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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재즈탐미 1회) 이 시대 현자들에게 재즈의 길을 묻다

재즈 탐미 <1회>  재즈피플 2014년 1월호


 "이 시대 현자들에게 재즈의 길을 묻다”


“재즈의 유령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렉싱턴의 유령’이 출간됐던 1997년. 나는 운명적으로 재즈에 감당해야 할 몫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여러 일을 벌였었다. 친구들이 한창 취업 준비에 바쁠 때 나는 하고 싶던 재즈 디렉터와 출판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소설 속 재즈를 듣는 노인처럼 한없이 고독했다. 노인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수 만장의 재즈 콜렉션을 렉싱턴의 저택에 쌓아두고 있었다. 노인이 없는 저택에서 하루키는 재즈를 들으면서 매일 밤 언뜻언뜻 유령과 조우한다. 재즈와 고독이 만들어낸 유령이다. 나는 지금 그 소설의 무대가 된 렉싱턴 근방에서 살고 있다. 렉싱턴 한복판을 지날 때마다 이따금 그 유령들이 나를 엄습하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재즈를 향한 연민이라는 유령일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 나는 여러 번 재즈의 유령들을 만났었다. 가장 강력했던 것은 8년 전 여름이었다.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가 송두리째 무너졌을 때, 수많은 사람들과 찬란한 재즈의 유물들이 속절없이 죽어갔을 때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상흔은 처참한 것이었다. 재난을 맞고 수개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뉴올리언스 사람들은 정신을 차려볼 수 있었다. 퓨너럴 밴드가 고장난 악기들을 고쳐 모아 거리 행진을 하며 뉴올리언스의 부활과 재즈 뮤지션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부르짖었다. 그 날 신들린 듯 연주했던 퓨너럴 밴드는 도시 구석구석 숨어있던 재즈의 유령들을 기어이 불러내고 말았으리라. 8년이 지난 지금도 뉴올리언스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은 또 있다. 대공황을 연상시킬 만큼 강력했던 서브프라임 경기 침체 후유증. 재즈 클럽들을 비롯해 많은 비즈니스가 문을 닫고 전 국민이 경제적인 근심에 쌓여 있는 동안에 재즈는 번민하는 불법 체류자들처럼 그 존재를 온전히 드러내기 힘겨워했다. 미국 대통령이 에스페란자 스팔딩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퇴근길에 NPR 재즈를 듣는다고 해서 미국이 재즈의 천국이 아니라는 것 쯤은 이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충심의 재즈 매니아들은 이런 종류의 사색이 많아졌다. 재즈는 미국이 전 세계에 준 선물이라는 말이 지금도 유효한 것일까? 미국에서 재즈가 희망이 있는 것일까? 

나는 유러피언 전통 음악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스타일을 창작해 내는 유럽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과 중소 레이블들을 경탄해 마지않는다. 언더그라운드 재즈 뮤지션들이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를 임프로바이징의 모티브로 삼는다던가 하는 일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재즈 바이올린의 선구자 조 베누티의 후예 답게 이태리 음악 학교의 어린 학생들은 고사리손으로 스트링 재즈를 연주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메이저까지 필드 곳곳을 골고루 채우고 있는 지적인 청중들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인지. 프랑스 출신의 클라우드 볼링이 미국의 원조 래그타임을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뉴올리언스가 유럽에서 부활한 듯도 하다. 클라우드 볼링은 듀크 엘링턴 추종자로 지금까지 나온 앨범 60여 장의 거의 절반이 래그타임, 부기우기와 빅밴드 스타일로 채우고 있다. 누가 볼링을 크로스오버 뮤지션이라고 못 박았단 말인가?


이번 ‘양수연의 재즈탐미’ 연재를 통해서 운이 좋으면 미국에서 재즈의 희망에 관한 사색들이 어떤 종착점에 닿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 글에는 재즈 이야기들이 모자이크처럼, 이를테면 공연이나 앨범 감상 소감 따위라든가 뮤지션들과의 인터뷰가 난데없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 에세이를 통해 재즈에 관한 나의 짧은 지식을 늘어놓는다던가 어떤 거창한 주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러분이 재즈 매스터들에 대한 무한 경외를 노골화하는 것에 반감을 갖지 않고 행간을 관통하는 아이러니들을 발견한다면 난 행복할 것 같다. 


지난 몇 주간 나는 훌륭한 재즈 아티스트들의 서로 다른 공연 두 개를 감상했다. 하나는 뉴욕 카네기 홀에서 열린 키스 자렛 트리오 공연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보스턴의 소극장 ‘릴리 패드’에서 열린 색소포니스트 제리 버곤지의 쿼텟 공연이었다. 개성이 강한 이 두 공연을 서로 비교할 것은 못되지만, 나의 변별된 느낌 만큼은 이러했다. 키쓰 자렛이 득음의 유희가 펼쳐지는 세상 너머 속 비현실적 나를 실감케 했다면, 제리 버곤지는 그의 독창성이라는 맹렬한 무기를 방패할 것인지 파고들 것인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는 역동적인 나를 체험케 했다. 키쓰 자렛이 자연법을 따르도록 정교하게 조각된 신의 창조물이라면 제리 버곤지는 자유와 희망을 논하는 입헌 국가의 수장과도 같았다. 나는 이 두 명의 재즈 매스터들에게 이 시대의 재즈의 길을 묻고 싶었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음악으로 답을 할 터이지만 나의 미흡한 능력이 요구하건대 나는 내 눈앞에 보여질 인품과 적절한 언어의 뉘앙스가 필요했다. 교육자로서도 존경받는 버곤지는 그것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뮤지션이었다. 그렇다면 키쓰자렛은?


“음 2개만 잘 쳐도 좋겠다”

키쓰 자렛 트리오 결성 30주년 공연에서.


(키쓰 자렛 트리오의 30주년 기념 콘서트가 열리기 직전의 무대 모습)



12월 11일 카네기홀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키쓰 자렛 트리오 공연은 트리오 결성 3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지면에서 그들의 긴긴 30년 여정을 풀지 못하고 공연을 잠깐 스케치하고 마는 것이 애석할 따름이다. 자렛은 이날 말을 많이 했다. 지난 30년간 연주의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고, 팬들이 성원해준 탓에 30년 주택 모게지를 다 갚았다며 우스갯소리들도 늘어놓았다. 처음 공연장에 데리고 왔다는 손녀딸 둘을 위해 첫 곡은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캐럴로 시작했고 1, 2부에 걸쳐 Answer Me, My Love / Autumn Leaves / I Loves You Porgy / One for Majid / Fever / The Ballad of the Sad Young Men / Someday My Prince Will Come / God Bless the Child 등의 순서로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연주했다. (자렛이 곡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키쓰 자렛의 팬으로서 어떻게 의미를 두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키쓰 자렛 트리오의 팬이라면 예전에도 연주되었던 이 스탠다드 곡들이 어떻게 카네기홀을 울렸을지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매 곡들은 양질의 내용으로 충족되어 있었고 결핍을 찾기 어려웠다. 키쓰 자렛의 개성은 너무나 구체적인 것이어서 나는 심장에서부터 솟구치는 희열을 자근자근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청중들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자렛이지만 이날 뉴욕에서는 관대해진 것일까. 2008년 보스턴 공연에서도 누군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고 무대를 박차고 나가서 다시 나오려 하지 않았던 그였다. 이날은 청중들의 태도 따위는 잊은 듯했다.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휴대폰 카메라도 개의치 않았고 곡을 막 끝내어 심호흡을 내뱉기도 전에 실없이 소리 지르는 청중에게도 고개를 획 돌려 관심의 되물음을 건네기도 했다. 많은 커플들이 상대방 어깨에 기대어 편안히 보는 바람에 객석 곳곳이 데이트 공연장처럼 V자 모양이었다. 그래, 재즈의 메카, 자유로운 뉴욕이니까.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가 시작되자 자렛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느릿느릿 말문을 열었다. 

“우리 점잖고 무뚝뚝한 게리 피콕이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더 마시고 왔는지 조금 흥분해서 저에게 훈계하더군요. 2부 공연에서는 청중들을 그냥 확 보내줘 버릴 연주를 하자고 하면서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나가서 음 2개만 잘 쳐도 좋겠다고 대답했죠”

이 말이 끝나고 연주한 곡이 가수 페기 리의 히트곡 “Fever”였다. 속웃음이 나왔다. Fever는 주 멜로딕 아이디어가 “피, 버!”하는 음 2개가 아니던가. 이 곡은 코드 시퀀스가 없는 지극히 단순한 멜로디로 이루어졌고 다만 베이스 리프와 “피, 버” 음 두 개만이 생동감을 줄 뿐이다. 멜로디 자체는 밀가루 솔틴 크래커처럼 심드렁해서 가사가 들어간 파퓰러 음악이 되어야만 제법 맛있게 들린다. 자렛은 펑키한 리듬에 맞추어 변형 없이 Fever 멜로디를 연주했다. 자렛은 충실하게 스케일을 연습하는 학생처럼 화려한 기교 대신 마이너 팬터토닉 안에서 담백하고 또렷하게 솔로를 이어갔다. 나는 자렛의 지나치게 겸손한 ‘음 두 개(just two notes)’ 발언에서 그의 음을 향한 fever를 읽었다. 자렛이 왜 음 하나하나가 중요한 푸가적인 악곡이나 대위법적 악곡들에도 심혈을 기울이는지 나로 하여금 다시 성찰하게 했다. 키쓰 자렛은 공연 내내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것은 최근 Somewhere 앨범에 불완전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수록되기 바란다고 말했던, 진실한 자아를 보여주고자 하는 자렛의 열망과도 맞닿아진 메시지였다. 음 하나하나의 고유성을 탐미하고 기본을 생각하는 일이야말로 뮤지션들의 영원한 숙제이며, 음결합의 이치는 다름아닌 자신의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제리 버곤지, “재즈는 진화했지만 청중은 진화하지 않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금빛 악기의 윤곽이 드러났다. 허름한 자주색 파커를 걸어 놓고 색소폰을 꺼내 들자 비로소 깊고 잘 생긴 제리 버곤지의 눈매가 도드라져 보였다. 적막의 한기를 깨고 몇 호흡 불어 사운드 체크를 끝낸 뒤에야 그의 얼굴에 여유가 번졌다. 10여 명의 청중이 릴리 패드 소극장에 모여 앉았다. 매주 월요일 밤, 드러머 루써 그레이(luther gray), 베이시스트 윌 슬래이터(Will Slater), 트럼펫터 필 그레나디어(Phil Grenadier) 등 젊은 유망주들이 그와 함께 한다. 진보의 임프로비제이션 현장에서 서로의 영혼을 탐색하는 이들이기에 몇 사람이 지켜보던 그 무대는 뜨거웠다. 키쓰 자렛이 청중들에게 개념을 요구한다면 제리 버곤지는 뮤지션들에게 개념을 요구한다. 제리 버곤지는 끊임없이 다양한 뮤지션들을 탐색해왔고 그의 주변에는 늘 젊고 유능한 뮤지션들이 그와 플레이 하기를 원했다. 그는 이 시대 위대한 교육자로서 늘 재즈의 미래를 고민하는 위치였다. 미국 재즈 뮤지션들에게는 이미 교과서나 다름없는 그의 이론서 <인사이드 임프로비제이션> 시리즈는 진보하는 재즈의 모든 것들이 차근차근 담겨있다. 제리 버곤지의 명성은 일찍이 데이브 브루백 쿼텟에서 활동했던 70년대 (73~75년, 79년~81년)에 전 세계에 알려졌고 2000년 이후에만 그는 스무 장에 가까운 앨범을 발표했다. 최근 앨범 Three For All, Shifting Gears, By Any Other Name은 버곤지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수작들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예술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감상 풍토에 대해 애석함을 드러냈다. 삶과 재즈는 진화되어 왔지만 청중은 진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예술혼이 안고 가야 할 일종의 비애였다. 공연이 끝난 후 그는 남루한 자주색 파커를 걸친 채 곧장 어둠의 거리로 사라졌다. 나는 잠시 꿈을 꾼 듯 하였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찬란한 광채의 금관(金管)악기였던가, 아니면 이 시대 예술의 영토를 고민하는 금관(金冠)을 쓴 고독한 왕이었던가. 

그와의 일문일답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소극장 릴리 패드의 무대에 선 제리 버곤지.)



-. 당신은 다양한 뮤지션들과 그룹을 만들어왔는데 지금 멤버들을 누구인가.

‘제리 버곤지 쿼텟’은 어디서 연주하느냐에 따라서 멤버가 달라진다. 고정 멤버는 없지만 드러머 안드레아 메첼루티(Andrea Michelutti), 베이시스트 데이브 산토로(Dave Santoro) 등 핵심 멤버가 있고 네 번째 멤버는 달라지는데 필 그레나디어와 같은 훌륭한 트럼펫터도 있고, 내년 3월에는 색소포니스트 딕 오츠(Dick Oatts)와도 연주할 예정이다. 난 앨범 <Shifting Gears>에서처럼 퀸텟 구성을 좋아한다. 나는 내 음악에 방향과 개성을 주기 위해서 최대한 많이 연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앨범 <Any Other Name> 매우 인상적이었다. Giant Steps를 비롯해 여러 스탠다드 곡들을 콘트라팩트로 작곡했는데 느낌이 정말 새롭다. 작곡할 때 어떤 점들은 염두에 두었나?

이런 스타일의 작법에서는 스탠다드 코드 체인지에 이따금 오리지널 튠과 아주 다른 강한 바이브와 멜로디를 작곡한다. 그러면 대단히 새로운 방식으로 임프로바이즈 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듣는 이들도 새롭고 신선하게 들리게 된다. Giant Steps가 원곡과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 당신의 앨범 상당수가 대부분 당신이 작곡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최근 앨범 Shifting Gears나 Any Other Name에는 트럼펫이 있는데 다른 혼의 멜로디도 작곡하는가? 이 두 앨범에 참여한 트럼펫터 필 그레나디어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필 그레나디어는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나디어와 형제임)

그렇다. 나는 작곡할 때 두 개의 혼(horn)을 위한 멜로디를 각각 작곡한다. 테마 부분 혼 하모니는 임프로바지잉이 아니라 작곡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테너 색소폰과 트럼펫 주자들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트럼펫터와 연주하는 것을 매우 즐긴다. 그래서 두 개의 혼을 위한 작품들이 많이 있다. 트럼펫터 필 그라나디어는 창의적이고 개성 있는 사운드를 가진 대단히 훌륭한 뮤지션이고, 그와 연주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사람들이 곧잘 콜트레인과 당신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도 알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세대의 모든 뮤지션들이 존 콜트레인과 그의 음악에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콜트레인과 나를 비교하는 사람 중에는 음악을 쉽게 쉽게 듣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즉, 내 음악을 제대로 듣지 않고 그냥 자기가 알고 익숙한 뮤지션과 비슷하다고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내 음악을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다. 나는 내 세계의 고유한 아이디어와 감정을 가지고 연주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 연주할 때 당신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음악적으로 영감을 받는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가.

내가 연주하고 있는 밴드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는다. 물론, 연주자들은 자기 악기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연주 홀의 어쿠스틱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모든 연주공간은 다르다. 이것에 대해 정말 할 말이 많다. 사운드 엔지니어들이야말로 뮤지션들의 유일한 적이라고 생각한다.


-. 재즈의 지난 역사를 보았을 때 재즈는 진화되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창의적인 음악 작품들은 난해해서 대중의 외면을 받는 경향이 있다. 재즈가 가야 하는 길이 있는 것인가?

삶과 모든 예술이 진화하듯 재즈도 진화했지만, 청중만큼은 진화하지 않았다. 예술을 써포트할 돈이 없는데 어떻게 청중이 진화될 수 있겠나? 청중도 교육되어야 진화가 된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아티스트는 뭘 해야 하나? 아메리칸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알아듣기 쉬운 음악을 해야 하나? 청중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 때 나는 속으로 웃는다. 그들이 어떻게 이 우주, 이 음악을 이해하겠는가? 우주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것이고 본능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수준 낮은 마인드로 고차원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아티스트 수준으로 마인드를 끌어올려야 한다.


당신은 보스턴에서 태어났고 현재 보스턴에 정착해 있는데 이곳은 재즈 환경은 어떠한가.

나는 뉴욕에서 5년간 살았고 77년 내가 태어난 보스턴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데이브 브루백과 1년에 200회를 투어했기 때문에 사는 곳이 별 의미가 없었다. 보스턴은 학생 타운이다. 많은 학생이 음대를 졸업하고 그들의 상당수가 뉴욕이라는 재즈의 진짜 세계로 떠난다. 보스턴은 현실이 아니다. 학생들은 그들만의 거품 생활을 할 뿐이다. 학교에서 인정받는 것과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졸업 후 프로 세계로 뛰어들어야 현실이 보인다.


최근 들어 유럽의 재즈 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사람들은 미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예술성 있고 독특한 스타일의 재즈도 각광받는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견해를 듣고 싶다.

유럽에서 예술이 더 각광받는다는 것에 동의한다. 청중의 질도 더 좋다. 일반인들은 뮤지엄에 가기를 즐기고 클래식과 재즈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왜? 그들의 교육에 이런 부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정부 차원에서 예술을 적극 지원해주는 않는가? 미국은 좋은 무기만 잘 만들고 있다.


-. 당신은 교육자로서도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뮤지션들이 당신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데, 재즈 뮤지션들이 해주고 싶은 말은?

너 자신을 믿어라. 네가 숨만 쉬어도 의미 있다. 음악이 곧 마스터이고 우리는 모두 학생이다. 음악은 너무나 큰 존재이다. 음악은 우주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신성한 삶의 원칙을 공부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진심으로 대해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또 상상해라. 예술은 많은 희생이 따른다. 인생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 다른 것을 해서는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1월에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스튜디오에서 7 Rays를 녹음할 것이다. 이 곡은 하나의 테마로 연결되는 여러 가지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또 3월에는 딕 오츠와 "A Granny Winner”라는 앨범이 새번트 레코드(Savant records)에서 발매될 예정이고, 2015년에는 Riggamaroll의 발매가 예정되어 있다. 



(제리 버곤지는 이 지역 젊은 재즈 뮤지션들의 롤 모델이 되왔다. 트럼펫 유망주 필 그라네디어와 함께.)


(‘릴리 패드’는 보스턴에 몇 안되는 예술 전문 소극장으로 현관문을 열면 바로 무대와 직면한다.)


여러 재즈 스탠다드 곡들을 새로운 멜로디 하모디 구성으로 편곡한 앨범 By Any Other Name, 2012, Savant Records.


드라마틱한 솔로의 진수를 보여 주는 수작, Shifting Gears, 2012, Savant Records.

  • 박은주 2014.02.25 20:13

    1월호는 못보고,
    2월호 잘 보았습니다.
    김홍기 선생님의 사진도 잘 나왔더군요.
    대단하시다는 말씀외에는 드릴 말씀이 안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