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카리스마에게 시련은 없다. 찰스 밍거스.

(양수연의 재즈탐미 -재즈피플 2016년 5월호)



뉴햄프셔로 향하는 보스턴 북쪽 1번 도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올법한 투박한 시골 정경이 펼쳐진다. 한적한 도로에 띄엄띄엄 서 있는 백 년 넘은 집들은 목공소, 골동품 가게, 잡화점으로 채워져 있다. 누가 찾아올까 싶은 한적한 곳이지만 반세기 전엔 유명한 재즈 클럽이 있었다. 레니 소고로프가 운영했던 레니스 언 더 턴파이크(Lennie’s-on-the-Turnpike). 지금의 풍경처럼 허름하고 낡은 재즈 클럽이었다. 천장이 주저앉을 듯 낡았고 비좁고 여자 화장실도 없어서 니나 사이먼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그러나 재즈의 인기가 록으로 대체된 그 시절에 내로라하는 뉴욕의 재즈 뮤지션들은 이 먼 곳까지 올라와서 안식을 얻곤 했다. 그중에는 찰스 밍거스도 있었다. 

토마스 리치만이 연출한 1968년 작품 찰스 밍거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밍거스의 연주 장면들은 바로 이곳, 레니스 언 더 턴파이크에서 촬영된 것이다. 그는 대니 리치몬드(드럼), 찰스 맥퍼슨(알토 색소폰), 존 길모어(테너 색소폰), 로니 힐리어(트럼펫)과 함께 All the Things You Are, Take the ‘A’ Train, 그리고 Peggy’s Blue Skylight를 연주한다. 밍거스의 둔탁한 손은 과도하게 클로즈업되어 있어 보는 이를 짓누를 것만 같다. 공격적인 터치, 엄청난 하모닉 센스, 괴성을 지르며 스캣하는 밍거스는 음악과 인생을 달관한 도인과 같다. 레니스 언 더 턴파이크는 71년에 화재로 문을 닫았다. 밍거스는 79년에 죽었다. 

재즈 워크샵, 프리재즈와 모달.

1951년 5월, <다운비트> 매거진은 샌프란시스코의 블랙 호크 클럽에서 열린 비브라폰 주자 레드 노보 트리오 공연을 취재하던 중 놀라운 귀재를 발견한다. “여지껏 들어본 적 없는 엄청난 실력의 베이스 주자가 바로 여기 있다. 그는 연주하면서 미소짓고 행복해 한다….” 비평가 랄프 글리슨은 6월 1일자 다운비트에 스물 아홉살 그 베이스 연주자를 소개하는데 이례적으로 많은 지면을 할애 한다. 타이틀을 “찰스 밍거스, 생각하는 뮤지션”이라고 뽑았다. 나는 그 어떤 무엇보다 이 기사가 초기 찰스 밍거스의 진가를 대중에게 알린 중요한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밍거스는 레드 노보(비브라폰)와 기타(탈 팔로우)와 함께 활동 하고 있었다. 다운비트는 클래식 음악 배경을 갖추고 재즈의 크리에이션을 갖춘 밍거스를 극찬하는 것도 모자라 “진정한 재즈는 예술”이라며 그의 어깨에 예술과 혁신이라는 짐을 얹어 주었다. 밍거스의 ‘생각’이란 재즈의 미래이고 재즈의 발전 가능성으로 치환되었다. 그해 말 레드 노보 트리오를 떠나 뉴욕으로 왔다. 그리고 버드랜드 재즈 클럽에서 그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이듬해 52년에는 맥스 로치와 함께 공동으로 독립 레이블인 데뷔 레코드사를 설립하고 음악 비즈니스에도 발을 내디뎠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버드 파웰, 맥스 로치가 함께한 비밥의 걸작 <The Quintet, Live at Massey Hall>앨범도 이 데뷔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됐다.

생각하는 뮤지션, 찰스 밍거스. 그의 혁신성은 그의 ‘재즈 (컴포저스) 워크샵’ 프로젝트로 표상된다. 재즈 워크샵은 말 그대로 연구 모임 이름이자 그룹 이자 나중엔 회사 이름이기도 했다. 53년에 첫 재즈 워크샵 때는 한동안 작곡된 음악을 했다. 그러나 밍거스는 이내 이런 악보화된 재즈가 연주자의 즉흥연주와 창의력을 구속한다고 생각하고 56년에 새로운 재즈 워크샵을 시작했을 때는 악보 자체를 폐기했다. 그 어떤 멜로디 악보도 가져다 놓지 않았다. 악보없는 연주는 밍거스와 고등학교 밴드에 같이 참가했던 트럼펫 주자 로이 엘드리지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학교 밴드에서 엘드리지가 악보를 거부하자 밍거스는 의아해했다. 

 “내 악기를 봐. 나는 내가 느끼는 걸 연주해. 그것이 재즈야. 너도 악보를 버리고 너의 것을 발견해봐. 스스로 터득해보라고. 그러면 넌 언젠가 나에게 고마워할거야.” 


많은 연주자들이 재즈 워크샵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자아를 발견하고 떠났다. 그러나 악보가 없으므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새로 들어온 멤버들은 기존의 창작곡들을 악보없이 배워야 했고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는 기존 멤버들에게도 타격이 됐다. 그런데도 밍거스는 악보 없이 연주하는 것이 가장 진솔한 방법임을 주장하였고 언젠가 멤버들이 떠날 것을 알면서도 각 연주자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작곡했다. 이런 면에서 밍거스는 그 자신이 많은 영향을 받았던 듀크 엘링턴과 비슷했다. 악보 없이 진행되는 재즈 워크샵 리허설 공연에서 밍거스는 청중을 향해 이 곡은 새로 작곡된 것이라서 몇 번 다시 연주해봐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청중은 같은 곡을 그 자리에서 여러 번 들으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고 완성이 되면 박수를 쳤다. 

밍거스는 연주자가 진솔하게 즉흥연주하는 것과 시늉만 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재즈 워크샵에서 이루어진 집단 즉흥 연주에서 프리 재즈에 관한 밍거스는 입장은 완고했다. 밍거스는 프리 폼에 대해서 우려의 말을 종종 했는데 색소폰이 프리 재즈를 연주할 때 뭐가 나올 줄 모르고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누르는 것일 뿐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밍거스는 청중에게는 음악을 보여야지 뭐가 나올지 모르는 실험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밍거스의 음악에는 분명 프리 폼이 들어있다. 재즈 워크샵에서는 프리 폼에 관현 실험이 이루어졌고 이는 연주자에게 엄청난 자유를 부여했다. 솔로 주자는 익숙한 구성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밍거스는 본인의 주장들에 반하는 내용을 직접 라이너 노트에 쓰기도 했다. “나는 우리 그룹이 ‘토널’(조성)로 즉흥 연주를 하기를 바라지만 프리 폼의 불협화음으로도 나아갈 의향이 있다” (Jazz Composer’s Workshop, Savoy, 1954) 밍거스 재즈 워크샵은 오네트 콜맨, 알버트 아일러, 세실 테일러에 수년 앞선 50년대 중반 프리 재즈 요소를 담았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밍거스가 원하는 것은 자기 능력 한계에 벗어난 실험을 청중 앞에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밍거스의 프리 폼은 어떤 음악적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밍거스의 선견지명과 혁신성은 모달 재즈에 관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모달 재즈의 시작을 알리는 앨범으로 1959년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가 거론되지만, 찰스 밍거의 56년 작품 <Pithecanthropus Erectus>(Atlantic)의 마지막 수록곡 Love Chant에서 모달 재즈가 시도된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찰스 밍거스는 블루스를 구성하는 3개 코드를 더 줄여서 주문(Chant)의 느낌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가 모달 재즈를 연주할 때 밍거스는 모달이 이미 20년대 젤리 롤 모튼이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밍거스의 시련, Epitaph.

89년 6월 3일, 뉴욕의 링컨 센터에서는 군터 실러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공연이 열렸다. 찰스 밍거스가 작곡한 2시간 30분에 이르는 모음곡 ‘Epitaph’가 18년 만에 청중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Epitaph는 1962년 10월 2일 찰스 밍거스가 뉴욕 타운홀에서 초연한 뒤 연주되지 않았다. 69년 초연 당시 청중석에 앉아있던  군터 실러였으니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밍거스의 역할은 떠오르는 신예 크리스챤 맥브라이드가 맡았다.

62년 초연 무대는 밍거스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무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연주자들은 20악장에 달하는 대곡을 소화하지 못해 갈팡질팡했고 밍거스는 무대에서 불같이 화를 내었으며 악보를 쓰는 기보자 세 명이 무대에 올라 다음 연주되어야할 노트를 즉석에서 그린 뒤 연주자들에게 전해주는 진풍경을 벌이기도 했다. 공연에 앞서 Epitaph 악보를 놓고 토론하던 중 밍거스는 57년부터 그와 함께 해온 트럼본 주자 지니 네퍼를 폭행해 앞니 두 개를 부러뜨리는 참극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네퍼는 공연에 참여하지 못했다. 이 공연은 심지어 라이브 레코딩까지 되었는데 이 재앙의 연주를 엿보고 싶으면 The Complete Town Hall Concert (United Artists UAJ 14024, 1962)를 참고하기 바란다. 

잊혀진 Epitaph 악보를 발견한 사람은 음악학자 앤드류 혼즈였다. 그가 미망인 수 밍거스 자택에서 Epitaph를 발견했을 때 베토벤 10번 교향곡을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그는 순서도 뒤죽박죽, 희미해진 500페이지 분량의 악보를 퍼즐처럼 맞추어 복원에 성공했다. 그러나 20개 악장 중 7번째 악장 ‘Inquisition’은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따라서 89년 공연도 악장 하나가 빠진 채 연주되었으니 완벽한 복원 공연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다시 18년이 흘렀고 2007년에야 할레너드사에 의해 온전한 Epitaph 악보가 출판될 수 있었다. 사라진 악보는 다름아닌 89년 복원 공연이 열린 바로 그 뉴욕 링컨 센터, 그곳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찰스 밍거스가 링컨 센터 도서관에 돈 받고 팔았다는 것을 미망인이 뒤늦게 기억해낸 탓이었다.

찰스 밍거스의 시련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그가 어려웠던 순간들이 레코딩이나 영상으로 남겨졌기 때문이리라. 재앙과 같은 타운홀 라이브 레코딩 보다 더욱 가슴 아픈 건 앞서 말했던 토마스 리치만의 찰스 밍거스 다큐였다. 이 다큐는 1966년 11월 22일, 밍거스가 자신의 보금자리, 맨해튼 그레이트 존스가 5번지에서 퇴거 명령을 받고 짐을 싸고 있는 장면으로부터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블렛 준 여자가 렌트비를 안 냈기 때문에 쫓겨나는 것이라고 한다. 다섯살 난 밍거스의 딸 캐롤린이 사방에 흩어진 박스와 잡동사니 사이를 뛰어다니고 때론 피아노를 치고 있는 밍거스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다. 딸을 보는 밍거스의 얼굴이 어찌나 다정하고 자애로운지 마음이 짠하다. 밍거스의 짐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퇴거 당일, 그는 느닷없이 경찰에 체포된다. 그의 집에서 주사기와 약들이 발견되었다는 이유에서다. 두 명의 경찰이 밍거스의 팔을 한쪽씩 껴 잡고 경찰차로 걸어가는 동안 기자들이 나타나 그의 모습을 촬영하고 인터뷰한다. “당신 헤로인 했나? 왜 체포되는건가?”

마약을 하지 않은 밍거스는 떳떳하다. 그는 흑인이고 흑인 재즈 뮤지션이기 때문에 의심을 산 것임에 분명하다.

그의 집에서 나온 주사기와 약은 의사 처방을 받은 치료용 약물이었다. 밍거스를 태운 경찰차가 떠나고 카메라는 수 밍거스의 얼굴과 길가로 쏟아진 짐 중에서 밍거스의 콘트라베이스에 고정된다. 

찰스 밍거스를 떠올리며 이렇게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던가? 위대한 찰스 밍거스, 그의 콘트라베이스가 쓰레기 차에 실린다. 그가 힘들었을 이후 수년간의 암흑기를 암시하면서. 그는 1972년, 콜럼비아에서 <Let My Children Hear Music>를 발표하며 그의 카리스마스를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찰스 거스가 경찰에 체포되는 실제 장면 (찰스서스 1968년 다큐멘터리 화면 캡쳐)


<양수연의 추천 앨범>


1. Pithecanthropus Erectus / Atlantic / 1956

원시 인류 종인 ‘직립 원인’을 제목으로 한 독특한 구성의 앨범, 진화하고 멸망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오네트 콜맨 이전의 프리 재즈적인 요소와 마일스 데이비스 이전의 모달 재즈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아틸란틱 레코드 데뷔작. 재키 맥린, 주니어 몬테로즈, 말 왈드론, 윌리 존스 참여.

2. The Clown / Atlantic / 1957

아이티 민중의 독립 투쟁을 그린 Haitian Fight Song, 찰리 파커를 위한 Reincarnation Of A Lovebird이 담긴 밍거스 역작. 지미 네퍼(tb), 샤피 해디(s), 웨이드 레게(p),대니 리치먼드(d)참여

3. Mingus Ah-Um / Columnia / 1959

레스터 영을 위한 ‘Goodbye pork pie hat, 인종문제를 건드린 Fables of Faubus 등이 녹음된 콜럼비아 데뷔작. 존 핸디(as), 부커 어빈(ts), 샤피 해디(ts), 윌리 데니스(tb), 지미 네퍼(tb), 호레이스 파란(p), 대니 리치몬드(d)가 참여했다. 

4. Mingus Dynasty / Columnia / 1959

듀크 엘링턴 영향이 느껴지는 동시에 다양한 스타일의 밍거스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콜롬비아사에서 발매된 두번째 앨범. 기존 고정 멤버 외에 비브라폰, 첼로, 보컬을 더 넣어 풍부하고 다채로운 사운드를 더했다. 

5. Blues & Roots / Atlantic / 1960

블루스, 가스펠, 뉴올리언즈 등 흑인 음악의 뿌리와 초심을 담은 밍거스의 명작. 슬로우 블루스, 열정적인 스윙, 집단 즉흥 연주 등 고전적인 재즈, 블루스의 모든 것을 훌륭하게 담아 냈다.

6. Oh Yeah / Atlantic / 1961

재즈계 기인, 라산 롤랜드 커크 영입 이후 발표한 수작. 밍거스는 베이스 대신 피아노와 보컬을 맡았고 베이스는 더그 와트킨스가 연주했다. 전통 어법을 기반으로 역동적이며 다소 기괴하고 유쾌한 사운드가 시종 펼쳐진다.

7. The Black Saint and the Sinner Lady / Impulse! / 1963

타운홀 콘서트 ‘재앙’후 석달 뒤 녹음된 발레 스타일의 6개 악장으로 채워진 기념비적인 작품. 빅밴드 리더이자 작곡가로서 듀크 엘링턴 이상의 면모를 보여준, 재즈사에 길이 남을 오케스트레이션 앨범. 

8.Cornell 1964 / Blue Note / 2007

1964년 3월 18일 코넬 대학에서의 찰스 밍거스 섹스텟 라이브. 미망인 수 밍거스에 의해 발견되어 2007년 <블루노트>에서 처음 발표됐다. 에릭 돌피, 자니 콜, 클리포드 조던, 재키 바이어드, 데니 리치몬드가 참여했다. 유럽 투어를 앞둔 최상의 찰스 밍거스 섹스텟을 감상할 수 있다.



posted by jazzl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