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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이것은 재즈가 아니다” 영적인 세계로 이끄는 존 콜트레인의 음악.

“이것은 재즈가 아니다”

영적인 세계로 이끄는 존 콜트레인의 음악.

1967년 템플 대학 공연 실황 속으로.

존 콜트레인 (1926.9.23 – 1967.7.17) 


1966년 10월.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시. 황량한 도시가 가을 풍경을 아련하게 만들고 있는 흑인 주택가 교회에 젊은이 몇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가지고 온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재밍(Jamming)이었다. 동네에서 연주 좀 한다는 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 이곳에서 만났다. 퍼커션이 텅 빈 교회에 공명의 에너지를 주고 천장을 뚫을 듯한 색소폰 소리가 서로 뒤섞이는 풍경, 이를 홀로 지켜보는 낯선 자가 있었다. 음들의 행방을 쫓고 있는 동공은 흑빛 얼굴에 묻혔지만 그를 받친 흰자위는 시리도록 맑았다. 낯선 자가 다가섰다. “같이 연주해도 될까요?” 젊은이들은 그가 색소폰을 꺼내들고 다가왔을 때야 비로소, 그가 음반 자켓에서 봤던 전설적인 그 사람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존 콜트레인. 그는 지금 고향 필라델피아에 있다.


그들의 우상, 존 콜트레인.


“처음에 그는 우리 분위기에 맞추려 했어요. 그러다 우리가 평생 들어보지 못한 연주를 하기 시작했죠. 색소폰을 마치 드럼인 양 연주하는 거였어요. 우리는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죠.” 그날 교회에 있었던 퍼커션 주자 로버타 켄야타는 말한다. 

존 콜트레인은 어머니가 사는 고향 필라델피아를 불쑥 찾곤 했다. 마침 고향집과 가까운 템플 대학에서 공연이 잡혀 있었다. 이 대학 학생 단체가 콜트레인을 초청했다. 콜트레인은 고향의 자랑이었으며 뮤지션들의 우상이었다. 콜트레인은 교회에서 만난 고향 젊은이 몇을 자기 무대에 세울 생각이었다. 그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을 즐겼다. 한편, 콜트레인의 템플 대학 공연을 학수고대하고 있던 또 다른 젊은이가 있었다. 콜트레인의 연주를 직접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한 남자, 고등학생 마이클 브레커였다. 

“어느 날 한 클럽에 콜트레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어요. 콜트레인의 사촌인 칼과 얼이 연주하기 때문에 아마 콜트레인도 찬조 출연하지 않을까 예상한 거죠. 미성년자라서 클럽에 몰래 들어가야만 했어요. 누가 색소폰 스트랩을 매고 나타났는데, 혹시 저 사람이 콜트레인? 그러나 키가 작았고 사운드도 달랐죠. 결국 콜트레인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무척 실망했죠.” 

이번 호 '재즈 탐미'는 지금부터 49년 전 1966년 11월 11일 존 콜트레인의 공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날 공연을 따라가 볼 수 있는 것은 최근 발매된 음반 덕분이다. 콜트레인의 템플 대학 공연 실황이 담긴 레코딩이 발견되어 지난해 9월 Impulse!레코드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후기 존 콜트레인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역사적인 음반이 아닐 수 없다. 이 음반을 따라 49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템플 대학 '미튼 홀' 청중석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콜트레인을 애타게 기다렸던 소년 마이클 브레커도 당신의 옆자리에 앉아있다. 교회의 잼세션 젊은이들과 콜트레인의 친척과 친구들도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존 콜트레인, "뉴 띵"을 연주하다. 

예고없이 등장한 불청객 뮤지션들.


1966년은 콜트레인의 전설적인 클래식 쿼텟, 즉 맥코이 타이너, 앨빈 존스, 지미 개리슨 조합은 끝난 뒤였다. 콜트레인은 새로운 라인업과 음악적 아이디어로 변화하고 있었다. 베이스 주자로는 지미 개리슨을 계속 기용했으나 피아노엔 맥코이 타이너 대신 콜트레인의 두번째 아내 엘리스 콜트레인을 합류시켰다. 엘빈 존스의 바통은 래시드 알리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몇몇 젊은 혼주자들도 함께 무대에 섰다. 1964년 녹음된 <Love Supreme>을 기점으로 콜트레인은 이른바 ‘뉴 재즈 아방가드’ 스타일을 개척한다. 하지만 콜트레인의 프리 재즈는 분명히 체계와 구조가 있었다. 평론가 루이스 포터는 ‘셀(Cell)’이라고 표현했다. 음 몇 개의 그룹을 모티브 삼아 곡 전체를 심포니처럼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콜트레인은 가장 논란이 되는 음악, 괴상하고 거북하며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음악에서조차 과거의 여러 '구조'들을 리사이클하고 있었다. 템플 대학 미튼 홀 무대에서는 그러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음악은 난해하다 못해 종교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존 콜트레인은 자기 음악을 "뉴 띵(New Thing)"이라 불렀다. 이날은 지미 개리슨 대신 소니 존슨이 베이스를 쳤고 엘리스 콜트레인이 피아노를, 래쉬드 알리가 드럼을, 파로아 샌더슨이 또 다른 테너 색소폰을 맡았고 로버타 켄야타 등 교회 잼세션의 연주자 몇이 참여했다.

콜트레인은 공연할 때 연주할 곡목들을 미리 정하지 않는다. 이날 연주도 그러했지만, 그의 역사를 압축한 듯 시기적 흐름을 느낄 수 있게 곡이 배치된 느낌이다. 

첫곡이 Naima라는 걸 알아볼 수 있겠는가? 프레이징은 더 깊어졌고 대단히 에너제틱하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콜트레인은 달리기 시작한다. 음의 구조는 계속 확장되고 저돌적으로 치장하는 탓에 주멜로디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엘리스 콜트레인은 왼손으로 맥코이 타이너처럼 명료하고 화려한 콤핑을 하면서 큰 제스처와 긴 호흡으로 하프를 두드리듯 건반을 마사지한다. 

Naima를 향한 박수 소리가 잦아들기도 전에 테너 색소폰이 우리가 들은 바 있는 뚜렷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Crescent. 마이너 키에서 콜트레인의 ‘뉴 띵’이 등장한다. 불협화음, 비명인 듯 끓고 으르렁대는 소리로 급하게 달려간다. 드럼, 통가, 바타 등 퍼커션이 솟아나듯 등장하고 격정의 뉴 띵은 더욱더 명료해진다. 그런데 엘리스의 피아노 솔로가 끝나고 갑자기 생소한 알토 색소폰 소리가 등장한다. 이 사람은 무려 5분간 솔로를 하는데, 가만 보니 무대에 초청받지 않은 자이다. 콜트레인이 연주한다고 해서 찾아온 고향 친구 아놀드 조이너가 갑자기 무대에 등장해 솔로를 한 것이다. 그가 솔로를 끝내자 누군가 다가가서 그에게 주의를 준다. "이봐요, 당신까지 연주할 시간은 없어요. 지금 뭐하는거요?" 그러나 콜트레인은 조이너의 솔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연주를 이어간다. 존 콜트레인이 얼마나 오픈 마인드한 인물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스피리츄얼한 분위기의 멜로디를 보여주며 그 혼(horn)이 가진 풀 레인지를 쏟아낸다. 여러가지 모티브들이 꼬리를 문다. 셀(cell)이다. 서정적 아이디어들과 영혼을 뒤흔드는 격정적인 울림으로 테너 색소폰의 절정을 보여준다. 26분 12초의 장대한 임프로비제이션이 끝이 난다.


가슴을 치며 노래하는 콜트레인은 처음.


이어서 등장하는 곡은 Leo. 스카타토 테마가 매력인 이 곡을 알아보는 것은 콜트레인 매니아로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곡은 이듬해 67년 2월, 존 콜트레인의 마지막 스튜디오 듀엣 앨범 Interstellar Space에 처음 녹음되었다. 콜트레인은 다양한 프레이즈 비명을 지르듯 연주한다. 그러다 5분 35초가 지났을 때 갑자기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사 없이 목소리로 색소폰을 연주하듯이 노래를 한다. 그리고 다시 테너 색소폰으로 돌아가서 방금 노래한 프레이즈를 재차 에코한다. 파로아 샌더스가 테너 색소폰으로 진입하자 이번에 콜트레인은 플루트를 불면서 주 멜로디로 마감한다. 알리의 드럼 솔로는 대단하다. 무려 6분간을 몰입한다. 다양한 리드믹 아이디어가 멜로디와 같이 펼쳐진다. 콜트레인은 이런 종류의 드럼 사운드를 멀티디렉셔널 리듬(Muiti-directional Rhythms)이라 지칭한 바 있다. 드럼 솔로에 고취된 콜트레인이 다시 노래하기 시작한다. 곡 초반에 보여준 백그라운드적 사운드로서가 아니라 모티브를 가지고 스캣을 한다. 그는 있는 힘을 주어 풀 볼륨으로 노래한다. 테너 색소폰의 셀이 보이스로 옮겨온 듯하다. 그리고 트레몰로 효과를 내기 위해 가슴을 치기 시작한다. 이런 콜트레인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콜트레인은 얼마안되어 다시 테너 색소폰으로 되돌아간다. 솔로를 이어가는데 있어 Leo의 멜로디에 짧은 프레이즈를 더해 멜로디를 연장하고 부각한다.

1,800 객석의 미튼 홀은 반도 차지 않았지만 청중들은 열심히 콜트레인의 음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편으로 경직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콜트레인이 이런 모습이었던가?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믿을 수 없어 한다. 그의 노래가 처음 등장하는 Leo가 끝나고 Offering 곡이 시작되자 청중은 잠시 안도한다. 긴장감이 덜해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사색적인 곡이니 말이다.

그리고 청중들이 기다렸던 곡, 콜트레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해준 명곡, My Favorite Things가 연주된다. 이 곡은 소니 존슨의 베이스 솔로로 시작된다. 콜트레인은 수개월 전부터 My Favorite Things을 연주할 때 베이스 솔로로 시작하는 것을 선호해왔다. 한음 한음 천천히 튕기다가 고유의 프레이즈를 스냅하면서 답하는 식으로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예전의 지미 개리슨의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5분 30초가 지나서야 비로소 콜트레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소프라노 색소폰이다.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My Favorite Things는 처음이 아닌가. 여러 마이너 키 프레이즈로 연주하다가 인식할 수 있는 주 멜로디를 선사한다. 몹시도 화려하고 강렬한 연주. 테너, 소프라노 할 것 없이 색소폰으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단계에 이른 자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엘리스의 피아노 연주가 끝나자 또다시 생소한 색소폰 사운드가 들린다. 스티브 노블락이라는 젊은 알토 색소포니스트이다. 그는 얼떨결에 이 무대에 올랐다. 그는 공연을 보기 위해 일찍 도착했는데 주최한 학생들이 그가 혼 케이스를 들고 있는 걸 보고 이날 연주자인 줄 착각해 드레싱룸으로 안내했다. 매니저가 쫓아내려고 하자 콜트레인이 "그냥 놔두라"고 했다. My Favorite Things 연주 도중 콜트레인은 엘리스가 솔로할 때를 틈타 그에게 다가가 "너도 솔로 한번 할래?"물어본다. 아방가드 재즈에 현혹되었던 이 열 여덟살 청년은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에너지로 연주했다. 솔로하면서 껑충껑충 점프까지 해댔다. 샌더스가 피콜로 솔로를 할 때 콜트레인은 다시 악기를 내려놓고 노래를 시작한다. 30초간 다시 색소폰으로 표현했던바 그대로를 보이스로 노래한다. 다시 가슴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가 노래를 시작할 때는 청중들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로버트 켄야타의 표현을 빌면 “모두 체면에 걸린듯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쥐새끼가 솜털에다 오줌싸는 소리도 들렸을 만큼 조용했다.”

콜트레인은 이날 템플 대학 공연에서 처음으로 가슴을 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추후 여러 해설서에는 이날 콜트레인의 노래가 얼마나 경이적이었는가를 언급한다. 여러 가설이 나왔다. 가장 로맨틱한 가설은 색소폰의 달인으로서 색소폰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는 얘기인 것 같다. 색소폰으로 할 것이 없으니 목소리를 썼다는 얘기다. 1977년 래쉬드 알리의  <롤링 스톤: 더 식스티> 저서에 따르면 콜트레인은 말년에 불교를 공부하고 있었다. 콜트레인은 불교에서 염불 할 때 가슴을 치면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고 애초 색소폰에서 이를 구현하고자 했으나 잘 안되자 가슴을 치면서 직접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콜트레인이 아방가드를 하더니 드디어 조금 돈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혼 악기를 가지고도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을 하는데 노래까지 하니까 사람들은 대단히 괴상쩍게 생각을 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에 대해 콜트레인의 아들인 색소포니스트 라비 콜트레인의 추정이 가장 납득되게 들린다. 

“색소폰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의 목소리는 색소폰의 연장선이다.” 

엘리스 콜트레인은 이렇게 덧붙인다. "남편이 보이스를 쓰는 것은 신이시어, 신이 우리 모두에게 악기(보이스)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신이 창조한 보이스를 통해서 신을 찬양할 것입니다."라는 뜻이라고.

물론 콜트레인이 보이스를 쓴 것은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64년도에 Love Supreme을 녹음할 때도 이 타이틀을 노래했고 65년 “테너 색소폰의 거장들”이라는 뉴욕 공연에서도 불교식 챈트를 한 적이 있다. 또한, Om레코딩에서도 보이스가 나온다. 그러나 템플 대학 라이브에서의 보이스는 전과 달리 계획된 어떤 단어들이 나열되는 보이스가 아닌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대단히 스피리츄얼한 효과를 내는 보이스였다. 이 템플 대학 라이브는 가까운 가슴까지 치며 힘껏 노래하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레코딩일 것이다. 

이날 공연이 녹음되었던 것은 템플 대학 방송의 학생들 덕분이다. 마이크를 무대 아래 하나만 두었기 때문에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은 크게 들리지만 다른 악기들은 솔로 할 때를 제외하고는 볼륨이 매우 낮다. 커튼이 올라가자마자 연주가 시작되어서 녹음 버튼을 허둥지둥 누르는 바람에 첫 음부터 온전히 녹음되지는 못했다. 테잎을 갈아끼는 도중에 연주가 끊어지기도 한다. 

공연 광고는 시간이 잘못 게재되어 있어서 혼선이 있었다.  1,800석 관람석에 700석밖에 못 채워서 대학 신문에는 "콜트레인 쇼의 관람객수가 적어서 학생 단체가 금전적 손실을 보았다"는 헤드라인이 달렸다. 그 학생 단체는 천 달러의 손해를 입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이만 달러 이상일 것이다. 또 그 기사에 따르면 대다수 청중들이 그날 연주에 불만이 있었으며 학생 단체의 금전적 손실은 다음에 열릴 가수 디온 워윅의 공연에서 만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되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프리 스타일의 괴상하지만 아주 강렬한 공연이었어요.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콜트레인의 음악을 통해 진정한 삶의 목표를 얻었습니다." 마이클 브레커의 회상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후에 평론가 마이클 씨겔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날 콜트레인 공연을 보고서야 비로소 재즈 뮤지션이 되기로 확고히 결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마이클 브레커에게는 삶의 행보를 바꾸게 된 공연이었다. 그는 콜트레인에게 너무나 감사해서 테너 색소폰을 택했노라 말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을 보았던 여러 사람의 증언들이 생생히 남아있다. 당시 템플대학 영문학 학부생이었던 저널리스트 프란시스 데이비스는 “무슨 정치인 전당대회와 같은 느낌이었다. 콜트레인의 지지자들이 서로 다른 걸 기대하면서 모여있었다.”

이날 얼떨결에 연주자 대기실에 들어갔다가 솔로를 하게된 스티브 노블락에게도 큰 추억을 남겼다. "공연이 끝나고 작별인사를 하러 콜트레인에게 다가갔는데 나를 획 잡아서 힘있게 안아주셨어요. 콜트레인과 허그하면서 어깨너머 엘리스 콜트레인을 보았는데 그녀도 환하게 나를 보고 웃고 있었죠. 콜트레인이 롱 아일랜드에 있는 자기 집에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해주셨어요. 마치 교회에 초대된 듯 성스러운 느낌이었어요." 열여덟 스티브 노블락에게는 일생일대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는 음악을 포기하고 나중에 정신건강으로 전공을 바꾸었다고 한다. 또 다른 불청객 알토 색소폰 주자 아놀드 조이너는 공연 후 집으로 걸어가며 몹시 불안해졌다. 갑자기 무대에 올라서서 솔로를 했으니 콜트레인이 화가 났을 것이라고 느꼈다. "길을 건너려고 서 있는데 콜트레인의 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어요. 그런데 그가 나를 보고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난 무척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아놀드 조이너가 본 콜트레인의 마지막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니, 템플 대학 공연의 청중들 대다수가 아마 콜트레인의 마지막을 보았을 것이다. 콜트레인은 8개월여 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0세. 콜트레인의 죽음은 재즈신의 충격이었다. 아마 템플 대학 공연 때에도 그는 이미 아팠을 것이었다. 고향의 한 교회의 잼세션을 찾아갔을 때에도 그는 신체는 죽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기 직전의 사람 같지 않았다.  1967년 11월 11일 그는 그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보여주고 있었고 차세대의 우상으로서 영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새 이정표로 우뚝 서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음반 레코딩을 맡았던 학생 둘이 속닥거림이 덩달아 녹음되었는데 이날 공연의 핵심을 말해주는 듯 하다.

"방금 이 음악을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거니? 난 공연 같은 걸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콜트레인이 공연 전에 이렇게 말하던데? 이것은 재즈 콘서트가 아니라 영적 부활이라고"

(이 글에 등장하는 팩트들은 라이너노트와 존 콜트레인 전기를 참고한 것임을 밝힌다.)






Offering: Live At Temple University, (Impulse!, 2014)


John Coltrane (tenor and soprano saxophone, flute, vocals), 

Pharoah Sanders (tenor saxophone, piccolo), Alice Coltrane (piano), Sonny Johnson(bass) Rashied Ali (drums), Arnold Joyner (alto sax), Steve Knoblauch (alto sax), Umar Ali & Robert Kenyatta & Charles Brown (conga), Algie DeWitt (bata drum)

Impulse!, 2014


이 앨범의 요점은 이러하다. 

1. 가슴을 치며 노래하는 콜트레인의 영적인 보이스를 최초로 들을 수 있다.

2. 콜트레인이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my favorite things을 솔로를 최초로 들을 수 있다.

3. 최초로 Offering을 라이브로 레코딩했다.

4. 불청객이 두명이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는데 새로운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콜트레인의 심성을 엿볼 수 있다.

5. 영적이고 열정적이며 보다 깊이 있는 콜트레인의 "뉴 띵"을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솔로는 진화를 거듭해왔으며 중요하고 새로운 프레이즈들이 많이 등장한다. 

6. 콜트레인의 진정한 팬이어야 이 음반을 진정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