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전자 회로가 귀로 진입하는 듯 난해한 재즈가 있는가 하면,


러스틱한 티포트의 내음처럼 노스탤지어의 재즈가 있는가 하면,

봄날 아침 여인의 향기처럼 관능적인 재즈가 있는가 하면.......


만일 당신이 낡은 레코드 속 옛 여가수가 바스르르 떨며 부르는 노래를 듣기 소망한다면, 본인을 죽은 싱어의 사회의 이탈자로 자각하길 나는 바란다. 만일 당신이 어느 날 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그 바스르르 떨리는 곡조와 애절한 노랫말에 몸을 한껏 맡기기를 원한다면, 죽은 싱어의 사회 이탈자로서 본인을 대견하게 생각하길 나는 바란다. 옛가수의 음성처럼 슬픈 진동과 슬픔의 노래들은 청승맞고 진부한 것으로 격하된 세상. 유행과 첨단기술과 피상적 기교를 앞세운 싱어들이 주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아직도 낡은 레코드판 앞에서 숙연해지는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 역시 그 슬픈 떨림의 노래들을 듣기 위해 낡은 레코드를 꺼내곤 한다. 바디 앤 소울(Body and Soul)은 언제나 나를 유혹하는 곡이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명연주를 남겼지만, 나는 리비 홀맨의 ‘바디 앤 소울’을 특별히 생각한다. 그녀는 1930년 미국에서 처음 ‘바디 앤 소울’을 부른 가수다. 몸과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가사는 무대 위 리비 홀맨의 실크 나이트 가운 속으로 파고들듯 애절하기만 하다. ‘바디’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당시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금지되기도 했던, 육체적 사랑과 정신적 사랑을 동시에 원한다는 갈망의 노래이다. 


1920대~30년대에 그렇게 바스르르 떨며 울듯 노래하며 사랑을 갈망하고 실연의 슬픔을 불렀던 가수, 즉, 리비 홀맨, 루쓰 에팅, 헬렌 모간과 같은 가수를 ‘토치 싱어(torch singer)’라고 한다. 그들은 블루스의 감성을 빌렸지만, 대부분 백인 여인들이었고 유대인이었다. 그녀들은 갱들이 운영하는 뉴욕의 나이트클럽이나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인기를 누렸다. 몸에 붙어 흐르는 얇은 드레스를 입고 넋 빠진 듯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그녀들의 낡은 사진은 지금도 나를 사로잡는다. 그녀들은 배우이자 가수이자 댄서이기도 했고 아름다운 몸과 목소리를 가진 여인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재즈 스탠다드들이 그런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토치송들이다. "Can't Help Lovin' Dat Man" (1927), "Lili Marlene" (1938), "One for My Baby" (1943), "Cry Me a River" (1953), The Man That Got Away (1954), "Here's That Rainy Day" (1959), Don’t Explain(1946), Glad to be Unhappy(1936), Just A Friend(1931), The Man I Love(1924), Stormy Weather(1933), Night And Day(1932), Skylark (1941), Angel Eyes(1946)……


사랑에 대한 슬픔은 사랑에 대한 찬미와 다른 말이 아니다. 토치송은 사랑이 얼마나 고귀하고 소중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음악이다. 그 중심에는 치명적인 로맨티시즘이 있다. 보답이 없어도 좋으니 떠나지만 말아 달라는 그 구차함, 사랑 앞에서 무방비가 될 수밖에 없는 상처받기 쉬운 존재의 간절함을 그 백인 여인들이 아니었으면 자본과 물질의 단맛 쓴맛을 톡톡히 맛보고 있던 그 시대에 누가 주류 미국인들의 애간장을 단숨에 녹일 수 있었을 것인가? 이후의 애니타 오데이, 페기 리, 줄리 런던이 국민 가수로서 로맨티시즘의 한 자락을 꿰어잡을 수 있었던 것도 초기의 토치 싱어들의 공로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토치 싱어계의 숨은 여왕은 따로 있다. 백인이 아니었다. 어둡고 탁한 세계에서 엄청난 감성으로 토치송을 업그레이드시킨 그 여인. 토치송을 재즈 스탠다드로 만드는데 기여한 여인. 그녀가 없었더라면…….빌리 홀리데이,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던 세상은 떠올리기 싫다. 토치송은 그녀의 부름으로 인해 더욱 깊고 고결해졌다. 그녀가 부른 Mean To Me는 성숙하고 깊어서 그녀가 스물 둘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게 한다. 루쓰 에팅이 1928년 처음 불렀던 Love me or Leave me가 그저 가련한 여인의 이미지라면 홀리데이는 이별을 통보받기 직전 이제야 속내를 꺼내 보이는 냥 비장하기만 하다.


(1930년, '바디 앤 소울'을 처음 노래한 리비 홀맨)


비련의 노래들은 결백을 주장한다.


비련의 노래들은 결백을 주장한다. 노래의 이면에는 내가 희생자임을 주장한다. 삶의 고통 한복판에 놓여왔던 홀리데이가 평생을 두고 하고 싶었던 말이 그것인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떨림 하나하나는 영혼을 울린다. 그녀의 노래는 문장처럼 음으로 발언하고 회화처럼 풍경을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유산은 로맨티시즘의 패러다임을 배우라는 것이다. 비애는 창법으로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삶을 다해 통째로 그 비애를 받아들이고 맞서야 한다. 빌리 홀리데이는 상처로 점철되었으나 전사적인 기질을 동시에 가진 강한 토치 싱어이다. 그녀가 Cry Me A River를 부를때의 비장함을 보라. 내가 당신보다 더 흐느껴 울지 않았느냐, 왜 이제 와서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냐, 나보다 더 울어봐라……. 홀리데이의 비통이 절절히 느껴진다. 유년기의 창녀 생활, 결혼의 실패, 마약……. 불우한 그녀의 삶이 노래 곳곳에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사랑에 목말라했으나 사랑을 획득하지 못했던 홀리데이는 분명 결백한 희생자이다. 


'바디 앤 소울'을 처음 불렀던 리비 홀맨 역시 격정의 삶을 살았다. 부유한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녀 스스로 선택한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세 번의 결혼, 그중에 한번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고초를 겪기도 했고, 레즈비언으로 커밍아웃하기도 했다. 그녀들은 결핍된 어떤 것들을 비련의 노래로 표현했다. 그녀들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숙제를 줬다. 토치송을 제대로 부를 수 없다면 그대는 과연 훌륭한 싱어인가? 토치송을 한 곡이라도 마음에 품고 있지 않다면 그대는 과연 인간미가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윤리의 잣대로 빌리 홀리데이와 리비 홀맨의 삶의 여정을 평가절하시킬 수 있을지언정 그들이 낸 숙제에 관한 우리의 답이 과연 윤리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먼저 고민해봐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미가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비애를 아는 사람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아프게 한적이 없는가? 우리는 피상적인 쾌락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누군가에게 진정 낭만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우리는 진정 사랑을 추구하는가?


초기의 토치 싱어들은 1938년을 기점으로 인기를 잃어갔다. 전국에 스윙의 열풍이 불어닥쳤기 때문이다. 비련의 노래들보다 빠른 템포의 춤곡들이 인기를 얻었다. 토치송들은 언더그라운드에서 많이 연주되고 작곡되었다. 재즈클럽에서는 비밥 연주자들에 의해 본연의 템포인 발라드로 혹은 아주 빠르게 연주되었다. 비밥 연주자들은 고난도의 빠른곡들을 창조해냈지만 토치송들도 절절하게 연주하곤 했다. 찰리 파커가 연주한 ‘안아주고 싶은 당신(Embraceable You)’, ‘당신을 잃는다면(If I should lose you)’을 떠올려보라.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인(Glad to be unhappy)’ 같은 곡은 몇몇 탁월한 연주자들에 의해 더욱 완성도 높은 곡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에릭 돌피의 플루트로 연주된 Glad To Be Unhappy는 바스르르 떨리는 초기 토치 싱어들의 버전처럼 심금을 울린다.



키쓰 자렛의 '토치' 사용법.


요즘 나는 키스 자렛으로부터 옛 토치 싱어의 그 비애로움을 느끼곤 한다. 키스 자렛과 찰리 헤이든의 듀오 앨범 <Jasmine>(2010, ECM)은 키쓰 자렛이 작정하고 비련의 미학을 쏟아낸 작품이다. 이 앨범의 ‘바디 앤 소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외에도 굿바이, 날 떠나지 말아요(Don’t Ever Leave me), 당신없이 내가 어딜 가겠어요(Where Can I Go Without You) 등 주옥같은 토치송들이 관능미까지 내뿜는다.  키스 자렛은 복잡한 화성이나 리듬 대신 70여년 전 토치 싱어들이 노래했던 그 방식대로 곡 본연의 애잔함과 슬픔을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키스 자렛의 향수 어린 토치송 연주 컨셉은 페기 기의 노래로 히트했던 대표적인 토치 송 “열정(Fever)”을 연주했을 때 그 내막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연주를 2013년 12월 11일, 카네기 홀에서 들었다. 코드 시퀀스가 없는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이 곡을 자렛은 거의 변형하지 않고 화려한 기교없이 반복을 거듭하며 스케일을 연습하는 학생처럼 마이너 팬터토닉 안에서 충실하게 연주했다. 그는 벗어나지 않았고 넘어서지도 않았다. 청승맞음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는 그 촌스러움을 그대로 살렸다. 청중들은 자렛이 엉덩이를 비틀며 열정을 연주할 때 음악적 조크로 받아들이는 듯 어딘가에서 폭소도 흘렸으나 그것은 분명 실례였다. 자렛은 정말이지 진지했다. “열정”은 이런 대중 음악을 색다르게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기 위한 레파토리가 아니었다. 키스 자렛은 그가 “열정”을 연주한다는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를 원하는 듯 했다. 그는 후렴구를 거듭 반복하며 주문을 외우듯 변형없이 곡을 오랫동안 연주했다. 나는 이 곡의 가사를 상기하며 무릎을 쳤다. 


"열정"의 노랫말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와 개척시대의 캡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블루스처럼 후렴구에 아는 사랑의 이야기를 붙이면 이 노래는 끝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 베르테르가 들어갈 수도 있고 춘향이가 들어갈 수도 있다. 그의 손가락에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캡틴 스미스와 포카 혼타스, 클레오 파트라와 안토니오,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베르테르와 롯테……자렛은 세상의 많은 치명적인 러브 스토리들을 그 안에서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날 키스 자렛으로부터 “열정”노래 사용법을 배웠다. 언어로 노래되지 않은 연주 음악에서 내 안의 언어를 끊임없이 담아낼 수 있었다. 듣는 이가 그걸 하기를, 그렇게 반복하기를 키쓰 자렛은 요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키스 자렛은 반주했고 나는 노래를 했다. 그 많은 사랑의 이야기를 담아서. 순수한 사랑, 절절한 사랑이 사라져가는 시대에서 그는 청중 모두가 그러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분명한 건 나는 이날부터 죽은 싱어 사회의 이탈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열정(Fever) 


           - 키스 자렛 연주 (2013년 12월 11일, 카네기홀 연주에서 

/ 음반으로는 나와있지 않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를 거에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모를 거에요

당신이 나를 감싸줬을 때

나는 참기 힘든 열정을 느꼈어요




당신은 나를 달아오르게 만들어요

당신이 내게 키스를 했을 때


열정! 나를 꽉 껴안았을 때

열정! 아침에도, 열정! 밤새도록

해가 낮을 환하게 하고


달빛이 밤을 밝게 해요.

내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설래요

그리고 내가 당신을 위한다는 걸 알지


(……)


모든 사람이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당신도 아는 사실일 거에요.

열정은 새로운 것이 아니에요.

열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거에요.




로미오는 줄리엣을 사랑했어요.

줄리엣 그녀도 똑같이 느꼈고

그녀를 안았을 때 로미오는 이렇게 말했죠.

줄리엣 베이비, 당신은 내 불꽃이에요




캡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는 아주 열정적인 사랑을 했어요.

그녀의 아버지가 그를 죽이려고할때

그녀는 말했어요

아버지, 안돼요! 죽이기만 해봐요!

그는 내게 열정을 줘요


그의 키스로 열정을 느껴요 그가 나를 가득 안았을때

열을 느껴요, 나는 그의 연인이에요, 그러니까

아버지, 그에게 잘 대해주세요




이제 당신은 내 이야기를 모두 들었어요

이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이거에요.

여자들은 당신에게 열정을 주기 위해 태어났어요

화씨로나 섭씨로나.




그들은 당신에게 열정을 줘요.

당신이 그들에게 키스 했을때

열정! 당신이 살아서 배우면

열정! 당신이 지글지글 타오를 때까지

얼마나 사랑스럽게 타오르나요…




             


<양수연이 추천하는 Tory Song들>




Mean To Me (작곡: 프레드 E. 아라트 / 작사: 로이 터크 / 1929년)


Billie Holiday, 1937년 5월 11일 녹음 (Columbia 35926)


앨범: Lady Day- The Complete Billie Holiday on Columbia 1933–1944


실연의 슬픔을 담은 Mean to Me는 아네트 한쇼가 1929년 처음 녹음했지만 빌리 홀리데이의 버전을 추천한다.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성적 성숙함, 스물 두살 빌리 홀리데이의 처연한 음성이 매력적이다.





Love me or Leave me (작곡: 월터 도날드슨 / 작사: 거스 칸 / 1928년)

Nina Simone


앨범: Little Girl Blue, 1957년 12월 녹음 (Bethlehem, 1958)


토치 싱어 루쓰 에팅이 1929년에 처음 녹음한 Love me or Leave me는 이별 통보를 앞둔 여인의 슬픔을 그린 아름다운 발라드곡이다. 니나 사이몬이 20대 중반에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 Little Girl Blue앨범에서는 빠른 스윙과 소울을 한껏 느낄 수 있다.




Body and Soul (작곡: 자니 그린 / 작사: 에드워드 헤이만, 로버트 사워, 프랭크 입튼 / 1930년)


Libby Holeman


앨범: Moanin’ Low - Early Recordings 1927-1934 (Take Two Records – TT415CD, 1995)


바디 앤 소울은 1930년 작곡된 후 영국에서 발표되었으나 미국에서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리비 홀맨이 처음 선보였다. 대표적인 토치 싱어로서 그녀는 이 노래의 히트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청초하고 우수에 가득한 음색, 리비 호울맨의 영원한 클래식으로 남을 연주.





Stormy Weather(작사 작곡: 해롤드 아렌, 데드 콜러 /1933년)

Lena Horne


앨범: Stormy Weather (56~57년 녹음/ RCA Victor – LPM-1375, 1957년)


빌리 홀리데이, 듀크 엘링턴, 엘라 핏제럴드를 비롯해 여러 연주자들이 Stormy Weather를 훌륭하게 연주했지만 1943년 영화 <Stormy Weather>의 사운드 트랙 버전도 유명하다. 레나 혼 그녀 자신이 출연했고 노래했다.





Glad to be Unhappy (작곡:리차드 로저스 /작사: 로렌즈 하트 / 1936년)


Eric Dolphy


앨범: Outward Bound (1960년 4월 1일 녹음/ New Jazz-NJLP 8236, 1960년)


에릭 돌피의 첫 리더작으로 프레디 허버드, 재키 브리드, 조지 터커, 로이 헤인스가 참여한 걸작. 수록곡 중 Glad To Be Unhappy에서 섬세하고 처연한 돌피의 플루트 연주가 일품이다. 가장 좋아하는 Glad to be Unhappy 버전.

                                                       (월간 재즈피플 2016년 9월호)











posted by jazzlady


글: 양수연 (재즈 비평가) - 재즈피플 2018년 11월호


맨해튼에 오면 저녁은 거의 일정하다. 블루노트 혹은 빌리지 뱅가드, 재즈 스탠다드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이다. 블루노트에서 정형화된 어메리칸 메뉴로 식사를 하고 느긋하게 무대를 바라보는 일. 저녁 공연이 끝나면 스몰스에서 밤의 충만함을 이어가거나 반대편 업타운으로 달려가 스모키 재즈 클럽에 들른다. 연주자를 확인하고 그들이 내 감성과 어떻게 화학작용을 할 것인지 미리 가늠하는 일은 항상 설렌다. 시장기를 느끼면서 레스토랑 메뉴를 읽는 것처럼 내 뇌가 먼저 음악의 맛과 멋을 감지한다. 재즈 클럽은 늘 혼자 다녔다. 재즈를 같이 들을 사람을 찾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음악과 내가 직접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그래서 혼자서도 충분하고 온전하다. 심지어 벅차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재즈를 같이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뉴욕에 있다. 오래전 재즈로 만났고 여전히 재즈적 삶을 사는 그 사람, 이기준 씨(49). 그를 불러냈다. 그는 고맙게도 할렘의 중심부에서 달려왔다. 그는 재즈와 삶을 깊이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나에게는 몇 안 되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는 지금 목사가 됐다. 음악인 이기준이 목사 이기준이 되었을 때,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는 음악과 신앙이 하나로 연결된 사람이라는 걸 느껴왔으니까.

뜨거운 공기가 맨해튼 빌딩 사이에 꽉 채워진 7월, 우리는 스몰스 재즈 클럽 만났고 이런저런 장소에서 수다를 이어갔다. 그와의 시간이 즐거운 것은 단지 재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가 아니다. 그와는 음악과 영적인 세계, 삶의 본질과 치유에 대해서 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글은 키쓰 자렛 전문가이자 열정의 재즈 리서쳐인 목사 이기준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수개월, ‘재즈 피플’의 커버 스토리가 됐던 키쓰 자렛,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빌 프리셀, 비제이 아이어 등의 인터뷰는 그의 작품이다. 그 인터뷰 기사들에서 상당한 노고와 진중함을 느꼈다. 그는 뮤지션의 주변부터 야금야금 그 심장 깊은 곳까지 적극 파고드는 대화를 한다. 음악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일일진대, 좋은 인터뷰는 역설적이게도 언어의 허점을 다독거리며 행간을 읽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어의 장악 능력이 몹시도 중요한데, 이기준은 어떤 음악가를 인터뷰한다는 것 자체가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은 시간과 열정이 많이 소요되는 작업이어서 어지간한 애정가지고는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오래전 재즈 잡지 편집장으로서 ‘뉴욕 통신원’ 이기준을 겪어봤기에 그 열정을 감지한다.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뜨거운 열정. 더 깊어진 통찰력. 물론, 열정과 통찰력만으로 연주자의 마음을 다 열 수는 없다. 이기준에게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뉴욕 스몰스 재즈 클럽에서. 이기준 목사/ 사진 Ernest Gregory)


1998년, 이기준 씨는 뉴욕 한복판에서 내가 운영하는 잡지사 <재즈 힙스터>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뉴욕에서 내 재즈 잡지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좀 전까지 어떤 대단한 공연을 보고 나온 사람처럼 고양된 목소리로 세세하게 뉴욕 재즈의 현장을 묘사했다. 그때는 ‘뉴욕’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일 때였다. 재즈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 도서관을 뒤지고 해외 서적이 있는 뒷골목을 뒤지고 다니는 나는 영락없는 ‘서울 촌사람’이었다. 그래서 권위있고 신선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운비트 매거진과 스윙저널과 제휴를 맺을 방법도 모색하고 있던 차였다. 재즈에 대한 열정으로 잡지를 만들었지만, 고민으로 한가득이었다. 사소한 재즈 정보 하나에도 밤잠을 설치며 설레는 열정만 가득했다. 내 열정을 이기준이 건드렸다. 이기준은 현재 어떤 연주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뉴욕에서 쿨하게 연주를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그것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처럼 거대한 서사시로 나에게 나가왔다. 나는 이기준의 매력 서사시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 당시 그는 뉴스쿨을 졸업하고 루이스 포터가 가르치는 재즈 리써치 프로그램에서 피아니스트 키쓰 자렛에 관해 논문을 쓰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는 브레드 멜도우와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조슈아 레드맨 등 당시 급부상하던 재즈의 신예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한 뒤 기사를 보내줬다. 다운비트가 99년에 브레드 멜도우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기 1년 전, 재즈 힙스터는 브레드 맬도우를 커버스토리로 내보내는 행운을 얻게 됐다. 그런 음악을 알아보는 사람이 이기준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나도 실감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뉴욕의 신예 주자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깊게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참으로 멋지고도 멋진 일이었다. 맨해튼의 미슐렝 3 스타 ‘르 버나딘’의 캐비어를 맛본 것과 같다는 걸, 한참 후에야 느꼈다.


이기준은 거침없이 연주자들을 사로잡는다. 그가 달려들면, 연주자들은 그의 매력에 함께 빠져든다. 그는 연주자의 뒷조사를 샅샅이 해놓는다. 연주자들의 이웃, 가족 관계(심지어 연주자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어떤 삼촌 이름까지), 함께 연주했던 연주자들 족족을 연구한 뒤 만난다. 이런 것까지 어떻게 알지? 연주자들은 탐복한다. 재즈를 들어온 사람들은 연주자들을 만나면 그럭저럭 얘기가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천편일률적인 질문을 하고 말지만, 이기준은 다르다. 그는 모호한 재즈의 이야기들을 연주자의 삶을 끌어내 구체화시켜 놓는다. 연주자와 함께한 테이블에서 그는 여러 맥락을 소화하고 연주자가 더 본질적인 부분을 쏟아내도록 유도한다. 재즈 주변부의 수많은 재즈 키즈를 만나온 연주자들은 이기준의 남다름에 마음을 활짝 연다. 이기준이 달려들면 엄청난 걸 건진다. 순간의 회오리바람에 휩쓸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바람 중심부로 들어간다. 그래서 키쓰 자렛이 공연장에서 서성이던 그를 백스테이지로 불렀던 것 아닌가? 키쓰 자렛이 만성피로증후군을 극복하고 수년 만에 처음 대중과 만났던 1998년 11월, 뉴왁의 바로 그 공연장에서 말이다. 그때 이기준은 키쓰 자렛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논문을 쓰고 있었다. 키쓰 자렛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키쓰 자렛을 연구하기 위해 ‘들쑤시고 다닌다’는 걸 알았다. 동양 청년이 자렛에 대해 논문을 쓴다던데? 아, 그 친구? 나에게도 연락이 왔더군. 그 사람 지금 밖에서 서성대고 있다구. 이걸 들은 키쓰 자렛이 이기준을 들어오라고 했다. 키쓰 자렛의 첫 마디는 이랬다.


 “오늘 내 공연이 당신의 논문을 망친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빈둥거림의 승리다.


(사진 Ernest Gregory )

깨달음을 얻는 빈둥거림의 미학.


우리는 스몰스 재즈 클럽에서 트럼펫터 듀우웬 유뱅스 퀸텟의 공연을 봤다. 유뱅스의 연주가 딱히 궁금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충분히 실력 있고 정렬적인 그룹이고, 우리는 그걸 안다. 스몰스는 그저 집처럼 친근할 따름이다.

“공연 재미 있었나요?”

“재미 없었어요.”

“저도 재미없었어요.”

웃음이 나왔다.


“이젠 그런 것들이 단번에 보인다는 것이 서글프기도 해요.”

“진실한 음악이란 정직한 음악인 것이죠.”

그에게 ‘정직한’ 음악은 키쓰 자렛이고 빌 프리셀 같은 음악을 말하는 것이리라. 빌 프리셀은 테크닉으로 감동을 주는 사람은 아니다. 그들의 음악에는 뭔가 움직이는 것이 있다. 이기준이 말하는 순간의 충실함을 통해 아름다움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감정이나 생각을 파고드는 깊이가 남들보다 뛰어나고 그 끝에 영적인 세계까지 건드릴 능력이 있는 연주자들이죠”

목사 이기준이 단번에 알아보는 깊이의 음악에 공감한다. 

“요즘 무슨 음악 들어요?”

“음악 잘 안 들어요.”

“그럼 뭘 하시나요?”

“전 빈둥대는 걸 좋아해요.”

“어려운 걸 하시는군요.”

그의 예사롭지 않은 빈둥댐에 내가 관심을 보이자 ‘순간에 정직한 음악’에 대해서 그는 얘기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요즘 들었던 앨범 몇 장을 얘기한다. 소니 스틱의 Shangri-La와 Personal Apperance 앨범도 있다. 피터 케이틴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콘체르토 2번과 폴 데스먼드 쿼텟의 East Of The Sun, 그리고 내가 무척 좋아하는 래리 골딩스의 In My Room 앨범도 있다. 훑어듣다가 꽂히면 집중 몰입으로 듣는다고 한다. 

“예전엔 센티멘틀한 음악을 좋아했고 누군가를 좋아하면 사이드맨까지 샅샅이 찾아봤는데 이제는 형식적인 것보다 음악을 들을 때 왜 이 사람이 이렇게 했을까? 영감의 소스가 뭘까를 생각하게 돼요.”

이기준이 재즈를 공부하기로 결심한 건 피아니스트 임인건 씨 때문이었다. 조동진, 들국화, 어떤날, 시인과 촌장 같은 언더그라운드 포크 록 밴드들을 좋아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하덕규 씨와 연이 닿아 그들의 세계에 기웃거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임인건 씨를 만나게 됐다. 1회 유재하 경연대회 게스트 연주자가 임인건이었는데 그의 연주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다. 임인건 씨를 통해 재즈의 감성이 뭔지 느낄 수 있었고 키쓰 자렛과 ECM 작품들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92년 뉴욕 매니스 칼리 어브 뮤직으로 유학을 왔고 나중에 뉴스쿨로 통합되면서 뉴스쿨 학생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1년을 ‘빈둥대다’가 루이스 포터의 재즈 리써치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하지만 졸업 후 보스턴 대학에서 신학으로 학위를 받았고 또 몇년간 빈둥대다 할렘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금도 빈둥거리고 있다.

“재즈 피아노 전공자로 입학했지만, 제대로 잘 치지 못했어요. 어느 날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노크하고 들어오더라구요. 여기는 자기가 일주일을 예약한 연습실이니 자리를 비켜달라더군요.”

자리만 비켜주면 될 걸 이기준은 또 호기심이 발동했다. 당신이 연습하는 걸 구경해도 되냐고 부탁했다. 그리고 연습실 구석에서 그 남자의 피아노 연주를 한참을 지켜봤다. 마침내 건반에서 손을 뗀 남자가 말했다. 

“이번 주말에 제 연주 구경하러 안 올래요?”

이기준은 남자의 초대로 빌리지 뱅가드에 갔다. 도대체 뭘하기에?

이기준의 열렬한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 멋진 남자는 베니 그린이었고 그날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라이브 앨범을 녹음됐다. 바로 베니 그린 트리오의 명작 <The Benny Green Trio – Testifyin'!: Live At The Village Vanguard> 앨범이다.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칼 알랜과 함께 한 공연이었다. 이기준 주변에선 “네가 베니 그린을 만났다고?” 경악을 했다. 

오호, 이런 식이다. 이기준과 대가들과의 만남은 하나하나가 우연과 드라마틱함으로 가득하다. 

이기준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지만, 나는 그가 인간과 예술에 대한 뜨거운 호기심과 열정이 습관화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이 준 은혜일 것이지만. 

만약 그가 빈둥대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생산적인 빈둥거림은 키쓰 자렛을 파고들게 했고 빌 프리셀, 브레드 멜도우, 베니 그린, 애비 링컨, 크리스챤 맥브라이드를 비롯해 수많은 대가들과 오랫동안 깊은 교류를 하게 했다. 

베니 그린은 그의 스승인 월터 비샵 주니어를 이기준에게 소개해줬다. 그와 공부하면서 이기준은 재즈에 바짝 다가갔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스승이고 얼마만큼 중요한 재즈 레전드인지도 몰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진가를 이해하기 전에 몸으로 느끼는 상황 속에 있을 뿐이었다. 이기준은 야무지고 차근차근히 전략을 짜는 사람이 아니었다. 휩쓸릴 때조차 진실의 탯줄이 그를 매달고 있었다. 그런 직통의 교감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 탯줄이 연결된 곳이 그가 말하는 하나님이리라.

“순간에 정직하기 위해서는 깨어있어야 해요.”

인도의 철학자, 크리스챤 나무르티의 화두를 목사 이기준 입에서 듣고 있다. 이기준은 그걸 재즈 연주자에게 투사한다. 시간의 예술 음악, 순간 순간 그 음악에 정직하고 깨어있어야 하는 연주자, 이기준을 감동하게 하는 음악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깨어있는 자만이 깨어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스몰스 재즈 클럽 앞에서, 필자와 이기준 목사. 사진 Ernest Gregory )

키쓰 자렛의 매력.

“처음 들었던 키쓰 자렛 앨범은 Staircase (1976) 솔로 앨범이었죠.”

“키쓰 자렛의 어떤 점이 좋아서 논문까지 쓰게 된 거죠?”

“키쓰 자렛은 30년 동안 같은 멤버와 연주했잖아요? 보통 재즈 연주자들은 매너리즘을 탈피하기 위해 다른 연주자들과 많이 연주하려고 하는데 키쓰 자렛은 다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새롭고 지루하지 않아요.

같은 맥락에서 키스 자렛은 자기 곡을 연주하지 않았죠.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곡을 표현하고 발표하기 위해 활동하는데 키쓰 자렛은 그렇지 않았어요. 비슷한 레퍼토리를 새롭게 큰 역량을 가지고 연주를 합니다. 그는 다만 임프로비제이션을 할 뿐이죠. 대단한 임펙트예요. 그건 키쓰 자렛이 깨어있는 연주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발표하기 위한 연주와 음악을 자체를 위한 연주가 다르다는게 이기준의 생각이다. 

“크리스챤 맥브라이드 말처럼 모두 자기 것 하기 바쁜 세상이잖아요. 음악 자체를 정직하게 연주하는 깨어있는 연주자들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창조의 빛이 관통할 때

“재즈가 가장 훌륭한 음악일까요? 예전에 아프리카 젬베를 배운 적이 있어요. 말리에서 온 선생은 자기는 재즈가 지루하다고 하더군요. 아프리카 리듬은 몹시 복잡한데 재즈는 끽해야 12/8, 7/4박자 정도라는 거죠. 중요한 건 음악을 들을 때 창조의 빛이 나를 관통하느냐 아니냐인 것 같아요.”

내 존재가 정말 신비하고 기이하다고 생각한 적이 언제였던가? 나무와 풀과 공기와 물이 진정 신비롭고 경이롭게 다가올 순간은? 이기준의 말처럼 당연한 것처럼 지나치고 마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면서 음악도 예술도 무감각해기 마련이다

“20대에 들은 마일스와 50대에 듣는 마일스가 다르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그릇이 달라졌기 때문이죠. 음악은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예술이잖아요. 어떤 음악을 듣던 어떻게 접근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창조의 빛이 나를 통과할 때 그 눈이 떠집니다. 그 빛이 나를 통과하는 순간 그것이 들리는 거죠.”

이기준은 미국에 이민 온 후 할렘 토박이가 됐다. 할렘이 주는 깊은 가스펠 에너지, 할렘에서 목사가 된 독특한 이력이다. 

한국 영화 <블랙 가스펠>촬영팀이 할렘에 왔을 때, 이기준은 할렘에 살고 있는 가스펠 피아니스트 위다 하딩 목사를 알게 됐다. 내친김에 하딩 목사에게 가스펠을 배우고 싶다고 페이스북 메세지를 보냈다.

“잊고 있었는데 일년 2개월만에 지금 메세지 봤다고 하딩 목사로부터 연락이 오더군요.” 

하딩 목사와의 음악적 영적 교제가 진행되던 가운데 하빙 목사는 이기준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메세지를 줬다. 이기준에게 목사 안수를 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풀어놓으라고.”

그래서 빈둥거리던 이기준은 ‘말도 안되게’ 2016년 5월, 할렘의 목사 단체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지금은 할렘의 자택에서 소규모 그룹 모임과 예배를 갖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기준은 교회 언어로 말하면 ‘치유의 은사’가 있는 목사다. 


최근에 그는 스승이었던 루이스 포터의 솔로 앨범을 제작했다. 존 콜트레인의 권위자인, 바로 그 위대한 재즈 비평가이자 재즈 히스토리안, 루이스 포터 말이다. 그는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은퇴한 뒤 남은 삶을 피아니스트로 살겠다고 선언했다.

재즈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면서 비평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 않던가. 반대로 위대한 비평가가 창조해 낸 음악이라니. 그래서 루이스 포터의 이번 앨범은 나로서도 큰 관심이 있다. 창작곡과 스탠다드 곡으로 채워진 진솔한 작품이다. 


루이스 포터로부터 진정성의 음악을 끌어내기 위해 이기준은 그와 1년여간 끝없이 대화하고 토론 했다. 


이기준의 삶은 빈둥거림을 타고 지금껏 흘러왔다. 그의 빈둥거림은 휴지기나 휴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생계도 꾸리지만, 세속적인 경력 자체에는 무관심하다. 그러면서도 “세속적인 사람과 신령한 사람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내가 보기엔 그는 세속적인 삶에서 신령한 걸 찾는 사람이다. 창조의 빛을 느끼는 감수성과 온화한 덕으로 가득찬 그의 빈둥거림 앞에서 음악은, 연주자들은 무장해제된다. 빈둥거림은 하나님이 이기준이라는 사람에게 준 놀라운 선물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목사로 풀어줬고 그는 양떼처럼 창조의 빛을 느끼는 자유인이 됐다. 


이기준 목사: 이기준은 재즈 리써쳐이자 목사이다. 92년 뉴욕의 ‘뉴 스쿨’에서 재즈 피아노를 전공한 뒤, 1999년에 재즈학자 Dr.루이스 포터의 지도 하에 재즈 히스토리와 리써치로 Rutgers 대학에서 석사를 마쳤고 2007년 보스턴 대학에서 뮤직 에듀케이션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석사 과정 당시 키쓰 자렛을 전공하여 키쓰 자렛에 관한 방대한 자료 수집, 음악 듣기에 몰두했다. 2011년, 이기준은 재즈연주자이자 리써쳐로서의 삶을 잠시 뒤로하고 뉴욕의 ATS; Alliance theological seminary 신학 대학원에 입학, 졸업후 목사 안수를 받아 현재 뉴욕 할렘에서 활동 하고 있다. 





posted by jazzl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