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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재즈탐미 3회) 어느 겨울, 위험한 외출

월간 재즈피플 2014년 3월호


"어느 겨울, 위험한 외출"

카쓰 자렛, 카네기홀 솔로 콘서트를 고백하다.






우리 삶의 여정의 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 안에 던져진 나를 발견했다. (단테 '신곡)


오늘의 이 글은 오직 감성의 고백일 뿐이다. 이것은 일기장에 쓰여야 마땅하다. 나는 2월 5일 카네기홀 이삭 스턴 오디토리엄을 떠올리고 있다. 


#. 어깨에 내려앉은 눈을 털고서 민첩한 동작으로 카네기홀 로비로 들어선 그녀는 예약증과 표를 바꾸기 위해 줄을 선 무리를 제치고 곧장 공연장 객석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1층 정중앙 좌석 넘버 P108로 향했고 먼저 앉아 있던 P106과 P105에게 양해를 구하자 그들은 그녀가 들어가기 쉽도록 기꺼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그들에게 “땡큐”라고 했고 그들은 미소를 지었는데 저도 모르게 감추었던 기대감이 순식간에 터져 나올 듯 그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키쓰 자렛의 연주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는 동질감, 그리고 이 공연이 가져올 감동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는 여유의 미소가 그들에게 번졌다. 그녀가 눈인사를 끝내고 좌석에 앉는 순간, 그녀는 이제 오직 청중 넘버 P108으로만 존재한다. 그녀는 P108로 명명되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공연이 시작되면 그녀의 신체 활동은 제한되고 그녀만큼이나 나이를 먹고 있는 상념들도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 그녀는 이날 아침, 올해 들어 가장 막강하게 불어 닥친 눈보라를 뚫고 보스턴 사우스 스테이션에서 뉴욕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맨해튼 중심부에 도달할 때까지도 폭풍은 멈추지 않았고 시베리아 벌판을 달리는 열차처럼 기차 밖 풍경은 그저 황량하기만 했다. 그녀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콘체르토 No.1을 귀에 꽂았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이 얼어붙은 정경과 더없이 잘 어울렸으며 그녀의 열정을 북돋워 줄 엑스터시로써 가슴에 꽂혔다. 기차가 코네티컷 주를 통과할 무렵 그녀는 격정에 휩싸였던 마음을 잠시 거두고 키쓰 자렛 솔로 연주들을 상기하기 시작했다. 발라드를 떠올렸다. 매끄럽게 물결치는 바다 위의 배, 그 위에 누워있는 듯한 요동침이 그의 발라드에 담겨 있다.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듯 지속적으로 표출되는 루바토. 그의 루바토는 프레이즈 끝에 어떤 감동이나 뉘앙스를 제시하기 위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곡 전반에 걸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73년 솔로 콘서트의 Bermen에서와 같은 운동성을 몹시도 사랑했다. 그 느릿한 호흡이 만들어내는 리듬의 변화들, 4/4, 3/8, 3/4 다시 4/4와 2/4로, 그리고 7/8, 5/6으로.  그  비트는 밤의 호흡처럼 긴장과 이완으로 요동치는 것이며 종국에는 물결처럼 잔상으로 남고 마는 것이다.

그녀는 그 운동성에 미치도록 연루되고 싶었다. 그 판타시에서 그녀 자신이 멀어지는 것을 경계해왔으며 설령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마냥 질주하고 싶었다. 그 질주를 위해 그녀는 그녀가 가진 것을 조금씩 비우기로 했다. 즉, 허가되지 않은 뺌샘, 즉 <인간Home -이성 Logos = 짐승>. 짐승으로 허락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니 조금씩만 천천히 빼면 될 것이었다. 키쓰 자렛은 음악을 찾아 더할 것이고, 그녀는 뺄셈을 시작할 것이다. 뺄셈은 하강이 아니라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키쓰 자렛과 교감하는 그녀의 방식이었다. 



#. 공연이 시작되기 2시간 전 그녀는 카네기홀 건너편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롱 아일랜드산 프레시 오이스터와 마크햄 샤르도네 와인을 주문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카네기홀 건물은 맨해튼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 보수를 위한 철기둥이 처마를 이루고 있었다. 앙상하게 붉은 뼈마디를 드러내고 있는 구조물 뒤로 오늘의 공연을 말해주는 키쓰 자렛의 포스터가 보일 듯 말 듯했다. 저 가는 철골들은 지금 그녀의 설렘과 환희를 지탱하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나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일종의 잔해로 느껴질 것이다. 질척한 속살을 내뱉은 오이스터 껍질처럼.



#. 청중은 내가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다른 연주자들보다 나에게는 청중이 필요하다. 다만 청중이 이 일을 하기만을 원할 뿐이다. Try to concentrate.

청중 넘버 P108, 그녀는 무대를 응시했다. 자렛식 음향 무대는 그녀의 이차적 쾌락이다. 그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자 그녀의 기관들은 침묵한다. 그녀는 어둠의 숲 절벽 위에 홀로 앉아 있을 뿐이며 그녀의 앞 뒤, 좌우는 오직 낭떠러지일 뿐이다.  



#. P108은 선율의 윤곽을 그려본다. 키쓰 자렛은 결코 토널 센터로 진입하지 않는다. 그는 일련의 아이디어를 끝내기가 무섭게 새 아이디어를 등장시켰다. 그는 패턴 없는 무조를 즐긴다. 종국은 없을 듯 음들을 연기시켜 나가다가 마침내 파열시켜 버린다. 내부의 음들이 안정적인 탐험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P108은 긴장감에 잠시 몸을 떤다. 10여 분 간의 프리 임프로비제이션이 끝난 뒤 키쓰 자렛은 가스펠적으로 Pt.2에 진입했다. 명료하게 스타일을 부여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P108은 잠시 이론적 레퍼런스들을 떠올리고 싶은 유혹에 빠졌지만, 계속 로고스 뺄셈을 이어가려 노력한다.

Pt.2가 끝난 뒤 키쓰자렛은 무대를 잠시 거닐다가 좁은 드라이브 웨이에 차를 잠시 세운 것을 깜빡한 사람처럼 황급히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무섭게 질주한다. 비현실적인 속도감이 P108의 억눌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미궁 속으로 빠지려 하기 직전에 그는 느닷없이 연주를 끝내버린다. 2분간의 질주는 애를 태웠다. P108은 낭떠러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새로운 곡이 시작되었다. 이번에 그는 거세게 발리듬으로 탭하며 그루브를 만들었고 그녀는 멜로디에 짓밟히는 느낌 마저 들었다. 그녀 대신 자렛이 신음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그가 눈부시게 로맨틱한 멜로디로 Pt.5를 시작하자 P108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부상당한 그녀의 몸을 누군가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 몹시도 슬퍼졌다. 그 음악적 마조히즘이 섬뜩해서, 그녀는 어서 빨리 어둠의 절벽 위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 



#. 단지 피아노 한 대와 내가 무대에 있을 때, 나의 육체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연스레 알고 있다. 내 왼손은 무엇을 연주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내가 꿈꾸는 더 나은 플레이를 위해서, 내 손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에너지와 인스퍼레이션, 이것은 과도한 인풋이 되어 내 육체로 들어온다. 사람들은 내가 연주할 때 왜 소리를 내느냐고 묻는다. 아웃풋이 필요해서이다. 음악에 심취하면 열정이 나를 끌고 갈 뿐이다.

키쓰 자렛은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린 뒤 길게 손을 뻗어 피아노를 치곤 한다. 프레이즈를 날렵하게 순식간에 해결할 때, 주술을 읊듯 반복적인 뱀프로 리듬의 모멘텀을 만들어 낼 때에도 이 몸짓을 보인다. 어깨 밑으로 깊게 떨구어진 머리는 그 어떠한 것도 응시하지 않는다. 오직 스트레칭 하듯 길게 뻗은 팔이 독특한 보이싱을 이루는 손가락을 지탱하고 있다. 이윽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면 변화 없는 뱀프를 그만두고 몸을 주욱 끌어올린다. 그리고 천천히 길게 호흡을 내뱉고 들이마시면서 새로운 음들을 꺼내 보인다. 그에게 그루브는 육체적 경험이다. 



#. 인터미션이 시작되자 그녀는 비로소 어두운 사위를 돌아다 본다. 펭귄처럼 긴밀하게 붙어있던 개별자의 군상이 사라지고 있다. P106이 멋진 공연이 아니었냐고 말을 걸어온다. 그녀는 미소 짓는다. P106은 친구와 함께 뉴욕과 반대편 콜로라도에서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왔다. 그는 일본인으로 생각했다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의 말대로 키쓰 자렛을 좋아하는 아시안은 거의 일본 사람들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공연 전 32번가 코리아타운에서 한국 순두부를 먹었다. 또 다른 개별자 P109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다는 듯 말없이 앉아 있다. 그러나 그녀가 사진을 찍기 위해 일어나자 그녀의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을 건넨다. 그들 모두 중년의, 더 이상 누군가를 숭배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향유할 줄 아는, 파국적 경험을 가진, 거리낌 없는 탐험이 가능한, 강박적 열정에 관대한 존재.

P108. 그녀에게 주어진, 쾌락을 위한 외출의 시간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 



#. 음악은 허공에 있는 것을 찾던지 못 찾는 것이다. 쏟아지는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내 일은 그 감정을 다 풀어내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것을 몰랐었다. 내가 연주하면 내 손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저절로 알고 있다. 나는 머리로 지시하지 않는다. 내 본능에 나를 맡길 뿐이다. 나는 무의식으로 음악의 경지를 이룬다. 

자렛은 왼손으로 아르페지오 하며 코드를 깨어낸다. 그러다 5th로 10th로 루트를 명시해가며 클래시컬 레퍼토리를 끌어들린다. 선정성은 격조 있는 패턴들로 가장한다. Pt. 8, Pt.10, Pt.11에서 그의 번민이 느껴진다. 그는 두 개의 곡에서 비슷한 시도를 하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 한다. 프레이징에 대한 센스를 남용하며 완결되지 못하는 시도를 감추기도 한다. 그의 실연(失戀)은 P108 그녀에게 조용히 간파된다. 그녀는 그가 쏟아내는 하모니 뭉치의 끝단을 주르륵 풀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독단적인 그를 벗기고 해체하고 그의 순진성을 가늠하고 싶어진다. 그의 과잉된 본능이 한낱 장식으로 무마되기도 할 때 그녀는 오히려 희열을 느낀다. 기교에 완전히 도달하지 않은 악기로 인해 그녀를 심란케 했던 앨범 No End를 떠올리며, 그가 확신 받고자 다가올수록 복종을 거부하고 싶어진다.



#. 그러나 결국 P108은 그로부터 이식된다. Over the Rainbow로 앙코르곡을 마무리할 때 그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결국, 그 인간적인 멜로디는 무조성에 대한 그의 사유와 샤먼적 본능을 강조시키는 장치이다. 그는 그녀에게 결여된 것을 상기시켜 주었고, 그녀는 자렛에게 이 청명한 카네기홀이라는 지정학적 지위를 부여했다. 그녀는 노회하나 그녀보다 더 오래 영원히 살아남을, 그 육체에 위탁된 멜로디와 내연의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걸려들었지만 세속의 뺄셈으로는 규범의 논리와 완전히 결별할 수 없었고 따라서 온전히 짐승이 될 수는 없었다. 이것은 그녀 존재의 본질적인 허약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초연히 무대 뒤로 사라진 뒤에도 우물 밑바닥 물빛처럼 축축해진 어둠의 객석에서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좌석에 앉는 순간, 그녀는 이제 오직 청중넘버 P108으로만 존재한다. 그녀는 P108로 명명되기 위해 이곳에 왔으며 공연이 시작되면 그녀의 신체 활동은 제한되고 그녀만큼이나 나이를 먹고 있는 상념들도 배제시켜야 할 것이다.



키쓰 자렛은 결코 토널 센터로 진입하지 않았다. 그는 일련의 아이디어를 끝내기가 무섭게 새 아이디어를 등장시켰다. 키쓰자렛의 2006년 카네기홀 솔로 콘서트의 모습. 


맨해튼의 오래된 건물들이 그러하듯 보수를 위한 철기둥이 처마를 이루고 있는 카네기홀. 이 붉은 철골들은 지금 그녀의 설렘과 환희를 지탱하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나 공연이 끝난 뒤에는 일종의 잔해로 느껴질 것이다. 


2월 5일 카네기홀에서 열린 키쓰 자렛의 솔로 콘서트. 자렛식 음향 무대는 그녀의 이차적 쾌락이다. 


*상기 언급된 키쓰자렛의 코멘트는 지난 달에 열린 NEA재즈 마스터스 어워드에서 키쓰자렛의 인터뷰를 인용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