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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Column

(재즈탐미 7회) 프레드 허쉬 인터뷰 : 나는 오케스트럴 피아니스트, 미국 재즈의 미래는 밝다.

월간 재즈피플 2014년 7월호


"나는 오케스트럴 피아니스트, 미국 재즈의 미래는 밝다."

- 재즈 스탠다드 클럽에서의 듀엣 시리즈, 그리고 새 앨범 Floating에 대한 이야기 -


                                                                                                                            (Photo by Joanna Stoga)

피아니스트 프레드 허쉬의 듀엣 시리즈 마지막 날, 그러니까 5월 11일 일요일 늦은 밤에 나는 맨해튼 재즈 스탠다드 클럽의 청중들 속에 있었다. 공연 전 프레드 허쉬는 팬들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는 친절했고 여유가 번졌지만, 피로의 기색도 역력했다. 그는 이번 주 내내 여러 뮤지션들과 번갈아 가며 듀엣 무대를 꾸리고 있었다. 아나트 코헨(클라리넷), 케이트 맥개리와 커트 일링(보컬), 랄프 알레시(트럼펫)등이 함께 했었다. 그리고 듀엣 마지막 이날은 기타리스트 존 애버크롬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Free Flying(2013) 앨범에서 기타리스트 줄리안 라지와의 찰떡궁합 듀엣 연주를 떠올리며 애버크롬비를 기다렸다. 그들은 프리 임프로비제이션, 그리고 몇 곡의 스탠다드 곡들을 연주했다. 이 시대 대가 애버크롬비였지만 줄리안 라지와 프레드 허쉬와의 듀엣만큼 익사이팅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듀엣의 매력이 많이 드러나지 못했던 공연. 앵콜을 요청했을 때 애버크롬비는 백스테이지에서 나오지 않았고 다행히 허쉬의 솔로를 앵콜로 들을 수 있었다.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프레디 허쉬와의 인터뷰는 여러 날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었다. 그러니까 최종 인터뷰를 위해 보스턴 근교에서 이루어진 그의 몇 주간의 명상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프레드는 7월 초 발매되는 새 앨범 Floating을 선물 보따리로 내놓았으니까. Whirl(2010), Alive at the Vanguard(2012년)에 이어  존 에베르(베이스), 에릭 맥퍼슨(드럼)과 함께하는 세 번째 트리오 앨범이다. 지난 앨범이 빌리지 뱅가드 라이브였다면 이번에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Floating은 한 곡을 제외하고는 매 곡들이 누군가를 위해 헌정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Floating이라는 앨범 제목처럼 따스한 느낌이다. 본 앨범에 참여한 베이시스트 존 에베르를 위한 곡 Home Fries(홈메이드 감자볶음을 말함)는 존의 고향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의 다양한 음악처럼 감칠맛이 있다. 피아니스트 케빈 헤이즈(Kevin Hays)의 성(姓)과 발음이 같아 은유가 더욱 돋보이는 Autumn Haze(가을 안개)도 멋스럽고, 2012년 스물 아홉 살에 요절한 이스라엘 출신 여류 피아니스트 쉼리트 쇼스한(Shimrit Shoshan)에게 바치는 Far Away에서는 아련한 슬픔이 느껴진다. Arcata는 노쓰 캘리포니아에 있는 도시인데 숲과 바다가 만나는 절경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컬리스트 에스페란자 스팔딩이 그곳과 가까운 오레곤주 출신이어서 이 곡에서는 그녀를 떠올렸다고 한다. 에너제틱하고 세련된 베이스라인이 인상적이다. Floating 앨범 커버를 디자인한 마리아(Maaria)를 위한 곡도 있다. 아스라한 어둠 속의 물결과 자연경관을 담은 앨범 커버와 어울리는 제목 A Speech to the Sea이 그것이다. 

프레드 허쉬는 본인을 오케스트럴 피아니스트라고 표현했다. 대단한 칭찬이다. 깊이 있고 창의적이며 복합적인 그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할 말은 없을 것 같다. 그는 자신감에 넘쳤고, 또한 겸손했으며 솔직하고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5월 초 재즈 스탠다드 재즈클럽에서의 듀엣 연주 시리즈는 인상적이었다. 당신은 듀엣을 몹시 즐기는 거 같다. 


나는 듀엣을 대단히 선호한다. 듀엣을 하면 내가 오케스트레이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운드 텍스처를 창조할 수 있고 다이내믹도 만들 수 있다. 듀엣을 할 때는 쉽게 변화를 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도 용이하고 리드하기도 쉽다. 나는 듀엣이야 말로 아주 이상적인 음악 전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만족스럽고 재미있고 놀랍기도 하고 친밀하다. 둘 간의 직접적인 커넥션을 즐길 수 있다. 

내가 듀엣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컨소바토리(NEC)에서 공부할 때였다. 그때는 정말 잘하는 리듬 섹션을 찾기가 어려워서 주로 듀엣으로 연습을 많이 했다. 학교 복도에 지나가는 뮤지션들을 붙잡고 같이 듀엣 하자고 말을 걸었다. 듀엣에 대한 나의 애착은 40년 전 NEC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내 커리어의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즐기지 않는 연주는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듀엣 하는 것은 나를 몹시 흥분되게 만든다. 


빌 프리셀과의 듀엣도 말할 것 없었지만, 줄리안 라지의 듀엣 앨범 Free Flying에서도 두 사람의 호흡은 정말 대단했다. 


나는 줄리안 라지와 연주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그와 연주할 때 우리는 하나의 매우 독특한 악기를 창조해낸 것처럼 만족스러운 사운드를 만들 수 있었다.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왔다. 줄리안 라지는 그냥 기교 있는 젊은 뮤지션이 아니라 정말 드물고 뛰어난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Old Soul”을 가지고 있다. (성숙하고 깊이가 있다) 또한 그는 모든 재즈 스타일을 편하게 연주한다.

빌 프리셀 역시 듀엣할 때 마음껏 나를 표현할 수 있도록 잘 받쳐준다. 어컴퍼니스트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주는 것이다. 빌은 노트를 적게 쓰지만 풍성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최고의 레이더를 귀에 단 듯 사방의 모든 사운드를 다 알고 있다. 타이밍도 완벽하고 놀라운 뮤지션이다. 


(2013년 5월 11일 맨해튼 재즈 스탠다드 클럽에서 열린 프레드 허쉬와 존 애버크롬비 듀엣 콘서트의 모습)


재즈 스탠더드 듀엣 공연에서 존 애버크롬비와 듀엣 했을 때는 어땠는가?


존 애버크롬비와 연주는 처음이라 어떤 사운드가 나올 지 알 수가 없었다. 연주할 때 즐기긴 했지만…솔직히 다시 하게 될 것 같지 않다. 이날 뭔가 서로 커넥트가 잘 되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가 나를 반주해주는 방식 때문에 난감했다. 아시다시피 피아노, 기타 듀엣할 때 문제점이 서로 중복되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거 아니겠는가. 그는 풀 코드를 많이 쳤다. 그래서 내가 연주하는데 있어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어떤 악기를 다루든지 간에 듀엣 할 때 함께 보완해나가면서 듀엣을 할 수 있는 뮤지션이 좋다. 


당신은 솔로 연주에도 괄목할 실력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 솔로 시리즈를 빌리지 뱅가드 클럽 최초로 하지 않았는가? 이 때를 술회하자면? (빌리지 뱅가드 솔로 씨리즈는  2011에 출시된 Alone at the Vanguard에 담겨있고 이 앨범은 그래미 어워드 Best Jazz Album and Best Improvised Jazz Solo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되었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빌리지 뱅가드에서 일주일간 솔로 연주를 한 것은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빌리지 뱅가드는 정말 대단한 곳이다. 어쿠스틱 사운드 퀄러티가 다른 아트 센터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친밀하고 청중의 수준이 대단하다. 청중들은 뭘 들어봐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다. 이곳의 청중들은 음악을 아는 사람들이라서 정말 긴장된다. 빌리지 뱅가드에서 연주하면서 긴장하지 않는 연주자가 있을까? 이곳에 가면 그곳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의 역사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른 곳에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빌리지 뱅가드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재즈 클럽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솔로 시리즈의 기회를 얻은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당신같은 대가가 느끼는 긴장감이 궁금하다.


긴장하면 엑스트라 아드레날린이 나오는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늘면서 이 긴장감과 아드레날린을 나에게 유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즉, 연주하는 데 있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나도 풋내기일 때는 긴장해서 너무 많이 생각하고 초조해했다. 이제는 이 긴장감을 나 역시 즐긴다. 연주를 시작하고 사운드와 리듬에 몰입하면 이 긴장감도 사라진다.


지난해(솔로 공연)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 공연을 했다. 다음 달 출시될 새 앨범 Floating에 참여했던 당신의 트리오 멤버와 함께 하지 않았나? 한국에 간 소감을 듣고 싶다.

일본의 커튼 클럽에서 연주 한 뒤 한국을 갔었는데 한국의 청중들이 환대해줘서 무척 기뻤다. 일본에는 재즈가 활발하고 재즈 뮤지션들도 많은데 한국도 재즈 신이 활발한 것 같았다. 나에게 좋은 연주 경험이었다. 

대학에서 마스터 클래스도 했는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학생들은 나이스한데 재즈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본 컨셉, 이를테면 스윙도 그렇고. 내가 처음 배울 때는 교재도 없어서 선배에게 배우고 콘서트도 많이 가고 스스로 터득을 많이 했다. 재즈를 배우는 것은 복잡하다. 책에만 의지해서도 안되고 새 언어를 배우듯이 실전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 어찌 보면 한국의 재즈는 조금 경직되어 있다고 할까….뮤지션은 자기 고유의 보이스를 발견해야 한다. 자기의 정체성도 알아야 한다. 유럽이 유니크한 사운드를 많이 내듯이 한국도 언젠가는 한국 고유의 문화를 반영하는 재즈 스타일이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 


(7월 초 발매된 프레드 허쉬 트리오의 새 앨범 Floating)


새 앨범 Floating에 대해서 소개해달라


Floating 이 전의 세 앨범은 모두 라이브 레코딩이었고 이번에 오랜만에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에릭 맥퍼슨과 존 에베르와는 세 번째 앨범이다. 라이브 레코딩이 연극 무대에 오른 기분이라면 스튜디오 레코딩은 영화를 찍는 기분이다. 편집하고 재차 녹음할 기회가 있어서 원하는 연주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평소 라이브 할 때의 레파토리 구조를 따랐다. 스탠다드 곡들도 넣었고 셀로니오즈 몽크 곡 Let's Cool One 으로 끝냈다. 수년 동안 나는 라이브할 때 몽크곡을 마지막으로 연주해왔다. 그리고 한 곡 빼고는 모두 헌정 곡이다. 나는 곡을 쓰거나 연주할 때 특정 인물들을 떠올리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곡도 쉽게 써진다. 지금까지 30여 개 가량의 헌정 곡이 있다.


이번 앨범에 담은 곡들 중에서 특별히 애정이 가는 곡이 있는가?

많은 곡이 헌정된 인물들을 그리고 있으므로 사연이 있지만, 3번째 수록곡 West Virginia Rose는 내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위해 작곡했다. 어머니가 웨스트 버지니아 출신이고 어머니와 외할머니 모두 꽃을 연상하는 이름 즉, 각각 Florett, Roslyn이라서 제목도 ‘웨스트버지니아 장미’라고 지었다. 가족을 위해서 처음 작곡한 곡이라서 뜻이 깊다.


교육자 입장에서 당신은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당신 제자 중에 브레드 맬다우 등 훌륭한 뮤지션도 많지 않나.


나는 1980년부터 6년간 NEC에서 가르쳤고 뉴욕으로 옮겨와서도 여러 대학에서 좋은 학생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나는 나만의 독특한 교수법을 개발해왔고 가르치는데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브레드 멜다우외에도 이단 아버슨, 댄 태프너, 레이챌 지, 브루스 바쓰 등 지금 활동하고 있는 정상급 뮤지션들도 내 학생이었다. 

브레드 멜다우는 그가 뉴 스쿨 학생이었을 때 만났다. 마약 습관 때문에 시련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가 훌륭한 메이저 아티스트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만큼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던 뮤지션이었다. 


NEC 시절 피아니스트 재키 바이어드에게서 배우지 않았나? 당신이 재키 바이어드의  Aluminum Baby연주하는 걸 들은 적 있다. 재키 바이어드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NEC시절 얘기를 좀 더 듣고 싶다.


70년대 중반의 NEC는 군터 실러가 학교를 이끌었고 훌륭한 뮤지션들과 학생들이 많았다. 그 시절 NEC를 다녔던 학생들은 지금 클래식계나 재즈계에서 아주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 있다.

1975년에 재키가 NEC에서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는 보스턴으로 갔다. NEC 복도에서 재키와 마주쳤는데, 내가 당신에게 배우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딱 10분간 시간 내주겠다고 했고 나는 바로 그 앞에서 즉석 오디션을 치루었다. 연주가 끝난 뒤는 그는 입학을 허가했다. 

재키 바이어드는 아주 체계적인 선생은 아니었지만 재즈 피아노에 관한 한 백과사전과 같았다. 재즈 피아노 역사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그야말로 엄청난 피아니스트였다. 괴팍스럽고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어려운 성격 때문에 실력에 비해 덜 알려진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그를 존경한다. 그는 피아니스트의 피아니스트였다. 내가 고전적인 옛 스타일을 연주하고 좋아하는 것은 그의 덕분이다. 오하이오주 시골에서 온 어린 내가 그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큰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모교 NEC에 대해서 대단한 애정을 품고 있다.


당신의 바쁜 투어 스케쥴을 보면 경이롭다.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병마(HIV)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당신이 하는 일들은 무엇인가.


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맨해튼 소호에 산다. 무척 혼잡한 동네이다. 그래서 내 파트너와 함께 집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펜실베이니아 별장에서 가끔 쉬다 오곤 한다. 그곳에서 작곡도 하고 산책도 한다. 바빠도 최소한 일 년에 한 두 번은 파트너와 휴가를 보내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건 비행기 타고 돌아다니는 일이다. 비행기 여행에는 짜증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진이 빠진다. 집에 다시 돌아오면 짐 풀고 빨래하고 다시 곧 짐 싸서 비행기 타고 떠나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줄이기 위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노력한다. 명상이 도움되는데 이번에는 매사추세츠 서쪽에 있는 곳에서 침묵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명상하면 집중을 잘하게 된다. 음악과 명상은 미학적인 연관성은 없지만, 집중을 한다는 면에서 매우 비슷한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미국에서 재즈는 죽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럽의 재즈신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에서 재즈의 미래, 어떻게 보는가 (미국의 재즈를 다루는 나로서는 뮤지션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재즈가 최근에 와서 비로소 체계화된 것 같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기획 면에서도 그러하다. 이 체계화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가 처음 음악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학생으로서 유명 재즈 뮤지션과 접촉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쟁쟁한 뮤지션들과 같은 장소에서 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연주도 해볼 수 있었다. 지금은 유명 뮤지션들과 접촉하는 것이 옛날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포멀한 세팅을 갖추거나 스승-제자 관계가 아니라면, 혹은 매스터 클래스 등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면 일반 학생들과 유명 뮤지션들과 만나는 것은 어렵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긍정적인 일이다. 배우고자 하면 공식 경로를 통해서 다가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전보다 클럽들의 수가 적어서 연주할 기회가 적어졌다고는 하나, 의지가 있으면 얼마든지 공연할 수 있다. 유튜브나 다른 인터넷 미디어를 활용할 수도 있고 전통 레이블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음반을 낼 수도 있다. 예술적으로 독립성이 생긴다는 좋은 측면이 있고 스스로 아티스틱 컨트롤을 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미국에서 많은 재즈 스타일이 나왔고 지금도 미국은 전 세계에 예술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재즈의 영향력을 넓히는데 NEC와 같이 미국의 선진적인 음악 학교들의 역할이 컸다. 미디어 홍수 시대에 뚜렷한 개성과 실력을 갖추고 있는 뮤지션들이 미국에 많이 있다. 미국의 재즈는 결코 죽지 않았다. 아니 미국 재즈의 장래는 너무나 밝다고 볼 수 있다. 


(공연이 끝난 후 저와. 블로그 only)