들었던 음악에 54년 블레이 데뷔 앨범 [Introducing Paul Bley]도 있었을 것이다. 찰스 밍거스와 아트 블레이키, 특히 폴의 피아노가 무척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